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모락모락. 뜨거운 김과 매콤한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살짝 기름이 낀 빨간 국물을 내려보며 그녀는 침을 꼴깍 삼켰다. 위에 수북이 쌓인 숙주는 적당히 익었는지 국물 위에서도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고,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린 오징어의 표면이 탱글탱글했으며, 껍데기에 몸을 감춘 홍합은 작긴 해도 비린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하얗게 질려 식은땀을 흘리는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이걸 먹겠다고 버텼던 시간이 죽기 직전에 보인다는 주마등처럼 배고픔에 멍해진 머릿속을 빠르게 스쳤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온몸을 덮친 숙취를 무시하고 오로지 맹물로만 하루를 버텼다. 동거인이 눈앞에서 햄버거를 먹는데도 전날의 과식과 과음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18시간을 굶고, 동료가 권한 백화점 케이크도 거절하였으며, 지도를 쥐 잡듯이 뒤져 가장 후기가 좋은 이곳에 오기 위해 5km를 넘게 걸어 도착했다. 무려 새로 산 워커를 신고.
살짝 옆을 보니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들어온 남자는 짜장면에 고춧가루를 듬뿍 뿌리고 젓가락으로 열심히 비비고 있었다. 무덤덤한 표정이 어울리지 않게 열성적인 손놀림이었다. 춘장을 기름에 제대로 볶았는지 고소한 냄새가 그녀에게까지 닿았다. 그래, 짜장면도 나쁘지 않지. 기름진 거로 위장을 보호하듯 코팅하는 것도 좋아. 하지만 오늘은 짬뽕이었어야만 했어. 그것도 아주 매운 짬뽕.
“후루룩!”
남자가 면을 빨아들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그녀가 먹을 때 거슬릴 것 같은 빨간 고추와 홍합 껍데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기 시작했다. 짬뽕 앞에서 모든 행동이 경건해졌다.
끝이 살짝 붉게 물든 젓가락을 ‘쫍’ 소리가 나게 빨자 혀끝이 얼얼해졌다. 한 번 맛을 보자 종일 죽은 듯이 조용하던 속에서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창피함에 죄인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다들 자기 밥그릇에 집중하느라 주변엔 관심도 없었다. 홀 중앙에 틀어진 TV 속 야구 해설진이 시끄럽게 떠들 때마다 고개를 든 몇 명 빼고는 다들 코 박고 열심히 수저를 움직였다. 그 모습에 그녀의 수치심은 곧 경외심으로 바뀌었다. 여러분은 어떤 노동 끝에 이 자리에 앉았나요. 빨간 국물에 천천히 들어가는 쇠숟가락이 바들바들 떨렸다.
띠링.
숟가락에 가득 담겨 그녀의 깊은 입안으로 들어가려던 국물이 다시 그릇 안으로 주르륵 떨어졌다. 눈치 없는 작은 네모 상자가 몇 번 더 울리며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했다.
‘야. 공모전 수상자 발표했대.’
‘당장 확인해볼게.’
‘일단 내 이름 없음.’
‘네 이름도 없네…….’
‘어제 말고 오늘 술 마실걸.’
문자를 확인한 그녀는 갑자기 느껴지는 속 쓰림에 찬물을 들이켰다. 텅 빈 위를 찬물이 할퀴는 느낌이 들었다. 좀 나중에 확인하고 싶었는데. 바닥이 훅 꺼지는 기분에 그녀는 머리를 세차게 저었다. 직접 결과를 확인한 것도 아닌데 기분을 망치지 말자. 지금 이렇게 어물거리는 순간에도 짬뽕은 착실히 식어가고 있다.
이번엔 젓가락을 깊숙이 찔러 한 번에 먹을 수 있을 만큼 면을 집어 들었다. 독특하게도 초록색 면이었다. 시금치가 들어간 직접 뽑은 면이라니, 자극적인 음식이지만 괜히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뜨거운 면을 후, 후 불어 식히고 숟가락에 받혀 젓가락으로 돌, 돌 말았다. 그녀는 면 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거기, 아저씨! 아저씨!”
갑자기 뒤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놀란 그녀의 어깨가 떨자 잘 말았던 면이 떨어지는 바람에 국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멀리 주방 안쪽에서 잔뜩 화가 난 남자 사장님이 뛰어나왔다.
“왜 남에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워! 여기 문 열어둔 거 안 보여? 글자 못 읽냐고! ‘흡연 금지’라고 써 놨잖아!”
갑자기 벌어진 싸움에 당황한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난간에 앉아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려던 중년 남성은 당황한 듯 엉거주춤 일어나 엉덩이를 빼고 불필요한 변명을 늘였다. 그게 남자 사장님의 분노를 더욱 키웠는지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 불편한 상황이 하필 문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그녀의 앞에서 벌어졌다. 뒤라도 돌았으면 좋았겠건만 창밖이 보이는 쪽을 고른 바람에 더 곤란했다. 그녀는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세수할 듯 최대한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천천히 면을 집었다. 속으로 ‘설마’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빌었다.
“손님도 보셨죠?”
그러나 예상은 늘 벗어나지 않았고, 팽팽한 활시위가 그녀를 향했다.
“예?”
“이 인간이 담배 피우는 거요. 바로 문 옆이라 냄새까지 다 맡으셨겠구먼!”
“아니, 난 오늘 처음 이런 거라니까.”
그녀는 이런 싸움에 휘말리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젠 정말 배가 고팠다.
“그만해! 손님들 불편하시게 이게 뭐 하는 짓거리야.”
이어지는 소란에 2층에서 뛰어 내려오신 여자 사장님에 의해 사건은 종결됐다. 그녀보다 한 뼘 넘게 작아 보이는 여자 사장님은 담배를 든 남성에겐 다음엔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으름장을, 남편은 등을 때리는 것으로 길어질 뻔한 싸움을 한 번에 정리했다.
“정말 죄송해요. 서비스로 군만두라도 드릴게요.”
그녀는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으나 피곤한 표정은 차마 숨기지 못했다. 테이블 위에 먹지도 못한 짬뽕 국물이 튀어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게 신의 한 수였다. 주방에선 작은 실랑이가 오가는 소리와 기름이 튀는 소리가 같이 들렸다. 그녀는 군만두를 얻은 건 나쁘지 않은 소득이었다고 자신을 다독였다. 옆 테이블 남자는 벌써 다 먹었는지 휴지로 입을 닦더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계산대 앞으로 갔다. 그 소란이 있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먹은 모양인지 하얀 그릇에 검은 띠만 남아 있었다. 군만두는 금방 나왔다. 기름에 갓 튀긴 고소한 냄새와 식초를 섞은 간장 냄새가 공중에서 만나 섞였다.
그녀가 젓가락을 들었다. 윤기가 나는 오징어가 갓 나온 만두보다 먼저 눈에 들어왔다. 혹 너무 질길까 싶어 쿡 눌러보니 적당한 경도가 느껴졌다. 불현듯, 사념이 먹고자 하는 욕구를 지나쳐 튀어나왔다.
‘내 글에 나오는 외계인의 묘사를 오징어랑 비슷하게 할 걸 그랬나. 내 상상 속 외계 생명체가 매력이 없어서 공모전에 떨어진 걸지도…….’
그녀의 배가 다시 우르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꼭 위협을 알리는 짐승의 소리 같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몇 번의 삐끗거림 끝에 매끈한 오징어 조각을 집었다.
입을 크게 벌리는 순간,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사람들이 하늘 위 무언가를 가리키며 건물 밖으로 뛰어나왔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나뭇가지가 부러질 만큼 세찬 바람이 불더니 거리에 큰 그림자가 졌다. 모두의 핸드폰이 소리를 지르듯 시끄럽게 경보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미확인 비행 물체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착륙. 시민분들은 건물 밖으로 나오지 마시고 모두 지하나 체육관으로 대피하세요.’
비행체가 천천히 땅에 닿자 뚜껑이 열렸다. 언뜻 보면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그러나 팔이 6개인 생명체가 걸어 나오자 비행체 주변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주방에서 나온 사장님 부부도 앓는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쳤다.
이름 모를 그것들이 입을 벌리자 멀리 떨어지던 사람들이 뭔가에 홀린 듯 다시 비행체를 향해 다가오더니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려는 건지 그것들은 건물 안까지 들어갔고, 기어코 그녀가 앉아 있는 중국집까지 침입했다.
그녀는 아주 깊은 심연과도 같은 그것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시공간을 초월해야만 가질 수 있는 공허를 품은 두 존재는 대화하듯 서로의 눈을 계속 훑었다. 생각과 주파수가 어느 순간에 서로 얽혔다. 그리고 그것의 입에서 드디어 ‘소리’가 나왔다.
“짬, 뽕?”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냥 짬뽕을 먹고 싶었을 뿐이야. 혼자 조용히. 그녀도, 그것도 함께 짬뽕 그릇을 내려봤다. 아주 차게 식은 짬뽕을.
이것이 인간과 외계인이 대화에 성공한 최초 순간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