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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완 Jun 12. 2023

할 일이 있다. 고로 존재한다

[2장 신중년 앞 30년 인사이트]

아는 분이 얼마 전 모임에 갔다 와서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일자리가 있는 동기들이 얼마 없더라고요. 내가 새 일자리를 잡은 것을 모두 부러워하더라고요.”     

당연한 일이다. 나이 60살이 넘어서 새로운 일자리를 그것도 직장 생활을 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최저임금의 세배 정도를 받는 이들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분 대학 동기 가운데 현직에 있는 이들은 임원이 된 몇 명뿐이었다. 물론 임원들도 얼마 되지 않아서 일선에서 물러날 운명인 것도 명확하다.      


첫 일자리에서 물러나는 나이가 적게는 40대 후반에서 시작된다. 마케팅 쪽 등 젊은 층들이 빠르게 치고 오는 쪽이다. 금융이나 일반 회사원 등은 50대 초반이면 명퇴 압박을 받는다. 68년생인 한 선배는 얼마 전 회사에서 국내 복귀를 명령받았다. 명퇴를 하면 2년 치 연봉을 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본사의 일반인 대상 상담직으로 돌아와서 임금피크제에 기반해 정년을 채우라는 것이다. 5년을 더 버텨서 받는 연금이나 지금 나가서 받는 명퇴금에 큰 차이가 없었다. 가족이나 지인에게 물으니, 99%는 그냥 버티라는 것이었다.      

가장 큰 일은 나오면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여윳돈을 모아서 창업을 하는 치킨 게임에 빠지면 십중팔구는 망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다. 다시 일을 찾아봐야 과거의 임금은 고사하고, 최저임금을 받는 육체노동 일자리라는 것도 모를 리 없다.      


문제는 이 기간이 30~40년은 기본이라는 것이다. 남자들은 2019년 기대수명이 80살은 넘어서 천천히 올라가고 있다. 일단 50살에 일자리에 나와 일을 하지 않는다면, 30년 간 돈을 쓰고만 살아야 한다.      

문제는 그 기간 동안 쓸 돈이 풍족한 사람은 극히 일부라는 것이다. 돈도 없지만, 자신의 자리도 어렵다. 집에서 세끼를 먹는 사람을 가리키는 ‘삼식이’가 되는 순간 자존감을 지키는 것은 힘들어진다. 결국 신중년들은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과연 중년에 만족할 만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문제는 신중년들은 어릴 적부터 치열하게 경쟁하던 현상을 신중년 일자리에서도 같이 겪어야 한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이는 아파트 경비원 자리도 확실한 뒷배가 필요하다.      


그럼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일단 개인 차원에서, 국가차원에서 다양한 전략을 짜야한다. 우선 개인 차원을 보자. 퇴직 후 일자리 난에 가장 시달리는 사람은 사무직 출신들이다. 사무직은 퇴직도 빠른데, 일자리도 드물다. 자신이 할 일과 연결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기술을 배우는 게 바람직하다. 각 지자체는 다양한 신중년 재교육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소소한 일을 할 수 있는 노동자는 줄어든다. 농촌이나 도시 노동현장에서 이 일을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신했다. 물론 우리나라 경제가 지금처럼 좋다면 외국인 노동자가 계속 들어오겠지만, 인구감소로 인해 수익이 낮아질 때, 그들이 한국에서 일할 이유는 없다. 그런 일자리들은 필수적으로 누군가가 채워야 하는데, 기술을 익힌 신중년들이 대체할 수 있다.      


국가차원에서는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김태유 교수는 인간의 평균수명이 100세에 이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개인과 사회의 '이모작 경제'를 통해 세대갈등과 경제 저성장 문제를 해소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고 지식습득 능력이 뛰어난 20~40대는 제조업과 경영 등 인생의 첫 농사를 짓고, 성장의 경험과 경륜을 갖춘 50~70대는 관리와 행정 등의 분야에서 인생의 새로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700만 베이비붐 세대가 더욱 일을 잘할 수 있는 일반서비스, 관리, 행정, 사무 등은 신중년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20~30대에 취업해 60대에 은퇴하는 일모작 경제활동을 해왔지만, 수명연장 시대에는 40대 후반부터 준비를 시작해 50대 중반 은퇴하기 전에 또 한 번의 경제활동에 뛰어드는 이모작 경제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국가의 역할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식품이나 관광 등 한국에 맞는 일자리도 만들어 내야 한다. 또 생활하는 공간의 주변에서 적당한 일을 하고, 수익을 얻는 현장형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 그럼 측면에서 필자가 제안한 ‘한국형 생태이민’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일은 경제적 가치도 있지만, 사회적 가치도 있고, 개인적 가치도 있다. 개인에게 일은 삶의 질을 향상할 뿐만 아니라 소속감과 자부심을 준다. 아울러 노동은 개인의 기술과 능력을 개발하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을 때 가장 큰 상실감을 느끼고, 좌절하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나는 일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이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 

나는 일한다. 고로 존재한다. 뤼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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