[소설 소개-스이펑石一枫 <천진팡은 없다世间已无陈金芳>]
[소설 소개-스이펑石一枫 <천진팡은 없다世间已无陈金芳>]
-작가 스이펑 石一枫
1979년 베이징에서 태어나, 지금도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다. 1998년 베이징대 중문과에 입학했고, 같은 과에서 석사를 마쳤다.
2016년 6월 <천진팡은 없다>로 1회 ‘해협양안신소설작가상’(海峡两岸新锐作家好书奖)을 수상했고, 2년 후에는 7회 루쉰문학상 중편소설상을 수상했다. 이후에 발표한 소설 등도 대부분 중편 소설로 정통적 소설 창작에 대한 집착이 큰 작가다.
-<천진팡은 없다> 스토리
이런저런 글을 쓰며 살아가는 나는 그해 여름 세계적인 바이올린 거장 이츠하크 펄먼의 세 번째 방중 공연에 들렀다가 오랜만에 천진팡을 만났다. 내가 생각하던 어린 시절의 그녀와 달리 상당히 세련된 모습의 그녀는 차 한잔을 마시고, 한 남자가 몰고온 인피니티를 타고 사라진다. 사실 나는 어릴적 주목받는 바이올린 연주자였는데, 대학에 들어오기 전 그 꿈을 접은 아픔을 갖고 있다. 그런데 천진팡을 만나자, 내 기억은 바이올린을 연습하던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내가 천진팡을 만난 것은 중학교 2학년때다. 어느날 선생님은 후난湖南에서 온 여자 아이를 소개했다. 생긴 것도 촌뜨기인 만큼 내가 주목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천진팡은 우리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식당 주인 쉬푸롱의 처제였다. 도시에서 뭔가 해보고 싶은 꿈을 안고 올라온 대개의 가족이 그렇듯 그녀의 가족도 비루하게 식당을 꾸리고, 폐지를 줍는 방식으로 살아갔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그녀는 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창가 옆으로 와서 연주를 듣고 가곤했다. 그녀의 처지를 떠나서 나는 내 음악을 좋아해주는 관객이 있다는 것에 뭔가 가슴을 채우는 느낌이 되었다.
그런데 천진팡은 학교에서 낡은 행색도 어색했지만 초라한 허영심까지 드러내면서 학우들의 미움을 받았다. 높이가 맞지 않은 하이힐, 알록달록한 더블버튼정장 등을 하고 온 그녀를 학생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도 달갑게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천진팡의 집에 변고가 생겼다.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급성 뇌출혈로 돌아가셨고, 도시가 별볼일 없다는 것을 안 가족이 낙향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천진팡은 가족의 반대에도 베이징에 남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결국은 피를 보고서야 남는 데 성공한다.
중학교 졸업과 함께 중점 고등학교에 진학한 나는 음악 특기생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천진팡과 멀어진다. 우연히 그녀를 만난 것은 2학년에 올라가는 방학에 칭다오에서 열린 연주회를 마치고, 베이징에 올라오면서다. 나는 길거리에 빈 맥주병을 발로 차다가 깡패인 갈가지 일행들에게 시비가 걸렸다. 깡패들은 내 바이올린을 건드리려고 할 때, 천진팡이 나와서 구해준다. 놀란 것은 천진팡이 이전과 달리 너무 예뻐진 것이었는데, 그녀는 동네 깡패들이 데리고 있으면 우쭐 댈수 있는 왕비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얼마지 않아 바이올린의 꿈을 접는다. 입시 담당 교수는 “기교는 훌륭하지만 예술적 영감이 매우 부족하다. 너무 빨리 채굴되어 끝나버린 폐광처럼 더 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다”는 말로 대학 문앞에 나를 걷어찬다. 안타까운 것은 나 역시 그 말에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특기생 가산점을 받아 대학에 입학했지만 삶의 동기를 잃은 것 같아서 방황했다. 그때 우연히 길거리에서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 가다가 천진팡을 발견하다. 전에 만난 깡패 갈가리가 그들이 운영하는 옷가게 앞에서 천진팡을 패고 있는 것이었다. 방관하는 사람들을 뚫고 나는 호기있게 갈가지에 달려가 발길질을 했다. 물론 그가 맞을 리는 없고, 나는 칼침을 맞을 수 있는 위기에 빠질 뻔했다. 다행히 경찰들이 출동해 갈가지를 끌고가 죽는 건 면했다. 가게에 들어간 천진팡이 두팔을 벌리자 나는 뛰어가 그녀에게 안겼다. 오랜만에 느끼는 위로였다.
그 후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여자애들에게는 키스조차 못하는 쑥맥 취급을 받는데, 외국어 학부 퀸카 재스민에게만은 호감을 얻는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02년 이츠하크 펄먼의 두 번째 방중 공연이 있었다. 표를 살 형편은 아니지만 공연이 열리는 인민대회당 매표소 인근을 전전하다가 암표를 팔고 있는 의외의 인물을 만났다. 과거 천진팡을 패다가, 경찰에 끌려간 갈가지였다. 그를 통해 천진팡의 이상한 허영에 대해 듣는다. 둘이 동거하는 시절 천진팡은 이상한 음악바람이 있었다. 유명 바이올린 공연을 찾고, 심지어는 피아노를 사달라고 졸랐다. 그날 천진팡을 패던 순간도 가게에 물건 들여놓을 돈으로 피아노를 사겠다고 야단처서 그런 것인데, 내가 이상한 용기를 냈다는 말도 전해줬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시작되는 첫 순간인 이츠하크 펄먼의 세 번째 방중 공연이고, 나는 다시 그 장소에서 천진팡을 만난 것이다. 물론 그녀의 이름은 ‘천위첸’으로 개명되어 있었다. 나는 당시 이혼한 상태였다. 대학에서 만난 재스민과 결혼 후 무난한 결혼생활이었다. 내가 문화계를 전전할 때, 재스민은 다국적 기업에 취업해 빠르게 성장했다. 둘의 결혼이 무료해질 때, 재스민에게는 유학 기회가 주어졌다. 이혼을 해야만 깨끗했는데, 재스민을 집을 포함해 대부분을 나에게 정리해주고 떠났다. 부모님 마저 하이난에 집을 얻어 떠난 상태였는데, 나는 집을 정리해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대학부터 친하게 지낸 B형이 자기가 투자한 화보 신문사 문화부 부주임으로 추천해 잡글을 쓰는 문화계 한량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천진팡을 만난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연락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2012년 초겨울 ‘798 예술구’에서 열린 어느 화가의 개인적에 갔다가 그녀를 다시 만났다. 전시 막판에 오는 VIP 그룹의 뒷단에 그녀가 끼어 있었다. 둘은 편한 마음으로 뒷풀이까지 갔다가 취한 후 그녀는 나를 궁주펀에 있는 옛집까지 운전해서 바래다 준다.
서먹함을 덜어서 인지 얼마 후 천진팡은 전화를 걸어 자신의 사무실로 나를 초대한다. 그녀는 점차 미술계에서 에이전시로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춘지에가 얼마 남지 않은 날 우리는 옛 기억이 남아있는 식당에서 만났다.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나는 천진팡이 나를 생각보다 더 잘 알고 있는데 놀란다. 특히 날개가 꺽인 바이올리니스트의 비애를 공감하는데, 놀랐다. 그 자리의 마지막에 천진팡은 자신에게 B형을 소개해달라고 요청한다. 날나리 기질과 보스 기질을 갖춘 B형은 사업계에 발을 넓힌 상태인데 필요한 부분이 있다며, 소개를 요청하고, 잘 되면 보답도 하겠다고 말한다.
보답에 상관없이 큰 부담없이 몇 번을 신경 써 두 사람은 B형의 쓰허위앤에서 만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천진팡은 B형이 주관하는 유럽쪽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자를 원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B형은 상당히 위험한 투자라 강하게 권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천진팡은 어떤 확신인지 그 사업에 몰두한다. 투자의 길이 열리자 천진팡은 나에게 답례를 하기 위해 돈을 보내지만 나는 번번히 거절한다.
그러던 어느날 천진팡은 나를 그녀의 옛 사무실로 부른다. 그곳에서 둘이 저녁을 하고 윗층에 올라가니, 프랑스의 바이올리니스트를 포함해 현악 6중주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첫 연주를 마치고, 나에게 바이올린을 건넸다. 천진팡은 내가 바아올린을 켤 때, 연주하던 곡을 요청했다. 몇 지인들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나는 뛰쳐나온다. 그리고 천진팡이 준 선물을 나는 큰 모욕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자기혐오라고 느끼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나는 천진팡과 거리를 두게 된다.
이후 천진팡이 에이전시를 해주던 화가와 B형을 통해 그녀의 사업이 엉망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의 사무실을 가봤지만 모두 잠겨진 상태였다.
두달 후 의외로 그녀에게 전화를 받고, 알려준 장소로 간다. 베이징에 막 온 청년 노동자들이 사는 합숙소같은 초라한 방이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맞아서 피를 흘린 몰골이었고, 자살을 위해 팔에 약간의 피를 흘리는 상태였다. 나는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간다. 얼마 후 그곳을 찾은 천진팡의 언니를 통해 그간의 과정을 알게 된다.
10년전 베이징을 떠난 천진팡은 광둥으로 건너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초라한 모습으로 남자들의 정부 역할이나 하는 것 같은 그녀를 거들떠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고급 승용차와 돈을 제법 가지고 와서 써대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 후 고향 마을이 개발부지로 들어가면서 마을에 돈이 넘치기 시작했다. 그때 천진팡이 투자만 하면 연 15%의 이자를 주는 투자처로 부각됐다. 지역 당 서기까지 돈을 투자했다. 그녀는 새로운 투자 비용으로 이전 투자자에게 15%씩 이자를 주면 돼서 간단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활동 거점으로 자신이 익숙한 베이징으로 올렸고, 조금만 허영을 부리면 되는 예술계로 옮긴 것이다. 고향 사람들의 돈으로 이런저럼 사업을 벌이다가, 그 방향이 B형까지 갔는데, 그 투자가 중국과 EU간 무역 전쟁으로 번지면서 폭탄을 맞은 것이다. 얼마후 고향 마을에서 올라온 경찰이 그녀를 인계받았다. 그녀는 마지막에 나에게 한 마디 했다.
“난 그저 사람처럼 살고 싶었을 뿐이야”
-<천진팡은 없다> 잡담
베이징에서 태어나고, 베이징대 중문과를 다닌 작가는 마흔을 넘긴 작가다. 그가 지나 온 과정은 태어난 장소가 신분과도 같은 중국에서 어떤 모습인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극히 안정적인 삶을 살았고, 소설도 정통에 가깝게 저술했고, 앞으로 잘 풀린다면 그가 졸업한 학교나 유수의 대학에서 소설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작가라는 뜻이다. 사실 작가에게 이런 잣대는 많이 억울할 수 있지만, 국문학을 전공한 나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의 괘적을 벗어난 작품을 가진 작가가 얼마나 있는가를 물으면 답은 바로 나온다. 결국 많지 않다.
<천진팡은 없다>의 화자 역시 말 그대로 베이징 출신의 그런저런 소년이다. 그 소년에게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가 있다. 그 소녀는 지방 출신 특유의 궁색함을 안고 살지만 나름대로 아름다운 구석이 있고, 거기에 자신이 연주하는 바이올린을 가장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즉 지음(知音)이 생긴 것이다. 뻔한 세상의 툴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천진팡은 그래서 자신에게 인상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가끔씩 자신의 삶의 언저리에 나와서 기억을 들추고 간다면 더욱 그렇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도 흥미를 주는 성장소설이다. 거기에 베이징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키치적 요소가 담겨 있어서 흥미를 끄는 구석도 있다. 다만 스이팡의 창작 세계가 장편에서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가 궁금하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