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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완 Mar 06. 2020

중국 신세계 리얼리즘, 이맛이다

[소설 소개-루네이路内 <자비慈悲>]

작가 루네이를 이끈 선봉문학은 서점이름으로도 번성한다

-작가 루네이

 한국에는 소설 한 편만이 번역되어 익숙하지 않은 작가 루네이는 1973년 쑤저우(苏州)에서 태어났다. 그가 쓴 소설 속 주인공이 그렇듯이 그는 기술 학교를 나와, 공장 노동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스무살을 막 지났을 때인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졌다. 즉 다양한 형태의 제조업이 중국 도시에 자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른으로 갈 때는 중국이 WTO에 가입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서기 시작한 시기다. 그는 이 시기에 우선 다양한 종류의 공장 노동자로 생활하다가 이후 창고관리원(仓库管理员), 영업 직원, 회계, 컴퓨터 설계, 잡화상, 촬영기사, 카피라이터, 회사 대표 등 오만가지 일을 경험한다. 스스로는 ‘실업, 구직, 또 시업, 또 구직, 결국은 그 자체가 일’(失业,找工作,又失业,又找工作。就这么回事)이라고 표현한다. 그런 그를 깨운 것은 공장 안 도서관이었다. 그는 도서관에서 쑤통(苏童), 린바이(林白) 같은 선봉소설(先锋小说)에 꽂혔다. 하지만 복잡한 시대 만큼 그의 여정도 복잡했다. 


 1998년에 남방을 방황하던 그는 충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대만 상인들의 창고 관리를 맡은 것이다. 그해는 창지앙(長江)을 중심으로 대홍수가 난 해로 길에서 만난 현실은 잔혹했다. 고기와 쌀의 고장(鱼米之乡)으로 불릴 만큼 풍요로운 고향만 보던 그에게 바위 틈에 옥수수 밭 만 있는 그곳은 감감했다. 그가 만난 구이저우(貴州)의 아이들은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고, 변변한 옷도 입지 못했다. 그 순간 그는 자기의 상처가 사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자기의 이야기가 그들에게도 힘이 되리라 생각했다. 결국 가장 평범한 언어로 다이청(戴城)이라는 도시의 소년 루샤오루(少年路)를 만들어, 그를 키워가기로 했다. 이런 상상은 2006년 6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깊은 번민의 늪을 지난 후에 비로소 실현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추적3부작(追随三部曲)인 <소년 바빌론>(少年巴比伦), <그녀를 쫓는 여정>(追随她的旅程), <천사는 어디로 추락했다>(天使坠落在哪里)다. 이후 <구름 속의 사람>(云中人), <꽃 거리의 사람>(花街往事), <무행자>(雾行者) 등과 단편소설집 <17살의 경기병)(十七岁的轻骑兵)이 있다. 한국에 번역된 <자비>는 2016년에 출간됐고, 올 1월에는 <무행자>(雾行者)를 출간했다.      

그는 ‘신세대 리얼리즘 문학의 기수’로 떠오르면서 2013년  <꽃 거리의 사람>(花街往事)으로 1회 인문문학신인상(人民文学新人奖)을 수상했고, 2016년 <자비>로 중국어문학미디어상(华语文学传媒奖)을 받았다. 2020년 ‘2회블랑팡 상상문학상’(二届宝珀理想国文学奖) 삼사위원으로 선정됐다.      


-작품 세계

추적 3부작은 주인공 루샤오루(路小路)의 성장 소설로 1990년대초부터 새로운 세기까지 이야기. 진실한 그를 통해 전형적인 청년이 성장하는 이야기. 주인공의 막막하고, 방항적이지만 자아를 찾고, 실존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1부는 1992년 가상도시 다이청에 사는 20세의 청년 샤오루가 기술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를 만나는 장면이다. 기술공의 마지막 황금시대로 그는 기계조립공(钳工), 전기공(电工)으로 전직하다가 마지막에는 가짜 설탕 제조공이 된다. 결국 고민 끝에 그는 야간대학을 준비하고, 직장을 떠나는 이야기다. 

2부는 1999년 샤오루가 1990년 만난 첫 사랑 샤오지(小齐)와의 추억으로 시작한다. 둘다 18살이던 그때 샤오루는 기술학교 학생이고, 샤오지는 국어 선생님의 딸로 미술전문학교 학생이었다. 둘이 감정이 생길 때 국어선생님은 병들고, 샤오지는 결국 다이청을 떠난다. 그녀의 소꿉친구 이상(李翔)은 그녀를 따라가지만 샤오루는 그 도시에 남아 가짜 설탕 제조공이 되는 씁쓸한 이야기를 안고 있다. 

3부는 1995년이 배경이다. 세계는 이미 거대한 용광로처럼 끓고 있다. 샤오루도 설탕공장일 그만두고 세기말의 꼬리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 분주하다. 하지만 27살 전의 인생이란 유효기간 지난 냉장고의 식품이라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기다린다.      

 2011년부터 수확(收获)에 연재하고, 다음해 출판한 <구름 속의 사람>(云中人)의 주인공은 2000년초반 3류대 전산학과를 졸업한 샤샤오판(夏小凡)이 주인공이다. 그는 대학 1학년 어느 밤에 한 여학우와 사랑을 나눈 밤을 잊지 못한다. 몇 년 후 학교에 아름다운 여학생 바이샤웨이(白晓薇)가 등장해 주목을 끄는데, 그녀는 얼마후 실종된다. 그녀의 복잡한 삶과 자신과의 관계 때문에 경찰에 신고도 하지 못하고 직접 이 사건을 추적해간다. 이후 정신분열자들이 모이는 커피숍에 초대받아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녀를 추적해 간다.          


소설 <자비> 표지 



-소설 <자비> 스토리

쉬성이 12살이던 해, 마을에는 대기근이 닥쳐 피난을 떠날 때, 살 수 있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 가족을 흩어져 피난을 나간다. 쉬성은 어머니와 함께 떠났지만 어머니 마저 잃고, 병원에 일하는 삼촌 집에 가서 살아간다. 물론 아버지와 일곱 살 남동생 윈성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공업학교를 졸업한 쉬성은 스무살에 폐놀 공장에 들어가서, 그곳의 전문가인 사부를 만나서 공장 일을 잘 익혀 간다. 그보다 먼저 일하기 시작한 사형 건성도 그곳에서 일하지만 불성실한 태도로 일해 기술은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왕싱메이는 서른다섯살의 과부였다. 열 살짜리 아들이 있지만 시댁서 길렀다. 공장 서기 리톄뉴는 왕싱메이와 내연 관계였다. 그런데 쑤샤오둥이 이들의 불륜 현장을 적발하고, 리톄뉴는 파면당한다.      

이 사건 이후 변소 옆 냄새나는 곳에 사는 왕싱메이에게 건성이 찾아든다. 그러던 중 건성이 벨브를 발로 차다가 걸려, ‘생산파괴죄’로 조사를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왕더파가 건성과 왕싱메이의 관계까지 폭로하고, 결국은 건성은 다리가 부러진 채 십년형을 받아 감옥이 있는 스양으로 이송된다.      

이 사건의 여파로 쉬성은 기계공에서 드럼 통을 굴리는 단순 노동자로 전락한다. 그러던 중 사부가 요청한대로 사부의 딸 위성과 결혼한다. 다만 그녀는 간이 좋지 못해 평생 병치레를 해야하고, 아이도 낳기 힘든 몸이었다.      

얼마 후 쉬성을 돌봐주던 삼촌이 자신이 가장 아끼던 술병으로 죽는다. 유골함을 묻기 위해 고향에 들러 사촌 투건의 도움으로 겨우 매장을 한 쉬성은 돌아오는 길에 사인방이 타도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시기적으로 1976년 10월이었다.      

얼마후 쉬성은 다시 기술직으로 복귀한다. 쉬성도 기술혁신에 참여해 덩쓰셴 등과 좋은 성과를 낸다. 사회가 안정되고, 공장 상황이 나아지면서 생활기반도 서서히 좋아진다. 위성에게 아이가 생기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 부부는 스양에 있는 사촌 투건의 넷째 딸을 입양해 푸성이라 이름짓고 기른다.      

요령이 있는 쉬성은 우유로 인한 배탈 문제나 보조금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장 내에서 조금 인정을 받는다. 1983년에는 건성이 감옥에서 풀려나 돌아온다. 공장 안에서는 그를 받아들이기는 꺼리지만, 쉬성이 이런저런 문제를 제기해 허드렛일을 맡아서 복귀한다.      

공장의 상황이 나이지면서 쉬성 가족도 사택 마을의 집을 한 채 입주한다. 건성도 가족의 일원처럼 작지만 소박한 삶을 살아간다. 얼마 후 건성은 자신을 밀고하고, 이 과정에서 죽은 왕싱메이를 시간(屍姦)한 이야기를 듣고, 왕더파의 혀가 잘릴 만큼 팬 후에 자신은 목을 메고 자살한다.      

개혁개방이후 폐놀공장은 쑤샤오동이 싸게 불하받으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사원지주제로 운영되는 것 같았지만 결국 쑤샤오동의 회사가 되어 간다. 이 과장에서 기술자들은 학력 높은 젊은 기술자들에게 밀려난다. 쉬성도 사무직에서 다시 단순 기계공으로 전락한다. 그런데 얼마후부터 위성의 병이 악화된다. 좋은 의사를 만나 나아질 때도 있지만 결국 죽고 만다.     

어느날 작업장에서 일하던 쉬성은 자료실에서 물건을 빼서 도망가는 남자를 쫓는다. 그 남자는 덩쓰셴이었다. 그런데 설계도를 훔쳐가던 그는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이 쉬성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오히려 같이 공장 설계하자는 제안을 한다. 결국 8만위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그 제안을 수락한다.      

이후 쉬성은 십위안짜리 기술자가 아닌 몇십만위안짜리 공장 설계자로 역할을 한다. 투구게 같이 비싼 음식도 대접받고, 호텔방에서 자신의 옷을 베끼는 안마사를 만나기도 한다. 딸 푸성은 잘 자라서 대학에 가고, 쉬성에게도 어지간한 돈이 생겨서 여유가 있다.      

그러던 중 꿈속에서 위성이 편안히 땅에 묻히고 싶다고 부닥해, 부녀는 그녀의 납골함을 꺼내서 투건이 마련한 스양의 집안 산소를 향한다. 그길에 쉬성은 자기 옆에 있는 회색 승복을 입은 사람을 발견한다. 그리고 스님의 머리에 난 일곱군데의 땜방을 보고, 그가 동생 윈성이라는 것을 알고, 확인한다. 그때 헤어진 후 아버지는 윈성만 구해주고, 자신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망한 것이다. 그 길에서 윈성은 떠돌이 노스님을 만나고, 그를 따라 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오십년만에 만난 형제는 부모님의 최후를 확인한 후 다시 자신의 길을 간다. 쉬성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곳으로 보이는 곳에서 한줌 흙을 챙겨, 아내의 유골함 옆에 넣고 다시 길을 간다. 그리고 가는 길을 안내 한다. 

“위성, 아빠, 바짝 따라와, 길을 잃지 않게.”   

   

쑤저우의 상징 중 하나인 호구검지


<자비> 잡담     

 작가 루네이와 나는 네 살 차이다. 다만 우리나라가 공업화가 빨랐으니, 발전의 맛은 내가 먼자 봤다. 나는 그의 고향인 쑤저우를 잘 안다. 상하이역에서 기차를 타면 한시간 반 정도면 쑤저우역에 도착했고, 다시 4시간 넘게 가면 난징역에 도착했다. 쑤저우는 오랜 관광도시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오나라(吴国)의 도읍이었다. 쑤저우 곳곳에는 오왕 부차와 합려 부자의 유적과 오자서의 한, 적국에 스파이로 온 서시(西施)의 스토리가 녹아있다.      

하지만 지금은 공업도시로 이름이 더 높다. 1994년 2월 비준된 쑤저우공업원구(苏州工业园区)는 누가 뭐래도 개혁개방이후 제조업 도시로서 가장 성공사례가 된 곳이다. 삼성전자도 1995년에 법인을 세워 중국 진출의 교두보로 삼은 곳이 쑤저우다. 쑤저우는 공업원구도 있지만 우시, 쿤산 등과 연계되어 다양한 사업들이 번성했고, 사실상 상하이 경제권에 속해서 수많은 기회가 있었다. 루네이는 당연히 이런 변화를 수많이 봤을 것이다.      

소설 <자비>는 의도적인 꾸밈이 없이 쑤저우처럼 공업화되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을 선명하게 묘사한다. 정년이 되고나면 대부분 암에 걸려서 죽어야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죽음을 담보해야하는 인생을 잘 보여준다. 물론 이런 공장은 원료를 생산하는 중간재 도시들의 현실에 가깝다.      

가령 필자가 오래 살았던 톈진의 경우 우리나라 대기업이 진출한 개발구들은 원료 공장보다는 조립공장이나 완성형 공장이 많아서 환경 오염의 요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석탄으로 고로를 가동하는 친황다오, 탕산 등의 철강 공장, 이 소설에서도 이야기되는 저지앙 원저우 주변의 금속 산업 등은 약과에 가깝다. 더 오염도가 높은 피혁산업, 폐품 가공산업으로 중국 땅의 상당 부분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오염됐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쑤저우를 간 것은 2000년 즈음일 것이다. 나는 서른 초반이었고, 그때 루네이는 이십대 후반이었다. 이 소설을 번역한 김택규 작가는 작가가 1998년 광고업에 입문했고, 4년 동안 이 일을 했으며, 이 시기에 거주지도 상하이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상하이에 와서 무료한 밤에 사이버 공간에 글을 쓰면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06년 6월에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진다. 이후 미친 듯이 월드컵에 몰두한 이후에 <추적 3부작>을 쓰고, 순식간에 중국 문단의 기린아로 부각한다.      

이 소설은 그런 중국 공업도시들의 씁쓸한 진행 과정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아픔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기 편한 것은 쉬성이라는 인물의 모습 때문이다.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스승과의 인연이나, 입양한 딸 푸성과의 관계에서도 그는 전혀 바뀌지 않은 성실하고 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들에게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혹독했다. 그 자리에 있다가는 모두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시절인 대약진 기간(1958~1962년)이 있고, 아사자는 덜했지만 고통스러웠던 문화대혁명(1966~1976)도 있었다. 이 소설은 작가보다는 조금 이른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을 쓰게 된 동기가 아버지의 경험에서 비롯됐기 때문일 것이다.      

또 흥미로운 것은 그가 일반적인 작가의 길이 아닌 노동자에서 어느 순간 작가로의 길로 들어섰다는 점도 흥미롭다. 번역을 통해서 읽는 만큼 문장은 매끄러워졌다고 할 지라도 현장에서 느끼는 느낌은 그 일을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이 만들어내지 못할 수많은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비슷한 성격의 소설로서 장리자의 <중국 만세>가 있는데, 장소나 시대가 약간 차이가 있어 중국 노동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두 텍스트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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