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 들고 허리 펴고
추석날, 아들과 함께 오랜만에 오래된 시장을 찾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손을 잡고 다녔던 그곳. 4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명절날 시장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했다. 활기찬 시장의 풍경들 상인들의 시끌 벅적한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곳에서 길을 잃을까 한 손으로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서 다른 손으로는 군것질을 꼭 잡고 가던 기억까지.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우리가 들어선 길은 시장의 뒷골목이었다. 분명 번화하고 활기찬 거리를 기대했건만, 그 대신 고요하고 낡아버린 골목길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잘못된 길로 들어섰음을 직감했지만, 이 골목도 그 시장의 일부였기에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곳도 한때는 내가 모른 채 지나쳤던 시장의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았고, 몇몇 가게들만이 간간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전에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이 길이 지금은 너무도 고요했다. 한쪽 구석 작은 의자에 고개를 푹 숙이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담배는 다 태워졌없어졌는데, 여전히 빈 담배갑을 손에 쥔 채 조용이 앉아있었다.
그 모습이 나를 잠시 멈추게 했다. 어린 시절에 이 길을 걸었다면, 그를 ‘할아버지’라고 불렀겠지. 하지만 이제는 나와 한폭 거리에 있는 것 같다. '아, 무겁다.' 문득 내 어깨를 무언가가 묵직하게 누르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무거운 거야.' 그래 삶은 원래 무거운 거였어. 하지만 거의 동시에 마음 한편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턱 들고, 허리 펴고.' 삶이 무거워질수록, 어깨를 짓누를수록 턱을 들고 허리를 펴는 데 더 많은 힘이 들겠지만, 그렇지만 '턱 들고, 허리 펴고' 걸어야지.
아들과 함께 그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해 본다 . "조금 더 힘차게, 턱 들고 허리 펴고 저 길의 끝까지 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