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산문집

(에세이) 5.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 (3)

by 습작생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 작가가 <칼의 노래>에 쓴 첫 문장이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던 섬 하나는 단지 인간의 관점에 의해 버려진 섬이 되어버렸다. 내 관점에선 그 섬이 버린 주체가 된다. 삶이 퍽퍽한 사람들 속에서 도저히 버틸 수 없어 귀촌하는 사람처럼, 바다에 떠 있는 섬은 본거지를 버리고 떠나 버린 것이다. 어떤 사람에겐 혼자 있는 사람이 외로워 보이겠지만, 혼자 있는 사람 눈엔 여러 사람들 틈에서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외로워 보인다. 외로움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관점만 이동할 뿐이다. 마치 홀로 있는 섬을 바라보며 '떠나버린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서른다섯 살 봄 걷지 못했다.

군대에서 시작한 운동은 서른여덟이 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스물 셋. 전역 후 바로 헬스장을 다녔다. 20분 정도 오가는 이동 시간이 아까웠다. 운동을 마친 후 샤워를 하고 집에 와서 또 해야 하는 것도 번거로웠다. 그런 것들은 근육을 키우기 위해 응당히 겪어야 하는 일이라고 자위할 수 있었지만, 가장 큰 불편한 건 내가 사용하고 싶은 운동 기구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홈짐을 차리기로 마음먹고 장비를 하나 둘 나르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홈짐이 트렌드지만, 내 집도 아닌 부모님 집에 얹혀살며 큰 장비를 하나 둘 들이는 게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크고 작은 아령들과 벤치, 문틀 철봉으로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자 헬스장 다니는 사람 부럽지 않을 만큼 몸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연히 운동 효과는 헬스장보다 떨어졌지만 헬스장을 다니면서 느꼈던 불편함들이 없어서 나한테는 제격이었다. 그때부터 시작한 홈트레이닝 방식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고 앞으로도 헬스장을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서른다섯 살. 이십 대에 비해서 확실히 회복력이 떨어졌다. 그러나 근력이 떨어진 건 아니기 때문에 항상 하던 대로 매일 상체 운동을 했다. 지금이야 다친 경험이 있어서 운동, 휴식, 영양의 3박자 균형을 맞추지만, 서른다섯 살엔 운동 구력이 무색할 만큼 지식이 없었다. 그냥 냅다 무거운 걸 들고 잘 먹으면 근육이 성장하는 줄 알았다. 물론 이십 대 때는 그 방식이 통했다. 5시간만 자고 나면 완충이 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른 중반이 되자 충분한 휴식 없는 운동은 통하지 않았다.


서른다섯 살 봄 어느 월요일 허리가 아파왔다. 전 날 운동을 무리해서 근육통이 온 줄 알았고 종종 겪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퇴근 후 여느 날처럼 운동을 했다. 화요일도 마찬가지로 통증이 지속됐지만 개의치 않고 운동을 이어갔다. 수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걷기가 불편할 만큼 허리가 아팠다. 하루 이틀이면 사라질 줄 알았던 통증이 오히려 더 심해진 것이다. 집에서 회사까지 걸어서 10분 거린데 평소처럼 성큼성큼 속보로 발을 내디딜 때마다 허리에 통증을 느꼈다. 과거에도 이런 경험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짧으면 서너 일 길면 2주 정도 쉬면 나았다. 병원에 가기는 애매했지만, 빨리 낫기 위해 한의원을 찾았다. 목요일까지 이틀간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으니 좀 괜찮아진 것 같았다. 의사는 완쾌하기 전까지 운동을 쉬라고 했지만, 운동 중독이었던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주말에 열심히 놀기 위해서 금요일에 꼭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금요일마저 운동을 쉰다면 일주일 내내 쉬게 돼서 근육이 다 사라질 것 같은 초조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금요일 퇴근 후 허리에 무리가 덜 가는 철봉 위주로 운동을 했고 끝나자마자 한의원으로 향했다. 침 치료를 받으니 8에 가까워졌다. 치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는데 온 몸이 기진맥진했다. 그 상태로 주말까지 푹 쉬면 아픈 허리가 다 나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쉬면 모든 게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한의원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 여자 친구와 전화로 말다툼을 했다. 어느 연인이나 초반엔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 커플도 별반 다를 것 없이 그 과정을 겪고 있었다. 몸이 힘든 상황이라서 내 감정은 더 격양되었다. 보통 같았으면 주말에 만나 오해를 풀고 다친 상처를 어루만져주면 될 일이었는데, 당장 만나서 해결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내 육체는 힘이 없었지만 정신은 흥분 상태였기 때문에 차를 몰아 여자 친구 집 앞까지 바로 달렸다.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는 여자 친구를 차에 태워 잠깐 몇 분 대화를 나누자 오해는 금방 풀렸다. 나는 여기까지 온 김에 기분 전환 겸 바다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가장 근접한 서해 바다로 차를 몰았다.


한 시간을 넘게 달려 대부도 선착장 인근에 다다랐다. 출출했던 차에 편의점에 들러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기로 했다. 희미한 노란색 편의점 간판 불빛에 가까워질수록 우리 차 외에 달리는 차는 보이지 않았다. 도로 위에는 가로등만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주황색 불 빛을 비추고 있었다. 스무 대는 충분히 대고도 남을 큰 주차장을 가진 미니스톱 편의점이 보였다. 바닷가 근처라 그런지 편의점과 낚시 용품을 같이 판매하는 곳이었다. 출출하던 차에 대형 편의점을 보니 은근히 기대가 됐다. 동네 편의점은 대부분 작아서 고를 수 있는 품목이 한정됐는데, 왠지 그곳은 대형 마트처럼 여러 가지 음식이 준비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가게 입구 앞에는 주인 차로 보이는 무쏘 차량 한 대만 덩그러니 주차되어 있었다. 어차피 우리 말고는 더 올 차도 없어 보였기에 빨래통에 빨래할 옷감을 무심히 던져 넣듯 빈자리에 주차 선도 안 맞추고 대충 차를 세웠다. 우리는 차에서 내리기 위해 말없이 안전벨트를 풀었다. 나는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서 왼발을 밖으로 내디뎌 땅을 짚고 체중을 실어 차 밖으로 몸을 내밀었고 그다음 오른발을 내딛는 순간 오른쪽 발목에서 찌릿한 고통을 느끼며 그대로 꼬꾸라지듯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여자 친구는 깜짝 놀라 내게 달려왔다. 나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걱정보다는 황당함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 친구는 반 울먹이듯 걱정하는 말투로 괜찮냐고 물으며 나를 일으키기 위해 내 왼쪽 팔을 잡아당겼고,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그 손을 가볍게 뿌리치고 혼자 일어나기 위해 양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이번에도 왼발을 먼저 짚고 일어나 오른발을 짚는데 역시나 찌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나는 운전석 차문을 양손으로 잡고 오른발에 힘을 뺀 상태에서 왼발로만 서 있었다. 한의학 지식이 없는 일반인 입장에서 추측컨데 침을 맞고 휴식을 취해 기력을 회복해야 하는 데 휴식은커녕 허리에 무리가 가는 장시간 운전으로 통증이 더 악화돼 발목까지 통증이 전이가 된 것이다. 오른발을 땅에 디딜 순 있지만 짧은 비명이 나올 만큼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여자 친구와 처음으로 간 바다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여자 친구에게 허리 통증으로 한 주간 고생했던 일을 빠르게 설명하고 괜찮다고 안심시켰다. 편의점에서 먹을거리를 사서 얼른 바다를 보러 가자고 재촉했다. 여자 친구는 나보다 더 당황해서 목소리가 떨릴 정도로 나를 걱정해줬지만, 나는 여행을 계속 이어가야만 했다. 편의점에서 나온 우리는 차로 몇 분을 더 달려 마침내 바닷가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바닷가 근처로 걸어가니 차박하는 차량들 몇 대가 보였다. 나는 여자 친구의 가벼운 부축을 받아 살짝 다리를 쩔뚝거리며 바다가 옆 인도를 걸었다. 10분 정도 걷다 보니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공중화장실이 보였다. 나는 여전히 가벼운 부축을 받으며 화장실 건물까지 걸어갔고 남자 여자 화장실의 갈림길 앞에서 우리는 각자의 화장실로 향했다. 혼자서도 걸을 순 있다. 다만 오른발을 온전히 내딛을 때마다 찌릿한 통증이 머리털 끝까지 밀려올 뿐이다. 혼자서 벽을 짚으며 소변기 앞으로 이동해 소변을 마쳤고 세면대로 향해 간단히 손을 싰고 다시 벽을 짚어 화장실을 나왔다. 나는 다시 여자 친구의 가벼운 부축을 받으면 10분을 걸어 차에 도착했다. 1시간 20분을 달려 여자 친구를 집에 내려주고, 1시간을 더 달려 드디어 내 집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엘리베이터까지 아무것도 의지 하지 않은 채 머리가 쭈뼛서는 고통을 참아가며 쩔뚝쩔뚝 걸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벽을 조심스럽게 짚으며 한 발 한 발 천천히 내디뎌 현관문 손잡이를 잡을 수 있었다. 비밀번호를 차분히 누른 후 집 문을 열고 들어가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주말 내내 침대에 누워서 네이버로 증상을 검색했다. 비슷한 증상을 가진 사람을 단 한 명도 찾지 못했다. 앞으로 못 걷게 되는 게 아닌가 덜컥 겁이나기도 했다. 아직 왼발이 멀쩡하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처음 통증을 느꼈을 때 "자고 나면 괜찮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생각은 점점 걱정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나는 나를 믿었다. 믿고 싶었고, 반드시 믿어야 했다. "내 몸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월요일 아침에는 모든 통증이 사라졌을 거야! 나는 분명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끔하게 출근할 거야!"


나는 병원에 입원했다. 월요일 아침 아무런 차도도 없었고 처음 아팠던 그 순간처럼 여전히 통증을 느꼈다. 맨 먼저 팀장님께 전화를 걸어 출근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고 나서 회사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혼자 사는 내 자취방에 들러 나를 병원까지 대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나는 후배의 부축을 받으며 광화문 자생한방병원으로 향했고 바로 입원했다.


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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