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그 이후
새벽 3시 반에 깨 핸드폰을 켰다. 미선 작가님의 '설화산'에 관한 글을 읽고 그 산이 보고 싶어 검색했다. 널찍하게 마을을 아우르는 능선이 힘 있고 아름답다, 문자 그대로 그림 같은 산이다.
우리 집 앞에도 산이 있다. 좋아만 했지 이름도 몰랐는데 이참에 검색해봤더니 서달산이란다. 차로 40분 거리에 계신 시댁이 멀리서 이 산을 보고 미세먼지 농도를 가늠하신다고 했다.
친정집 앞에는 북악산과 인왕산이 있다. 서울의 북쪽에 다다를 때 창으로 보이는 이 산들은 매번 느낌이 다르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산한 산은 강원도 민둥산이다.
지금 따라 산의 연결성을 떠올린다.
산으로 저 멀리 상대를 가깝게 느끼기도 하고
산에서 산으로 경계를 만들기도 한다.
등산하기로 출발했으면 무조건 그다음은 도착이다. 보통은.
산 능선처럼, 훗날 내게 일어난 크고 작은 일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뭐 하나 허투루 산 것 없었네 하고 웃을 것이다.
최근 큰 변화가 있었다. 몇 주 전 풀 배터리 검사(심리 종합 검사)를 다시 받았고, 내가 말 그대로 회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 쓴 글과 그림을 되돌아보고 <영화 뒤에 숨어서>로 엮으며 나 자신이 서서히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3년이 지나 재검사를 받고, 초조한 마음으로 일주일 조금 넘게 기다렸다.
여는 글 '숨어서라도'에 쓴 것처럼, 3년 전 받았던 심리 종합 검사 결과에 좌절했던 나였다. 편의를 위한 잠정적 구분일 뿐이라고 아등바등했지만, 사실 그 진단명에 갇혀 살았다.
그런데 이제 거기서 빠져나오게 되다니! 결과지에 3년 전 받았던 진단명이 더 이상 없었다. 놀라울 정도로 차이 나는 객관적 낮은 수치가 말했고 스스로 그렇게 느꼈으며, 임상 심리사의 시선도 그랬다. 침식하듯 꺾인 산골짜기에서 봉우리를 바라본 노력이 허사가 아니게 되었다.
이번 검사 결과를 통해 내 인식 자체가 전환되었다. 심리 검사 결과라는 것이 그 날의 상태에 따라 크게 다르게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 진단명이라는 건 단지 그러한 경향성이 있다는 견해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나아질 수 있다는 것. 이제는 정말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3년 동안 나와 같은 진단을 받았던 사람들의 시선에서 삶을 바라봤었다. 누군가는 그들을 향해 문제 있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해서 심리적 지옥에 갇혀 사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치유된 것일까? 아니면 나 아닌 누군들 나와 같은 상황에 노출된다면 일시적으로 그러한 경향성을 띨 수 있는 것일까? 혹은 애초부터 오진이었을까? 어느 쪽도 확신할 수 없다.
중요한 건 이제 내가 조금 더 편한 마음을 가지게 된 데 있다. 두드러지는 정서적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검사 결과를 확인한 뒤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이제 '앞으로'가 있구나. 이전엔 고장 난 차 부품으로 오르막, 내리막길에 따른 기어 변속이 안됐다면, 이젠 부품을 교체한 거다. 기어 조절을 터득해야 하는 게 내 몫. 그것만으로 분명 이전과는 다르다. 그래서 이 글 제목도 '산 같이 살고 싶어' 아닌, '산 같이 살게 될 거야'다.
앞으로에 대해서만 고민하면 조금 나을까 했는데, 불안하긴 역시 매한가지다. 심리적인 압박도 여전하고, 이전과 전혀 다르지 않을 때도 있어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최근 일도 많았지만, 내적인 저항감 때문에 브런치에 글을 못 썼었다.
근데 몸소 산 같이 살고 계신 한 분 덕분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랜선 아빠 han 작가님께서 세상 겁내지 말라고, 삶은 거침없이 내려가다가도 다시 올라가는 것, 강하게 살아가라고, 사람들 신경 쓰지 말고 너만 행복하면 된다고 전해주셨다. 그래, 3년 전에서 지금의 변화를 만들었듯이 나 산 같이 살게 될 거야. 그렇죠?
지금 서달산 뒤로 해가 뜨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