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채식주의자

그녀는 견딜 수 없어서 나무가 됐다.

by 최목필


네가 고기를 안 먹으면, 세상 사람들이 널 죄다 잡아먹는거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나는 조용히 내 방 나무 책장에 꽂혀있던 <채식주의자>를 꺼냈다. 책 표지 디자인 때문인지, 아니면 제목 때문인지 나무 무늬와 하나라도 된 것 같아 보였다. 더 오래 놔두면 뿌리를 내렸을까. 그런 엉뚱한 상상을 했다.


이 책을 읽은 건 대략 3-4년 전이다. 작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을 때, 독서가 익숙하지 않을 때 겁도 없이 덤볐던 소설이다. 읽는 내내 머리로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타는 것 같은 갈증과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을 느끼며 고통 받았던 기억이 난다. 여전히 겁이 났지만 용기를 내어 책의 첫 장을 펼쳤다.




그렇게 생생할 수 없어,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감촉이. 내 얼굴이, 눈빛이,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분명 내 얼굴이었어. 아니야, 거꾸로. 수없이 봤던 얼굴 같은데, 내 얼굴이 아니었어. 설명할 수 없어.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생생하고 이상한, 끔찍하게 이상한 느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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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혜가 채식을 시작하게 된 표면적 계기는 꿈 때문이지만, 사실 꿈은 그저 신호탄이었을 뿐 소설을 읽는 내내 '더는 견딜 수 없다'는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린다. 영혜가 견딜 수 없었던 건 거지 같은 남편이나 폭력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폭력으로 연명한 삶의 전체이고, 자신도 폭력에 가담했던 순간들이다. 자신이 살아 있기에 먹었던 어떤 존재의 살덩이들, 그리고 내 몸이 살덩이로 전락하던 순간들이 모여 영혜의 꿈에 나타난 것이다.




이해할 수 없겠지. 예전부터 난, 누군가 도마에 칼질을 하는 걸 보면 무서웠어. 그게 언니라 해도, 아니, 엄마라 해도. 왠지는 설명 못해. 그냥 못 견디게 싫은 느낌이라고밖엔. 그래서 오히려 그 사람들한테 다정하게 굴곤 했지. 그렇다고 어제 꿈에 죽거나 죽인 사람이 엄마나 언니였다는 건 아니야. 다만 그 비슷한 느낌. (중략)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인 느낌, 아니면 누군가 나를 살해한 느낌, 겪어보지 않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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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화자는 영혜의 남편, 형부, 언니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엄연한 타인이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남편과 형부는 독자가 '믿을 수 없는' 화자이다. 그들은 지독한 자기 연민에 빠져있으며 명분을 앞세워 폭력을 일 삼는다. 평범했던 아내가 그 역할을 다 하지 않아서. 나의 예술적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괴로움을 표현하기도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이는 온전히 자기 방어가 목적이다.


남편은 고기를 좋아하고 요리를 잘하던 영혜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이해하지 않는다. 고기를 즐기는 그녀의 가족들을 떠올리며 자신이 선택한 '평범'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에 그저 분노한다. 나는 영혜의 투쟁 아닌 투쟁이 갑작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을 물었던 개를 아버지가 오토바이에 묶어 무자비하게 죽이고 보신탕을 끓여 집에서 잔치를 벌인 날이 그녀의 명치에 따라 붙어 숨을 옥죄었을 것이다. 칼을 들어 고기를 썰던 손과, 움직인 발과, 살덩이를 뜯던 이와, 먹을 것을 찾아 움직이는 눈과 달리 아무것도 해하지 않는 젖가슴을 사랑한다는 말,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습관을 통해 알 수 있다.


두 남자 화자와 달리 영혜의 언니는 경계에 선 인물처럼 보인다. 어쩌면 독자로서 영혜보다 더 어려운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꼭 경계에 서 있는 인물 같다. 삶을 놓아버린 것처럼 보이는 영혜를 보며 '네가 정말 미친 거니.'라는 말을 꾹꾹 참으며 홀로 남은 동생을 끝까지 돌본다. (결국 못 참고 내뱉긴 했지만)




그녀는 맨발에 샌들을 꿰어신었다. 육중한 현관문을 밀어 열고 나갔다. 오층의 계단을 걸어내려갔다. 바깥은 아직 어두웠다. 거대한 아파트 건물은 두어 점의 불빛만을 밝히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걸어갔다. (중략) 검푸른 어둠 때문에 뒷산은 평소보다 깊게 느껴졌다. 고개를 수그린 채 그녀는 걷고, 또 걸었다.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을 손등으로 묵묵히 문질렀다. 자신을 집어삼키는 구멍 같은 고통을, 격렬한 두려움을, 거기 동시에 배어든 이상한 평화를 그녀는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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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녀가 남모르게 겪고 있는 고통과 불면을 영혜는 오래전에, 보통의 사람들보다 빠른 속력으로 통과해, 거기서 더 앞으로 나아간 걸까. 그러던 어느 찰나 일상으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끈을 놓아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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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주 약간, 영혜를 이해한다. 영혜가 폭력이라고 느낀 행위를 멈추도록 처음 내보는 목소리로 그만하라 외친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는 진심으로 괴로워한다. 영혜처럼 잠들지 못하는 날도 늘어난다. 그럼에도 스스로 죽음을 택한 동생을 완전히 이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소설을 읽는 내내 독자인 나도 영혜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한다. 그렇다면 나도 그녀의 삶에 폭력을 행한 사람들 뒤에 서 있는 것일까.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도 매달린 고깃덩어리가 줄줄이 늘어진 곳을 지나 나타난 그 계곡에서 웃고 떠는 사람들 틈에 있었을 것 같다.


여전히 완전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그러나 애초에 이해하고 분석하는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책을 읽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다. 다만 문학을 통해 조금 용기를 내본 거다. 나와 너의 삶에 얹힌 폭력을 언젠가 제대로 마주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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