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더부살이 신세...
스페인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로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아침엔 어학원에서 네 시간 수업을 듣고, 집에 오기 전 장을 봐 요리를 해먹었다.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 바닷가에 나가 놀고,
해 질 무렵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 다 함께 거실에 모여 저녁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매일이 평화로웠고, 다음 날이 기다려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전 이야기에서 소개한 파브리스와 헥또르 말고, 집에는 한 사람이 더 살고 있었다.
피에뜨로. 페루 출신의 집주인이자, 집 근처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던 남자였다.
그는 밤새 일하고 아침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했기에, 우리와는 생활 리듬이 잘 맞지 않았다.
처음엔 거실에 함께 앉아 TV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방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이 집에 들어오기 전, 여러 곳을 알아봤지만
스페인어도 못하고 단기 체류 학생처럼 보였던 탓에 대부분 거절당했다.
그런 내게 방을 내어준 사람이 바로 피에뜨로였다.
이사 온 뒤에는 그의 바에 자주 놀러가기도 했고,
한두 번은 그의 전 부인과 딸이 사는 집에 초대받아 식사를 함께한 적도 있었다.
그는 내게 꽤 호의적인 사람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새벽이면 피에뜨로의 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자주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 친구들을 불러 방 안에서 술자리를 여는 것 같았다.
점점 소음이 심해져 불만이 쌓이던 중,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날 그의 친구 중 한 명이 화장실을 내 방으로 착각해,
문을 열고 들어와 내 방에서 볼일을 볼 뻔한 것이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곧장 피에뜨로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 가관이었다.
방 안은 너구리굴처럼 연기로 자욱했고, 테이블 위엔 술병과 담배꽁초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방 안엔 여섯 명쯤 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모두 술에 취한 채 나를 보며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어이없는 상황에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피에뜨로가 “너도 한 잔 할래?” 하고 권하는 걸 듣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건 됐고,” 나는 말했다.
“네 친구가 내 방을 화장실로 착각해서 들어왔어. 그리고 새벽마다 너무 시끄러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피에뜨로는 미안하다며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오니 거짓말처럼 조용해졌고,
그날 밤은 그렇게 넘어갔다.
이 이야기를 파브리스에게 했더니,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나 꺼냈다.
피에뜨로 방에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건
단순히 술 마시고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 함께 마리화나를 피우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후로,
나는 의도적으로 피에뜨로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피에뜨로 역시 굳이 우리와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서로에게 벽을 쌓아갔다.
하루는 학원에서 돌아와 요리를 하려는데,
인덕션이 켜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싶어 냉장고를 열어봤더니, 냉장고도 꺼져 있었다.
집 전체에 전기가 나간 듯했다.
두꺼비집을 내려보기도 하고 다시 올려보기도 했지만,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피에뜨로에게 말하니, 전기 공사를 한다며 일주일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그 일주일은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다.
냉장고에 있던 음식은 모조리 상해서 버려야 했고,
노트북을 충전하기 위해 매일 도서관에 들렀다.
인덕션이 작동하지 않으니 요리를 할 수도 없어,
매번 밖에서 사 먹거나, 그 무렵 알게 된 스페인 남성과 결혼한 한국인 K누나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었다.
그러던 중, 약속했던 일주일이 지나도 전기는 돌아오지 않았고,
불편함이 극에 달한 우리는 결국 참지 못하고 헥또르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우리는 꽤나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되었다.
전기세를 내지 않아서 공급이 끊긴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우리는 곧장 피에뜨로의 방으로 가 따지듯 물었다.
헥또르와 피에뜨로는 한참 동안 스페인어로 소리를 주고받았고,
파브리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옆에서 서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그저 그들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을 이어지던 말다툼 끝에, 피에뜨로는 이렇게 말했다.
딸이 급하게 병원에 가야 했는데, 무료인 공립병원이 아닌
비싼 사설 병원에 가느라 전기세를 낼 돈이 없었다고.
사실 우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이라는 증거도 없었기에,
일단은 알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다음 날 전기가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어느 날이었다.
집 안에 있는데, 갑자기 건물 입구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창밖을 내려다보니,
거구의 한 남자가 현관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오던, 피에뜨로의 친구였다.
내가 문을 열어주려던 찰나,
피에뜨로가 방에서 다급하게 뛰쳐나왔다.
“문 열지 마. 그냥 집에 없는 척해.”
당황한 나는 왜 그러냐고 물었고,
피에뜨로는 “싸워서 사이가 안 좋아졌어”라고 얼버무렸다.
나는 알겠다고 말했지만, 마음속 어딘가는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결국, 그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알고 보니, 피에뜨로는 그동안 공과금을 내지 않고
그 돈으로 마리화나와 다른 마약을 샀던 것이었다.
전기세를 내지 못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건 따로 있었다.
그날 문을 두드리던 거구의 남자는
마약 주사를 놔주는, 일종의 ‘브로커’ 같은 사람이었다.
그가 문을 부술 듯이 두드렸던 이유는,
피에뜨로가 주사값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그동안 이상하게 느꼈던 것들이 하나둘 연결되기 시작했다.
처음 봤을 땐 멀쩡했던 피에뜨로가,
어느 날부턴가 딸을 보러 가지도 않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고,
가끔 복도나 주방에서 마주치는 그의 얼굴은
어딘가 퀭하고, 눈빛도 이상하게 흐려져 있었다.
나는 단지 밤에 일하고 피곤한 탓이겠거니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니.
나는 정말 이 집에 1초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8월.
산세바스티안의 극성수기였고,
원래도 귀하던 방은 아예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사라져 있었다.
‘9월이 되면 나가자.’
그렇게 혼자 다짐하며, 아슬아슬한 일상을 이어갔다.
그 다짐은 이틀도 가지 못했다.
술에 취한 건지, 마약에 취한 건지
피에뜨로가 갑자기 방 문을 쾅쾅 두드리며 모두를 불러 모으더니
뜬금없이 오늘부터 방세를 50유로 인상하겠다고 말했다.
납득할 수 없었던 우리는 곧바로 항의했다.
그러자 피에뜨로는
“그게 불만이면 나가라”고,
거의 쫓아내듯 말했다.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우리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짐을 싸서, 그대로 집을 나왔다.
그날, 나는 단지 집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스페인에서의 첫 공동체,
그 모든 기대와 믿음의 끈을 스스로 끊어낸 날이기도 했다.
파브리스와 헥또르는
자기들이 알고 있는 친구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아쉽게도 그 집에 남는 방이 없어서 나는 가지 못했다.
갈 곳이 없던 나는 고르카에게 연락해봤지만,
그 역시 방학을 맞아 본가로 내려간 상황이었다.
결국, 할 수 없이 K누나에게 연락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 뒤,
그 집 거실에서의 불편한 하숙 생활이 시작되었다.
캐리어를 끌고 구시가지에서 다른 동네로 넘어가던 날.
마침 그날은 산세바스티안에서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인
‘세마나 그란데’의 절정, 8월 15일이었다.
모두가 축제의 열기로 들떠 있던 그 순간,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채,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 집을 떠나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다시 피에뜨로를 마주치게 되었다.
고르카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놀랍게도 피에뜨로가 서 있었다.
순간, 불편하고 어색한 마음에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여전히 술에 취했는지, 마약에 취했는지 모를 그의 상태에서
피에뜨로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너, 그때 왜 집 나갔어?
나는 너보고 나가라고 한 적 없어.
내가 나가라고 한건 파브리스랑 헥또르였어.”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나를 세입자로 받아준 건,
착해서가 아니라
스페인어도 못하는 나를 뜯어먹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걸.
이 이야기는 그 해 겨울에
프랑스로 돌아간 파브리스를 다시 만났을 때 들려준 이야기였다.
피에뜨로는 파브리스가 나랑 친하다는걸 인지하지 못했는지 그렇게 얘기를 했었고
파브리스는 그때 바로 나에게 말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스페인 온 지 얼마 안 된 네가 그 얘기 들으면 충격받을까봐”
그랬다고 털어놓았다.
나를 단지 말 안 통하는 ‘쉬운 상대’로 봤다는 사실은,
그 어떤 욕보다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가 보여줬던 호의는 전부 계산이었구나 싶었다.
파브리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얘기하자
피에뜨로는 아무렇지 않게 변명을 늘어놓았고
시끄러운 바 안에서 말다툼처럼 언성이 높아지자,
고르카가 다가와 상황을 정리해줬고,
나는 자리를 피했다.
산세바스티안이 워낙 작다 보니,
그 이후로도 피에뜨로와 몇 번 더 마주쳤지만
그와는 더 이상, 인사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처음엔 낯선 땅에서의 첫 공동체였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기대도 있었지만,
그날 이후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같은 공간을 산다는 것과,
서로를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그리고 그 뒤로,
나는 사람을 신뢰하기까지 조금 더 긴 시간을 두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