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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승 Jul 05. 2022

04. 의식과 인지

산티아고 순례길 사색 여행기


Pamplona에서 Zariquiegui를 지나 산 중 야영지까지 약 15km


레코드 판에서 나올법한 노랫소리에 잠을 깬다. 시계는 오전 여섯 시를 가리킨다. 아침 식사 시간이구나. 아니나 다를까 나와 같은 방을 쓴 일행은 밤새 우렁찬 코골이를 자랑했고, 나는 중간중간 잠을 깨거나 뒤척일 수밖에 없었다. 기지개를 켜고 식당으로 오니 간단하게 커피와 우유, 토스트가 준비되어 있다. 아침 식사와 잘 어울리는 이탈리아, 독일 가곡들이 들린다. 숙소 주인의 선곡 솜씨가 마음에 든다. 오늘의 목표는 서두르지 않기다.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왔지만 바로 순례길로 향하지 않고, 분위기가 좋은 카페를 찾아서 들어간다. 커피를 한 잔 주문하고 (이제는 스페인어로 주문할 수 있다) 태블릿을 켜서 밀린 일들을 처리한다. 점심까지 먹고 느지막이 출발해서, 목적지까지 가는 길 중간에 야영으로 하루를 보낼 생각이다. 오늘은 기필코 회복에 집중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내리라.



갓 태어난 아기는 주변과 자기 자신이 다른 개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자신이 곧 세상이다. 내가 배가 고프면 세상 전체가 배가 고프다. 내가 졸리면 세상 전체가 졸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과 자신은 (비록 연결되어 있으나) 별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배고프다고 해서 엄마가 항상 즉시 내 허기를 해소시켜주지 않는다. 내 손가락은 쥐었다 폈다 할 수 있지만, 천장에 보이는 모빌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인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의식하게 되고, 스스로의 행동 범위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탐구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보면 아기의 성장이라는 건 비단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시기일 뿐 아니라, 내동댕이쳐진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그 한계성을 알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


나는 신생아의 성장 과정을 보면, 인류 초기부터 문명의 시작, 현대화까지의 과정을 함축시켜놓은 것 같다. 처음 눈을 떴을 때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무엇인지, 혹 내 생존에 위협이 되는 요소는 아닌지 유심히 관찰한다. 초기 인류도 그랬을 것이다. 평소에 지내던 숲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요소들은 무엇인지 (예를 들어서 나뭇가지, 부싯돌, 먹을 수 있는 식물들, 조심해야 하는 독뱀 등) 반대로 내가 처음 보는 혼돈의 주체는 무엇인지 (처음 보는 동식물, 처음 맡는 흙냄새,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 처음 맡아보는 대변 냄새 등)를 안전한 요소, 위험한 요소, 식별 불가능한 요소로 구분지어야 한다. '창 밖으로 차가 지나가네' '옆 집에서 또 싸우나 보다' '집 앞 가로등이 또 고장 났나 보다' 같은 사소하게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도, 사물을 인식하고 그 사물의 특징을 인지하기 위한 수십 년의 진화 과정이 필요했다.



카페를 나왔을 땐 이미 점심을 먹을 시간이었다. 어차피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먹을 음식도 같이 사야 하기에, 마트에 가서 바게트 하나와 샐러드 그리고 늘 옆에 끼고 다니는 바나나까지 챙겼다. 바게트가 충분히 길기 때문에, 지금 배부를 정도 먹어도 내일 아침까지 남을 것이다. 열두 시가 지나서야 순례자는 다시 자신의 본분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걸어가면서 다른 순례자나 현지인에게 인사를 주고받는 게 익숙하다. 더 잘하고 싶어서, 길을 걸으면서 스페인어 여행 회화 책을 읽어본다. 두 시간을 걷자 오른쪽 발목이 아려오기 시작한다. 둘째 날 무리해서 걷다가 긴장이 풀려 살짝 접질렸는데, 어제는 괜찮더니 오늘에 와서야 통증을 호소한다. 걸음 속도는 자연스레 더 느려질 수밖에 없다. 중간 마을에 도착해서 발목을 풀어준 뒤 어디쯤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지 고민해본다. 이 상태로는 한두 시간 걷는 게 한계일 테니, 산 중턱에서 밤을 보내게 될 것이다. 런 마인드가 야영의 가장 큰 장점이다. 반드시 어디에 도착해야 한다고 재촉할 필요가 없다.




인간이라는 범주를 벗어나도, 자기 주변의 위협을 동족보다 더 많이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은 생존에 있어서 강력한 이점을 제공한다. 반대로 같은 환경에서 더 많은 정보를 흡수한다는 것은, 남들보다 분석해야 하는 정보가 훨씬 많다는 말과 같기에 더 예민하거나, 불안감을 더 많이 느낀다.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질로 여길 수도 있다. 이미 더 예민하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흡수하고 분석한다 것이다. 원시 종교에서 샤먼들의 역할이 그랬다. 그들은 일반인보다 훨씬 더 예민한 기질을 띄고 있기에, 사소한 변수에도 많은 패턴을 찾을 수 있었고 를 통해 부족에 위기가 닥쳤을 때 미래를 예측하는 역할을 했다. 같은 시공간에서 더 짙은 경험을 하는 사람이, 타인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제 왜 영화 등 미디어에서 보이는 샤먼들이 그리 괴팍한 성격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가?


현대에 와서도 인지 능력은 여전히 강력한 무기이다. 공부를 잘하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비결로 메타인지(Metacognition)를 꼽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타인지는 간단하게 자기 자신과 주변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인데, 공부로 예를 들자면 내가 하루에 몇 시간을 투자하고 어떤 방향성 (언어로 예를 들자면 문법인지, 어휘인지, 작문인지 등)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파악하면서 약점을 보완하고 공부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도록 한다. 내가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보완해주고 있는 역할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학생은 본인의 약점, 보완할 점에 대해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분석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게 부족하다. 누군가는 성실성을 지적할 수도 있지만, 성실성을 문제 삼아 봐야 질책하는 결과밖에 안된다.



나무 밑에 숨은 텐트

다리를 다치니까 산을 오르기는 쉽지만 내려가는 게 너무 어렵다. 다음 도시에서는 반드시 스틱을 구매해야겠다. 산길을 조금 내려가다가 적당한 위치에 텐트를 설치했다. 일기 예보 상에는 뇌우가 있을 예정이라 나무 밑으로 위치를 잡았다. 아직 하늘은 맑지만 산 중턱이라 바람이 심하다. (이 부근엔 풍력 발전기가 줄지어 늘어져있다.) 텐트에 들어가 짐을 정리하다가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한다. 생각해보니 자연 한복판에 혼자서 야영하는 건 살면서 처음이다. 첫날 야영을 했을 때도 다른 사람들이 많은 캠핑장이었고, 그다음 야영은 레오와 둘이서 하지 않았는가. 뇌우까지 예정된 상황이라 바람만 불어도 움츠러든다. 그러다가도, 혼자서 야영하는 건 순례길을 하면서 결국 마주할 수밖에 없는 '필요한 일'이라고 납득을 한 뒤 '끽해봐야 죽는 것밖에 더 하겠어?'라고 읊조리며 침낭을 꺼낸다.





결국 인지는 주변 사물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규정하는 능력이며 그를 통해 자기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의식하는 능력이다. 어찌 보면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의식과 인지가 강하기 때문에 더 빠른 시간 동안 적응과 발전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것은 인간이 원했기 때문은 아니고, 생존 경쟁과 적자생존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작위 한 진화 중 하나이다. 원래 진화는 방향성을 정해두고 일어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모든 강력한 무기에는, 그만한 무게가 있다. 인지는 결국 세상의 위협 요소를 넘어 자기 자신을 의식하게 만들었으며 치열한 생존 경쟁에 승리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필멸자에 몸에서 탄생한 고등 의식은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허무맹랑한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스스로가 하는 행위들에 무언가를 덧붙이기 시작했다. 서사성, 의미, 신비, 숭고함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그 무언가를. 리고 의식은 우리가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도록 무의식 어딘가에 숨겨놓고, 누군가 그 영역을 건드리려고 하면 두려워고, 회피하도록 만들었다.


2022년 07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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