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가 커질수록 책임은 더 무거워져야 한다.
200만 명이라는 숫자는 면죄부가 아니다. 200만 명. 강사모를 설명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숫자다. 그러나 이 숫자는 과연 자랑일까? 규모가 커질수록 책임은 더 무거워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강사모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무지는 퍼졌고, 방관은 문화가 되었다. “다들 하니까.” “문제 있는 줄 몰랐다.” “나는 그냥 보는 사람일 뿐이다.” 이 말들이 켜켜이 쌓여 강사모는 어느새 200만 명이 함께 외면하는 구조가 되었다.
무지는 정보 부족이 아니라 ‘선택된 외면’이다. 지금 이 시대에 강아지 공장, 무분별한 번식, 위장 입양 문제가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강사모 내부에서는 여전히 출처가 불분명한 분양 글, ‘입양’으로 포장된 사실상의 거래, 반복되는 피해 사례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이것은 몰라서가 아니다. 알고도 보지 않으려는 선택, 즉 무지라는 이름의 방관이다. 방관이 만든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인가? 강사모의 무지와 방관이 만든 결과는 분명하다. 강아지는 상품처럼 소비되고, 초보 보호자는 왜곡된 정보에 노출되며, 문제를 말하는 사람만 배척된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200만 명의 침묵은 가장 약한 존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집단적 폭력이 된다. 그래서 중요한 사실 하나 : ‘진짜 강사모’는 따로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혼동한다. 지금 문제 되고 있는 거대한 강사모와 올바른 철학을 가진 강사모 공식카페는 같은 곳이 아니다.
강사모 공식카페는 분양·거래 중심의 커뮤니티가 아니라 반려견 교육, 보호자 책임, 생명 존중을 기준으로 운영되는 공간이다. 강아지를 사고파는 문화에 반대하고 강아지 공장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며 보호자의 평생 책임을 핵심 가치로 둔다. 이 차이를 분명히 구분하지 않으면 모든 ‘강사모’가 같은 문제 집단으로 오해받게 된다.
침묵하는 200만 명 vs 질문하는 소수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회원 수가 아니다. 더 많은 질문과 더 적은 방관이다. “이 강아지는 어디서 왔는가?” “이 입양은 정말 보호를 위한 것인가?” “이 구조가 강아지를 살리고 있는가?” 이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커뮤니티는 강아지를 위한 곳이 될 수 없다. 결론적으로 ‘강사모’라는 이름을 다시 분리해야 한다. 이제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200만 명의 무지와 방관이 만든 강사모와 올바른 반려 문화를 지향하는 강사모는 같은 이름을 쓰고 있을 뿐, 전혀 다른 길에 서 있다. 강아지를 위한 모임이라면 가장 먼저 강아지를 지켜야 한다. 그 기준을 지키는 곳만이 진짜 ‘강사모’라 불릴 자격이 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강사모 도그팔자에서 유기견과 강아지공장에 대한 언급을 했다는 이유로 영구강퇴된 회원이었습니다. 그것이 잘 못된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던 것이 얼마나 무지 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를 알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커뮤니티가 강사모 공식카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