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생 Aug 25. 2019

피카소와 마티스, 애증의 양가감정을 마주하며

동경과 무기력 사이에서 3


지난 삶이 꼭 흑백 영화 같다. 흑과 백만 있고 회색은 없는 영화. 지점토처럼 두 색을 반죽해 회색을 만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애증(愛憎)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대립하는 두 가지 감정은 반죽되지 않는 지점토처럼 계속해서 싸운다.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품는 건 인간에게는 정서적 숙명이기도 하다.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본질처럼, 이성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이 둘은 애(愛)로 시작해 증(憎)으로 끝난 관계였다.



스페인 빌바오 Azkuna Zentroa 복합 문화예술 공간에서 읽은 서적



어려서부터 천재로 불렸던 피카소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지만 무명이었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의 그림을 극찬한 사람이 있었는데, 당시 최고의 화가이던 앙리 마티스였다.


야수와 같이 본질을 뚫는 듯 한 마티스의 색채 표현에 피카소는 경이로움을 느끼고 그를 스승으로 삼는다. 둘은 서로의 재능을 누구보다 지지하며 작업을 이어나갔지만 이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큐비즘을 시도한 작품. 앙리 마티스, [피아노 레슨]ㅣ [금붕어와 조각상]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로 주목받으며 마티스 그림을 비판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대립한다. 서로의 작품을 견제하고 표절 논란을 일삼는 등 한 때의 우정은 완전히 깨져 버린다.


피카소는 자신만의 스타일 큐비즘(입체파)을 확립해 그 입지를 다져갔지만 마티스는 점점 밀려났다. 마티스는 피카소의 큐비즘 작업을 시도해보기까지 했다.


이 둘은 그림만큼이나 성향도 달랐다. 피카소는 스페인 사람답게 열정적으로 직감에 의해 작업했고, 마티스는 신중하고 냉철한 성향으로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작업했다. 맘속으로는 대체 불가능한 서로의 예술적 재능을 동경했지만, 1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둘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파블로 피카소, [노란 머리의 여인]ㅣ앙리 마티스, [꿈]


피카소와 마티스는 서로의 그림에 영향을 미치면서 그림 전쟁을 이어나갔는데, 후반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돼 피카소가 미술계의 주목을 휩쓸었다. 이에 마티스의 태도는 이러했다, '피카소와의 공동 전시에서 내 그림이 그의 그림에 묻힐 테니, 피카소 옆에 내 작품을 놓지 말아 달라'라고.



방스 로제르 예배당 벽화


시간이 흐르며 서로를 향한 미움도 점차 사그라들었을까, 피카소는 자신이 맡게 된 12세기 적 성당의 대형 벽화 작업 앞에서 압박을 느끼며, 직전에 방스 성당 벽화를 그렸던 마티스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다며 그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파블로 피카소, [캘리포니아 화실]


하지만 이들은 끝내 예전 사이로 돌아가지 못했고, 피카소가 미술계의 정점을 찍었을 때 마티스는 세상을 떠났다. 피카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통함에 [캘리포니아 화실]을 그리며 애도했다.


피카소와 마티스의 애증 관계를 발판으로 피카소는 무명의 시기를 거쳐 최고의 화가로 성장했고, 마티스는 야수파 이후 새로운 시도와 반발을 통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견고히 다졌다.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앙리 마티스ㅣ파블로 피카소 @nasjonalmuseet



서로를 동경하고 또 미워하며 20세기 미술의 양대산맥을 이루었던 둘을 보며 나의 생각에 다다랐다.



‘증(憎)을 버리지 못해 죄책감을 가지지도 말고, 동경이 무기력으로 또 변모하더라도 괴로워하지 말자’



내 양가감정도 자연스럽게 바라보는 게 어떠냐고, 흑에서 백으로 바꾸려 버거웠던 노력을 내려놓자고 말이다.







여행을 정리하고 있는 요즘, '기억을 정리하는 일은 참 좋은 거구나' 깨닫는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처럼, 아무것도 아니었던 내 기억이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아, 이 기억이 나한테 그런 의미였구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쓰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에 대해 통합적인 시각이 조금씩 생기는 걸 느낀다.


무기력하게 떠난 유럽에서 예술가들에게 나를 투영하며 마음 한 구석 묘하게 편해졌지만, 쓰기 전에는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니까.


과거의 화가들과 생명력 있는 대화를 나누었던 <동경과 무기력 사이>는 이번 화로 마친다. 동경도 무기력도 모두 그림 재료로 사용했던 그들을 통해, 나를 찾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내 삶에 찾아온 것들을 더 바라봐주고 '무엇'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싶어 졌다.






Lost & Found, 나를 찾는 여행 중입니다 :)



https://brunch.co.kr/@chograss/128



https://brunch.co.kr/@chograss/131



매거진의 이전글 모네와 반 고흐가 내게 건넨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