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6.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 (4)
병원까지 10분 남짓 걸렸을까. 차 안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난 걷지 못하는 불구자로 살아가야 하는 건가? 회사 일이 밀릴 텐데 어떻게 처리해야 되지? 장기간 입원하면 집 화장실에 곰팡이 필텐데 청소는 누가 해주지? 사실 그런 사소한 것들 보다도 가장 큰 걱정은 운동을 못해서 발생하는 근 손실이 이었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질 때쯤 병원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후배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차에서 내리는 데 성공했고 엘리베이터까지 편하게 걸어갈 수 있었다. 사실 여자 친구한테 부축받을 때는 여자 친구가 지탱하기 힘들까 봐 온 몸을 기대지 못했다. 후배는 보통 체형보다는 좀 더 덩치가 있는 남자니깐 내 온몸을 의지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접수를 마치자마자 후배에게 그만 회사로 돌아가라고 했다. 내 사적인 문제로 팀원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에 미안함이 밀물처럼 밀려왔기 때문이다. 접수처 직원에게 거동이 불편하니 이동할 때 짚을 수 있는 목발이나 휠체어 같은걸 달라고 했다. 4개의 바퀴가 달린 쇠로 된 유모차 비슷한 장비를 줬다. 휠체어나 목발보다는 혼자 운용하기 편해 보였다. 내 이름이 불려지자 나는 그 장비에 의지해 의사 방으로 들어갔다. 의사는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물었고, 나는 경찰서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는 인상 쓴 형사 앞에서, 범죄를 자백하는 체념한 표정의 범인처럼,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힘없는 말투로 상세히 늘어놨다. 아무리 자생한방원이라지만 허준이 아니고서야 얘기만 듣고 병명을 알 수는 없을 테지. 의사는 당장 MRI를 찍자고 말했다. 비용이 좀 나오니 가입한 보험이 있으면 실비 보장이 되는지 잘 알아보라고 말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내 모든 보험은 엄마가 관리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내 보험을 몇 개 들었다. 살면서 다친 적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매 달 나가는 보험비가 아까웠다. 보험 얘기가 나올 때마다 엄마를 닦달했다. 매 달 나가는 보험료를 모았으면 지금까지 다쳐서 보상받은 보험비 보다 몇 십배는 됐을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돈을 떠나 말발 좋은 설계사 아줌마에게 속아 넘어갔을지도 모를 엄마의 순수한 모습에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통화할 때마다 연락 좀 자주 하라는 잔소리에 항상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서 연락을 안 하는 게 더 좋다는 논리로 내 미안한 마음을 억눌렀기 때문이다. 회사 동료들과 보험 얘기를 나누다 MRI 검사 얘기가 나와서 내 보험 약관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여쭤본다고 말했다. 엄마는 보험 아줌마의 연락처를 넘겨주며 직접 물어보라고 말했다.
사람은 항상 닥쳐봐야 안다. 내 보험은 비싼 납입료만큼이나 보상이 참 많았다. 참 괜찮은 보험을 적절한 시기에 잘 가입해둔 엄마의 선견지명에 감복했다. 보험 아줌마에게 약관과 보상 내용을 상세히 물었다. 아줌마는 내용이 많아서 전화로 다 설명할 수는 없고 정리된 파일을 메시지로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병원 접수처 의자에 앉아 보상 내용을 천천히 훑어봤다. 다행히 MRI 검사는 실비 보험에 보상받을 수 있는 치료 항목이었다. 단, 하루라도 입원을 해야 된다는 조건이 있었다. 접수처 여직원에게 MRI 검사를 받겠다고 말하고 입원 수속을 밟았다.
키는 170 정도에 풍채가 좋고 앉은 자세가 올곧았던 내 담당 여의사는 내 척추 사진을 보여주며 허리디스크 3번 4번이 파열 직전이라고 말했다. 나는 모든 걸 체념한 듯 혹은 불쌍한 사람 잘 좀 봐달라는 듯 언제쯤 걸을 수 있냐고 물었다. 여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한 달 정도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대답했고 젊어서 빨리 회복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의사 방을 나와서 유모차 같은 장비에 몸을 의지한 채 병실로 향했다.
5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