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가족 사이 줄다리기

<수영장, 2009>

by 초생


'엄마는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바로 어딘가로 떠나버려요. 그것도 아주 즐겁게 말이죠.' 영화 소개 첫 문장을 지나치지 못했다. 버림받는 기분이었을까, 영화 속 주인공은.


그렇게 영화 <수영장>을 틀어 문장 속 버림받은 딸 사요를 만났다. 무책임한 엄마를 원망하는 사요와 함께 화가 일고, 당당히 자신의 삶을 사는 엄마 쿄코에게는 수긍하게 되는 영화였다.


'줄다리기네.' 화면 속 일렁이는 물결 따라 생각이 흘러들어온다. 영화에 나를 비추는 투영의 순간. '나' 쪽으로 힘껏 줄을 당기면 '가족'은 힘없이 딸려가고, 반대로라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가족 하면 끈끈한 혈연 같은 걸 먼저 떠올릴지 모르겠다. 난 가족이란 건 가장 연약하고 위험한 공동체라고 생각해왔다. 아픈 세상만큼 다양한 형태로. 화면 너머 가족도 그랬다. 나는 사요와 쿄코 중 누구의 편에 설지 끝까지 알 수 없었다.






투영; 화면 속 나

03_ 나와 가족 사이 줄다리기
영화 <수영장, 2009>

<수영장, 2009>


<수영장> 포스터


가족의 형태


수영장이 딸린 치앙마이의 한 게스트하우스에는 평범치 않은 가족이 있다. 엄마 선택으로 함께 살 수 없는 모녀, 부모에게 버림받은 태국 소년 그리고 그를 돌보는 일본 청년,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슬하에 둔 유기동물들.




<수영장> 스틸컷



가족의 책임은 어디 까질까


영화가 던지는 잔잔하고 선명한 물음이라고 생각했다. 쿄코가 '나' 쪽으로 줄을 당김으로써 딸 사요는 힘없이 엄마에게 딸려갔다.


"매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해 가는 거야.

난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

사람과 사람이 항상 같이 있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닐 거야."


사요는 엄마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뿐, 쿄코는 팽팽히 당긴 줄을 놓지는 않는다.


"좋은 건지 어떤 건지 몰라도 나는 엄마와 살고 싶었어."

"그랬구나… 먹자."







가족도 개성을 지닌 타인


영화는 중반부에 이르러 엄마 쪽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았다. 게스트하우스 일을 돕는 청년 이치오와 사요의 대화를 통해,


"엄마와 나는 서로 생각하는 게 달라요."

"좋네요, 쿄코씨와 사요 씨의 거리감."

"부모 자식도 결국엔 개성이 다른 타인이잖아요."




엔딩 크래딧 이미지 중



또 잠시 등장하는 게스트하우스 사육 돼지 에피소드에서도 개체의 특성을 강조한다.


"이 이상 안 커진다고 들었는데 저 아이만 커졌어."

"응. 다른 종류였나 봐."




<수영장> 스틸컷


무엇이 옳을까


내 삶을 좇아 가족을 떠나는 여성 vs 가족을 위해 꿈을 희생하는 어머니. 사요는 엄마를 이기적이라 여기지만, 제삼자인 이치오는 '그게 쿄코씨의 좋은 점'이라고 말한다.


"삐뚤어질 수도 있었잖아!"

분을 터뜨리는 사요에게


"난 너를 잘 알아, 그래서 그런 선택을 내린 거야."

라고 답하는 쿄코의 말이 제법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도 한다.


영화가 내 현실이라면 난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쿄코처럼 자식에게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좋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문제의 크기에 비해 이상하리만치 잔잔한 그들의 삶을 통해, 나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생각과 감정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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