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사람 최승선 022] 코타키나발루 사람들이 들으면 정색할 말이겠지
미세먼지로 날이 뿌연 날이면 내가 알고 있는 풍경을 상상한다. 파란 강 너머 푸른 산. 까만 밤하늘에 박힌 하얀 별. 운전석 차창 정면 산속에 빼곡히 박힌 나무들. 희뿌연 풍경에 뭉개지고, 사라졌지만 나는 알고 있는 풍경들. 그걸 알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하고, 언젠간 이게 일상일지도 모른다는 큰 불안으로 풍경을 마주한다.
가장 자주 상상하는 건 단연 별이다. 미세먼지가 많을 때뿐 아니라, 구름이 꼈을 때, 달이 너무 밝을 때, 세상이 너무 밝을 때, 너무 많은 순간에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주 상상해야 한다. 그만큼 상상하기 쉽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심심치 않게 보지만, 그때마다 이 풍경이 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며 큰 반가움으로 마주하기 때문이다.
희뿌연 밤하늘에도, 달빛이 눈부신 밤에도, 가로등 눈부신 도시에서도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이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다. 당연히 별자리는 모르지만, 별은 거기 있다는 걸 믿을 수 있다. 대학 때, 복학생 오빠들이 군대에서 본 별들을 얘기할 때마다 눈이 반짝 빛나는 것도, 목소리가 커지고 흥분해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봤으니까.
양평에도 몇 군데의 야경 명소, 정확히는 별 보기 좋은 명소들이 있다. 양동 벚고개 터널이라 하던가? 가본 적은 없다. 별 보길 좋아하는 양평 친구들과 호기심을 갖고 궁금해한 적은 제법 있으나, 큰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 '별 보기 좋은 곳'은 빛이 없는 곳이고, 건물이 낮은 곳일 테니까. 그 정도라면 널리고 널렸다. 가로등이 없어 사이드미러로 흑암만이 비치는 길이 시골일 테니까.
별 보길 좋아하는 양평 친구와 코타키나발루를 갔었다. 첫째 날 반딧불이 투어를 했는데, 마침 노을이 아름다운 날이었다. 배를 타고 숲 속으로 들어가, 반딧불이를 기다리던 그때 우리 뒤에 있던 사람들이 작게 '우와' 하기 시작했다. 반딧불이인가?! 하고 그들의 시선 방향을 보려 고개를 돌리니 모두 하늘을 보고 있었다. 별을 보고 있었다. 우리도 몇 번이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정말 이걸 보고 '우와' 하는 게 맞는 건지.
아마도 그 사이 구름이 낀 것 같다.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not special) 별이었는데, 별(star) 볼 일 없던 사람들에겐 그래도 '별'이라는 게 낯설게 느껴졌다. 사실은 나도 오랜만에 본 별이었는데. 인천 하늘에선 오직 비행기 불빛만 보였는데.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양평에선 이것보다 별이 더 잘 보이는데'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문화시민으로서 꾸욱 참았다.
그러니까, 내가 가장 자랑하고 싶은 건 별이 보이는 동네를 내가 택했다는 것이다. 별이 잘 보이는 곳은 양평뿐 아니겠지만, 그중에 양평을 별이 잘 보인다는 이유로 택했다는 것. 사실 그렇게까진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거실에서도 별이 보이는 집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것.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잘 때마다 별이 잘 보이길 바라며 날씨를 체크하고, 흐린 날이면 아무 생각 없는 친구에게 '오늘은 별이 잘 안 보여' 밑밥을 까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따금씩 서울 번화가 한복판에 채광 잘 들고 거실 있는 집에서 산다는 또래들의 이야기들을 건너 전해 들을 때면 어쩐지 조급함과 치사한 마음도 든다. '어떻게 구했지?' 하는 치사한 마음. 그 치사한 마음을 누르려 더 치사한 마음을 키운다. '나는 별 보이는 집에 산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할 말이겠지만, 좋아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좋아하는 마음을 지켜내고 싶은 일종의 방어술이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