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울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날 거란 착각

[양평 사람 최승선 007] 세상을 넓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by 최승선

양평에 이사 온 후 가장 좋은 점은 이전에 만날 수 없던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엔 다양성이 있다. 하지만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결국 같은 회사 다니고, 같은 학교 나온 사람들을 만난다. 그 안에서 다양한 지역 출신을 만나겠지만 지적 수준과 경제적 수준이 유사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서울의 다양성은 조금 다른 것들을 굳이 하나의 그룹으로 만들지 않아도 됨으로써 만들어졌다. 수가 많으니까. 양평에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모아도 못 모을 수의 사람들이 한 편의 독립영화 팬덤으로 모을 수 있다. 머글들은 <오타쿠>로 퉁칠 사람들이, 홍대에서 모이면 각자의 취향으로 그룹 지어질 수 있다. <밴드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이돌 밴드와, 90년대 밴드, 하드락밴드로 각자의 그룹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까, 서울의 다양성은 비슷한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게 할 뿐 나랑 다른 세계의 사람들은 만나게 만드는 건 아니다. 물론 그것이 서울이 사랑받는 이유다. 다양해서, 나랑 조금 다른 저 사람과 억지로 함께 있지 않을 수 있어서. 많아서, 내가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도 누군가 들어올 수 있어서. 그래서, 서울에선 서로를 궁금해하지 않을 수 있고 나를 감출 수 있어서.


양평에 와서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주민번호 앞자리가 천차만별이다. 12년생 친구들과 놀다가, 7080 학부모님들과 놀다가, 90 친구들과 놀다가, 5060의 가족들과 놀다가, 이따금씩 3040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밥을 먹는다. 우리의 공통점은 하나뿐이다. 양평에 살고 있다. 서울에서라면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절대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양평이라 만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고민들을 하는 친구들도 좋지만, 지금의 나는 상상할 수 없는 다른 범주의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나와는 다른 일상을 살고 있어서 다른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싶었고,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내 일상에 매몰되지 않게 만들어주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다. 세상을 넓히고 싶었다.


수능을 본 지 10년이 지났다. 그때 만난 어른들은 모두 수능으로 인생이 결정될 것처럼 말했는데, 지금 만나는 어른들은 모두 수능이나 대학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에서의 학벌의 중요성이 10년 사이 바뀐 게 아닌데. 아마 그때도 대입이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었을 것이다. 안 들렸던 거겠지. 그 말을 한 사람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을 테니까.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의 말만이 의미 있게 들리는 법이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