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 식당, 2006>
숨은그림찾기.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영화 속 의미 찾기가 즐겁다. 숨는 게 특기라서 일지 혹은 숨긴 감정을 알아차려 주길 바라는 내 소극성의 발현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카모메 식당>은 맛있는 음식, 치유, 핀란드 로케이션의 매력이 더해져 '힐링', '슬로우 라이프 무비'로 인기가 있었다. 나는 그 속에 꼭꼭 숨어있는 듯한 주인공 사치에를 찾았다.
어딘가 동질감이 느껴지는 사치에의 시선을 따라가다 깨달았다. 내가 그녀에게 애착이 갔던 이유는 사치에의 모습에서 진짜 감정을 숨기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란 걸. 그렇게 화면 속 그녀의 독백, 표정 끝에 묻어나는 적막의 언어에 조용히 공감했다.
누군가는 상처 받은 이들이 함께 치유되는 스토리에, 누군가는 따뜻하고 소소한 연출에 감동할 것이다. 각자에게 숨은 그림이 다를 것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투영; 화면 속 나
05_ 숨은 사치에 찾기
영화 <카모메 식당, 2006>
카모메 식당
특별한 목적없이, 여유를 찾아, 살기 위해 핀란드 식당에 모인 사람들. 익숙한 곳을 떠나 온 이유는 제각각이다. 그들은 그저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 그러다 문득 새로운 세상을 횡단할 용기를 얻기도, 잃어버린 무엇을 찾아 경쾌히 가게를 떠나기도 한다. '카모메 かもめ'라는 식당 이름처럼 이 곳 손님들은 꼭 '갈매기' 같다. 철 따라 떠도는 손님들 그리고 그들이 잠시 머무는 항구, 카모메 식당.
오니기리
카모메 식당 메인 요리는 오니기리(주먹밥)다. 타지에선 오니기리가 낯설 법도 한데 사치에는 특별한 광고도 하지 않는다. '일식' 하면 떠오르는 스시, 정종을 찾는 류의 손님과 카모메 식당 분위기가 맞지 않는다는 그녀의 소신 때문이다. 어쩐지 조금 고집스럽다 했는데, 오니기리는 어릴 적 사치에와 아버지가 나눈 추억의 음식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치에의 집에 머물면서 식당일을 돕게 된 미도리의 제안에 등 떠밀리듯 '핀란드에서 먹힐 오니기리'를 시도해본다. 이도 저도 아닌 맛에 실패인가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퓨전 오니기리를 시도해본 이후 사치에는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시나몬롤을 만들기 시작했다. 비로소 빈 가게는 손님으로 북적이게 되고, 자연스레 오니기리도 팔리게 된다.
숨은 사치에
사치에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다. 무술가였던 아버지가 '다른 사람 앞에서 울지 말아라' 말씀하셨다는 그녀의 담담한 독백이 영화 초반에 들린다. 또 사치에는 홀로 수영을 하고, 자기 전엔 의식처럼 합기도를 한다. 오랫동안 자신을 단련해왔을 모습이 그려졌다. 스스로 슬픔을 삼키며 사는 법을 터득해야 했던 그녀였을 것이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꽃은 카네이션..." 동요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면, 사치에가 내심 얼마나 엄마를 그리워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일본은 '어머니 날'이 따로 있고 카네이션을 드린다).
그녀는 상대를 안심시키는 따스한 미소 뒤 정적 같은 표정을 짓고, 타인의 슬픔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는다. 음식을 내어주고 휴지를 건넬 뿐. 속마음을 드러내기보다 에둘러 표현하고, 진지한 질문에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재빨리 전환하는 모습에, 힘들 때도 감정을 꾹꾹 숨겼을 어린 사치에가 아른거렸다.
함께, 미지의 자신으로
미도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퓨전 오니기리를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사치에는 시나몬 롤을 만들었을까?
영화 초반, 사치에는 활달한 모습 뒤 모든 것에 방어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특히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그렇다. 한 핀란스 여성은 술을 들이부으며 실연의 아픔을 표출했고, 누군가는 조언을 구하고 또 누군가는 식탁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지만, 사치에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다.
사치에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보여준 변화는 그녀가 슬픔을 털어놓고 함께하는 삶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다. 한결같이 단단한 모습을 보이던 그녀가 오니기리에 엮인 가족사를 털어놓는 모습은 이전과는 달라진 사치에다. 오랜 시간 슬픔을 혼자 앓는 것이 익숙했을 그녀가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람들에게 보이는 진짜 자신의 모습.
영화 마지막에 다다르며, 그녀는 1년에 두 번 쓸쓸히 먹던 아버지 표 오니기리를 사람들과 함께 먹는다. 사치에 뿐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이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부터 미지의 곳으로 한 걸음 옮겨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카모메 식당 사람들이 있었다.
<카모메 식당>의 사람들이 나에게도 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숨어있는 사치에를 찾은 게 좋았다. 머물던 곳을 호기롭게 떠난 갈매기가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을 항구, 사치에의 손을 꼭 잡아주고 싶었던 카모메 식당이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