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과 무기력 사이에서 2
여행지에서 마주해
나를 투영한 예술가들 이야기.
무언가를 동경하고
혹은 좌절한, 나와 같던 사람들.
모네, 고흐가 동경한 우키요에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고 주변 국가 벨기에의 소도시를 다니며 실감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19세기 서구를 휩쓸었던 일본풍 예술 사조 자포니즘이었다.
유럽 국가 내 서점에서는 일본 예술 서적 란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특히 2주간 머물렀던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에는 공공 도서관은 물론, 일반 서점에도 일본 우키요에(일본 풍속화로 채색 목판화가 주를 이룬다) 서적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네덜란드가 17세기 이래 거의 독보적으로 일본과 무역했던 나라였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덕분에 전시를 보듯 책을 뒤적거리면서 알려진 작품 외 다양한 우키요에를 볼 수 있었다. 지금 보아도 현대적인 미가 느껴졌다. 시원시원한 구성, 절제된 색감에 감탄했다. 특히 후지산 우키요에를 모아놓은 <Mountain Fuji>를 보면서, 그 당시 서양에서 충격적이었을 부분을 예상하며 보는 재미가 있었다.
우키요에는 19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패션, 액세서리 등과 함께 유행했고,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포니즘에 완전히 매료되어 그들의 화풍에 고스란히 그 영향이 드러났다.
모네(Claude Monet)
일본화를 사랑한 대표인물 중 인상파 화가 모네가 있다.
위 수련 연작 중 두 점은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감상했다. 시간에 쫓겨서 전시를 본 뒤 책자와 굿즈를 사 가지고 허겁지겁 나왔는데, 이 전시 책자에도 일본 판화를 다루는 챕터가 따로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수련이 가득한 작품들은 모네의 자포니즘 사랑의 결정체, 지베르니 정원에서 탄생했다. 모네는 지베르니로 이주한 뒤 자신의 정원을 일본식으로 꾸몄다. 연못의 나무다리는 일본식이고, 수련은 일본에서 들여왔다. 그의 말년은 이 정원에서 시작해 정원으로 끝났다. 고등학생 때 이곳에 갔었는데, 카메라 고장으로 사진을 다 날렸었다. 그가 직접 애정을 가지고 가꾸었다는 이 정원은 그림 같이 수련과 각종 꽃들로 덥수룩했고, 집은 생각보다 자그마했다. 사진 속 모네처럼 사랑하는 것들로 채운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을 모네가 그려졌다.
그가 수집한 우키요에가 231 점이다. 그는 바로 위 오른편 그림과 같이 우키요에의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점 표현을 자신의 수련 작품들에 녹여 표현했다. 그렇게 일본화에 심취해 백내장으로 시력저하가 오면서까지 붓을 놓지 않고, 죽을 때까지 그린 모네의 수련 작품 수가 300여 점이나 된다고 한다.
일본은 이후 사진술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레 우키요에의 인기가 사그라들었지만, 서양에서는 30여 년 이상 자포니즘이 지속됐다.
반 고흐(Vincent van Gogh)
또 한 명의 일본화를 동경한 사람은 반 고흐다.
왼 편 잘린 귀를 동여맨 고흐의 자화상과 오른편 그림 속 탕기 뒤 벽에서 우키요에를 볼 수 있다.
여행 후반에 머물던 네덜란드 남부 도시 마스트리흐트에서는 이웃 나라 도시 브뤼셀, 아헨이 기치로 1시간 거린데, 암스테르담까지는 3시간이었다. 그래도 반 고흐 미술관은 꼭 가야겠다 싶어 다녀왔다.
반 고흐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뒤 27세의 나이에 그림을 독학했다. 본래 그는 농부들이 이루는 값진 노동의 삶을 동경했고, 그의 초기 작업에 밀레와 같이 농경 생활의 아름다움을 담으려 노력했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그림들은 우리에게 알려진 고흐의 화사한 그림들과는 달리 대체로 어둡다. 그리고 그의 그림 인생 전기에 해당하는 대작 <The Potato Eaters>는 그가 좋아했던 밀레식 그림을 기준으로 비웃음만 사게 된다.
하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이러한 고흐의 그림은 그가 파리로 넘어 간 이후부터 인상주의와 자포니즘의 영향을 받으며 변해갔다.
우키요에를 열렬히 사랑했던 그는 1888년에 또 한 번 변화를 맞이했다. 바로 일본 그림 속 풍경을 통해 상상했던 마음속 이상인 일본 대신, 비슷한 기후 환경으로 보였다는 프랑스 남부 아를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 아를에서의 생활을 기점으로 그의 그림은 햇살 가득 풍성하고 자유로운 색채를 품게 된다.
모네와 같이 반 고흐 또한 우키요에를 여러 점 소장했다. 이젤 옆에 우키요에를 두고 따라 그리며 그 스타일을 자신의 그림으로 가져오려 노력했을 정도였다. 오른편 그림은 미술관에서 직접 본, 당시 유명했던 히로시게의 목판화를 모작한 것이다. 한자까지 삐뚤빼뚤 그려 넣은 데 애정이 느껴지더라.
결국 우키요에는 반 고흐의 그림 스타일에 큰 변화를 주었다. 은은하면서 담백한 컬러, 단순하고 명쾌하게 대상을 표현하는 선의 요소들 등이 돋보이는 반 고흐만의 느낌. 이을 확립하는 여정 가운데 일본을 향한 동경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모네와 반 고흐는 그들이 동경했던 일본 예술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냈다. 동경만으로는 그리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도 동경하는 사람이 있다. 롤 모델은 딱히 없지만 자신의 색을 가진 사람들의 삶이 부럽다. 하지만 1화에서 고백했듯, 그 부러움이 순식간에 무기력으로 바뀌는 게 문제였다.
내 색을 찾으려는 노력 또한 쉽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여러 가지를 시도하며 내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찾는 중에 있다. 좋아하는 명화 일부를 모작해보거나, 멋진 작업들을 자주 찾아본다. 한데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손 끝에서 어디서 본 듯한 그림 스타일이 묻어 나온다. 이때 내 속에서는 엄격한 검열을 거쳐버려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이건 내 게 아닌데' 하고.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서 그 생각이 완전히 깨졌다.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참 단순하게도, 내 무기력함이 위안이 되는 순간은,
'아, 이런 천재 화가들에게도 나 같은 면이 있었구나'를 느낄 때였고,
검열을 멈출 수 있게 된 건,
동시대를 살면서 한 사조를 공유한 화가들의 화풍이 함께 변화했고, 이는 결코 독자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깨달아서이다.
대표작 뒤 내가 몰랐던 엄청난 양의, 정체 모를(?) 작업을 도서관에서 보물찾기 하듯 발견하면서,
'어, 이건 꼭 누구 그림 같네. 이때 이런 풍이 유행했지' 하거나 '유명해지기 전까지 엄청 돌고 돌았구나'하는 생각들의 반복이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창작은 온전히 새로운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보고 겪고 생각한 것들의 총합, 이를 쓰임에 따라 잘 배치하고 조합한 결정체인 것일 텐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자포니즘과 이를 적극 수용했고 자신의 색을 찾은 모네와 고흐를 통해, 나는 조금 자유로워진 것 같다.
*다음 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관계 속 화가들 이야기예요. 이전 1화는 아래 링크에서 봐주세요. 여기까지 봐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chograss/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