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사람 최승선 008] 피해자가 되느니 가해자를 택하겠다면,
병설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한 반이었다. 가장 적을 땐 26명쯤, 가장 많을 땐 34명쯤. 몇은 들어오고, 몇은 나가며 한 반으로 10년을 지냈다. 한 반으로 10년을 지낸 생활의 뜻밖의 장점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15년쯤 지나서야 알게 됐다.
'서열'이라는 존재를 모르던 시기에 만난 아이들이 계속해서 한 반에 있으면 서열화가 될 틈이 없다. 어떤 아이들이 '잘 나가는 형, 오빠, 언니, 누나'들과 친해진다 하더라도 그 애와 나 사이의 관계가 달라질 수 없다는 뜻이다. 어제 무한도전 얘기를 하던 그 친구와 내일 또 무한도전 얘기를 하게 되는 법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때, 반 안에서 '왕따'가 유행했다. 2-3명의 아이들이 한 명을 타깃 삼고 험담을 했다. 타깃이 된 아이는 시기마다 바뀌어 5명~10명 정도 되었지만,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친구가 많았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구 하나가 꼴 보기 싫어질 수 있지만, 그건 전적으로 꼴 보기 싫어진 사람의 마음 탓이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부터는 분명 달라졌다. '착한 애'와 '노는 애'. 그렇지만 그게 '찐따'와 '일진'으로 등치 되진 않았다. 말 그대로 노는 방법이, 문화가 달라졌을 뿐이었다. 어떤 애들은 자신의 위세를 보여주기 위해 핸드폰을 집어던지기도, 쌍욕을 하기도, 싸움을 하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애들 입장에선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을 뿐 무섭지 않았다. 우리의 길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낄 뿐이었다.
영화 <우리들>을 좋아한다. 그 따뜻하고 명랑한 여름방학과 서늘한 2학기는 지워지지 않고 오랜 물음을 남긴다. 학교폭력은 가해자를 처벌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 보호 장치가 없는 야생 같은 교실에서 강자와 약자로 나뉘는 서열화를 막는 게 근본 해결이라면, 그건 무엇으로 가능한가? 그 물음을 쉽게 맺을 수 없는 건, 운 좋게 나는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을 수 있었지만 다른 학교에서의 나도 그럴 수 있을지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착한 애'에 속했다. 정직해지자면, 용기와 기회가 없어서 착한 애였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지만, '잘 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기회가 있었다면, 그러니까 그 무리에서 내가 좋다고 했었더라면, 나도 그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새치기하는 친구들에게 '난 싫어'라는 말을 못 해 새치기를 했을 것이다.
만약에, 당신의 아이가 학교폭력 가해자가 되거나 혹은 피해자가 되어야 한다면 무엇을 택할 것인가? 이 질문을 수도 없이 스스로에게, 친구들에게 물었다. 답변은 언제나 갈렸다. 그렇지만 주저함 없이 피해자를 택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않고 10대를 지나온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생각하는 지점이다. 그 상황이 나의 행운이라 생각했는데, 30대의 목전에서야 구조가 만들어낸 길이었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