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사람 최승선 023] 숙박업도, 요식업도 할 수 없는데..
초등학교 때는 군인이 돼 볼까 생각했다. 아빠가 직업 군인이었고, 나는 씩씩하고 운동을 잘하는 어린이였으니까. 그런 멋진 역할을 잘할 거라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가졌던 꿈 중에 가장 헛웃음 나오는 꿈이다. 참고로,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미용사(영화 보고 1분간 꿈꿨으나 손재주 없음 이슈)와 트로트 가수다. 트로트 가수는 제법 진지한 꿈이었는데.. 아무쪼록.
'군인'을 꿈꿨다는 것만으로 헛웃음 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반골'이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효율적이지 않은, 옳지 않은 지시를 따르고 살 수가 없다. 지시도 못 따르는데 명령이라니. 20살 무렵, 한 5년쯤 회사 다니면서 돈 모아서 창업할 거라는 나의 이야기에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께서 고개를 갸웃거리시며 '글쎄.. 5년 버틸 수 있을까' 하셨던 것도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다행히 직장 생활을 5년 정도 하면서 대표님을 비롯한 상사들을 들이박은 적은 없었다. 까라면 까는 시늉을 하는 정도는 쉬웠다.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도 시키는 일을 하는 게 내 일이니까 할 수 있었다. 월급 받는 사람이 월급 받은 만큼 일을 하는 데서는 스트레스가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군인도 괜찮을까? 싶은데 역시 안 되겠다. 가장 중요한 건 근속이 안 되기 때문이다.
'불안사회'라 명명되는 이 사회에서 나는 불안이 낮은 기질을 타고났다. 타고나길 불안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사람으로 타고났다. 그럼에도 내가 불안을 느끼는 게 하나 있다면 '대안 없음'이다. 내 장점이라면 추진력이 좋고, 결정과 선택을 제법 신속하게 한다는 점인데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아님 말고' 덕이다. 될까 말까 고민하는 것보다 해보고 되는지 안 되는지 보는 게 빠르다는 믿음 덕이다. 그런데 그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 있다면?
그래서 공무원은 안 됐다. 5급 공무원을 시켜준대도, 임기제 공무원이 아니라면 할 수 없을 것 같다. 인생을 한 직장에서(순환근무를 한다 하더라도) 영원히(정년이 있다 하더라도) 보내야 한다니! 심지어 겸직도 안 된다니. 새로운 게 하고 싶어지면 어떡하라고! 지역 개발에서 공무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어 솔깃 솔깃하다가도 '얼마나 다닐 수 있을까..' 싶어서 마음을 접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있는 게 아니다. 일자리를 찾아보니 그제야 인터넷에서 보았던 글들이 와닿기 시작했다. 공공일자리는 많았지만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 근무 기간이 364일이었다. 의도가 빤히 보이니 괘씸해서 가고 싶지 않다가도, 가장 '그럴듯한' 직장이므로 다시 한번 고려해 보게 된다. 민간 일자리는 공고를 보다 보니 연봉 3,000만 원이면 '많이 준다'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이래서 다들 서울로 가거나, 공무원을 하는구나.
세금으로 월급을 받지 않고 싶은데. 부모님께 물려받은 땅이나 식당, 숙소도 없는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그 답을 찾지 않은 채로 양평에 왔다. 한창 직업인으로서 압축적 성장이 가능한 때, 도시와 멀어진 곳에서도 나는 '프로'가 될 수 있을지 찾아보려고 왔다. 올 해는 그 실험의 해다. 내가 가진 것들, 할 수 있는 것들을 지역 곳곳에 좌판을 깔고(장사는 안 하겠지만) 팔아보려고 한다. 우선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계약직으로 일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