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5
아침에 일어난 직후엔 크게 배가 고프지 않다. 일단 물을 끓이고 냉수와 섞어 큰 컵에 따라 다 마신다. 유산균도 먹는다. 공복에 먹는 게 좋다 해서 습관을 들였다.
기상 후 대략 한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프든, 고프지 않든 아침 식사를 해야만 한다. 그래야 출근해서 점심 전까지 버틸 수 있으니까. 여기서 선택지는 세 가지로 나뉜다. 전날 성대한 아침 식사 계획을 세웠거나, 아무것도 안 세웠거나, 계획을 바꾸고 싶거나.
어쨌든 냉장고를 열고 그 앞에서 익숙하게 음식들을 꺼낸다. 보통 아침에는 샐러드를 먹는데, 아침 운동을 한 날엔 배가 너무 고파서 제대로 식사를 한다. 그러나 그런 날을 극히 드물어서, 주식은 샐러드나 꿀과 과일을 잔뜩 올린 요거트라고 볼 수 있겠다.
가장 간편하게 단백질을 섭취하는 방법은 소포장된 닭가슴살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체질상 닭이 안 맞는다. 그래서 프로틴 음료를 섭취하거나 삶은 달걀, 살짝 데친 두부 등을 샐러드에 곁들인다. 건강에 좋다는 올리브유와 들기름을 굉장히 좋아해서 아침마다 듬뿍 뿌려 먹는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느 드레싱 소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찬 음식을 먹을 땐 꼭 뜨거운 커피를 함께 마신다. 그래야 탈이 안 난다.
남들에게 좋다는 다이어트 식단을 따라 하다가 제대로 탈이 난 지난날이 떠오른다. 물론 지금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긴 하지만, 비교적 그 횟수가 줄어들었다. 내 몸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고 잘 포장하다가도 어쩜 그렇게 아둔할 수 있었는지 가끔 생각하면 골이 팽팽하게 당긴다.
닭가슴살 한 덩이에 현미밥 작은 공기. 그것만 먹으면 5kg은 거뜬히 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군살 없는 탄탄한 몸과 딱딱한 복근을 가진 이들의 공통적인 식단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차리기도 간편하고, 기술의 발전으로 오만 저당 소스 범벅인 닭가슴살 제품들이 등장하면서 구매 욕구가 불타올랐다. 나름 자제해서 할인 기간에 20개 묶음으로 구매했다. 냉동실이 다이어트 식품으로 두둑해지자, 이미 심적으로는 못해도 3kg이 빠진 기분이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부지런히 꺼내 먹기 시작했고, 정확히 이틀 차에 제대로 체했다.
별의별 다이어트를 다 해봤다. 난 어릴 때부터 통통한 편이었는데, 특히 하체가 꽤 발달한 편이다. 천식과 아토피로 매달 항생제 주사를 맞았고, 식욕이 왕성해져 60kg이 넘자 엄마는 그 유명한 ‘허벌라이프’ 다이어트를 시켜줬다. 반신욕을 하는 건 좋았으나 그 식품들이 과연 몸에 좋았는지는 의문이다. (다단계라는 이야기가 거의 기정사실이지만, 일단 그 얘기는 보류하자) 어쨌든 내가 기억하는 내 몸무게 중 가장 마른 무게, 53kg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고등학생이 되자 살은 기하급수적으로 쪄서 고등학교 3학년 때 78kg까지 찌게 된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극심한 우울증이 한몫했으리라. 보다 못한 엄마는 한약을 먹이기 시작했고 어찌어찌 65kg까지 뺐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에 가도 더는 몸무게가 내려가지 않자, ‘아, 내 몸에는 이 무게가 맞나 보다.’하고 단념했다. 마르고 싶다는 욕망은 있었지만, 지난 과거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만족했다.
21살이 되며 운동에 눈을 뜨게 된다. 운동의 즐거움에 눈을 뜬 게 아니라, 사람이 이렇게까지 운동을 안 하면 사람 구실도 못 하게 된다는 진실에 눈을 뜬 것이다. 잦은 밤샘과 휘몰아치는 과제들에 나는 깔려 죽기 직전이었고, 안 그래도 약한 몸을 음식으로 채우는 데 한계가 있었다. 나는 필라테스와 요가원을 선택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운동을 시작한 후로, 몸무게가 천천히 빠지더니 한 23살 때 즈음, 저절로 정상 체중까지 빠졌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다양한 다이어트를 해봤다. 1일 1식도 해봤고, 간헐적 단식도 해봤고, 보조제를 먹었다가 병원도 가봤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건 간헐적 단식이었다. 내 몸과 체질만 두고 봤을 때, 나는 간헐적 단식이 잘 맞았다. 위가 약해서 하루에 3끼를 다 챙겨 먹는 건 버겁다. 밤에 배고픈 상태로 자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만족감을 줬다. 다음 날 체중계에 올라갔을 때 500g 넘게 빠져 있을 거라는 기대감. 내 몸이 가벼워지는 상상. 밤에 자다 말고 다리를 들어 두께를 확인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신적으론 건강하지 못한 방식이었다.
간헐적 단식이나 1일 1식을 좋아했던 또 다른 이유는 식비를 아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부모님의 굵직한 지원이 있었지만, 그것 외에도 내가 먹고,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소비를 줄이는 게 아닌 돈을 더 버는 쪽을 택했다. 그럼에도 경조사와 여러 일이 겹쳐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사람이 처음 보는 숫자를 통장에서 보게 된다.
‘1,540원’
그날도 카페에서 밤늦게까지 과제를 하고 집에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정말, 배가 너무 고팠다. 너무너무 고파서 견딜 수가 없었고, 결국 편의점으로 향했다. 딱 삼각 김밥만 살 수 있는 돈만 남아 있었다. 작은 메추리 알이라도 곁들이려 했더니 돈이 부족했다. 전자레인지에 데우지도 않고 대충 포장을 까서 한 입 먹었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나보다 일찍 경제 활동을 한 친구는 이 얘기를 듣고 안쓰러웠는지 팔자(八) 눈썹을 하고 말했다.
“밥은 제대로 먹고살자. 돈이 없으면 꼭 얘기해, 빌려줄게.”
친구의 말은 감동이었지만, 한편으론 삼각 김밥만 먹은 내 처지를 비관하진 않았다. 다만, 눈치도 없이 배고픈 내 배가 원망스러웠을 뿐이었다.
사회인이 되니 놀랍게도 돈이 더 없었다. 일을 못 해서 없었고, 그만둬서 없었고, 다쳐서 없었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서 없었다. 그래, 살도 뺄 겸 이건 기회다 싶어서 다시 저녁을 안 먹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자연스럽게 내 몸은 음식을 더 원했다. 속은 편했지만 늦은 저녁 극심한 어지럼증으로 화장실 앞에서 엎어진 날, 더는 이런 식으로 식비와 위를 줄일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돈이 없을 때 끼니마다 배고픈 자신이 어찌나 원망스럽던지. 뭐 얼마나 대단한 삶을 산다고 꼬박, 꼬박 밥을 다 챙겨 먹으려는 건지.
어엿한 직장인이 된 지금도 별반 달라진 건 없다. 체력이 떨어져서 밥을 꾸역꾸역 다 챙겨 먹는다. => 탈이 난다. => 도시락으로 죽을 싸서 다닌다. => 살짝 줄어든 복부 둘레를 보며 ‘그래, 이젠 진짜 살을 뺄 때가 됐다!’라고 착각한다. => 돼도 안 되는 다이어트 식품을 마구 산다. => 그걸 막 퍼먹는다 => 그러다가 입이 터져서 배달 음식을 마구 시켜 먹는다. => 탈이 난다. => ‘이젠 정말 정신 차리고 적당히 잘 챙겨 먹자.’라고 생각하며 통장을 봤더니 난 돈이 없고…….
혹은 이것도 있다. 체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운동을 시작한다. => 자존감이 높아짐을 느끼며 무리한다. => 갑자기 늘어난 활동량에 자주 배가 고파져서 많이 먹는다. => 채소를 쪄 먹거나, 쌈을 싸 먹으니 건강해졌다고 착각한다. => 마구 운동한다. => 마구 먹는다. => 근육통 몸살과 위장병을 같이 얻는다.
현재의 나는 후자의 고리 중에서도 결말에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침에 찬 바람을 맞으며 운동을 하다가 목감기까지 걸렸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 채 계속 지내다 보면 자신에게 묻게 된다. 대체 먹고산다는 건 무엇인가. 이런 심오한 질문을 부글부글 끓는 누룽지 앞에서 하게 되는 것이다.
엄마에게 부탁해서 짜 먹는 명란을 샀다. 냉동인데 잘 비틀어서 으깨면 금방 녹는다. 뜨거운 누룽지에 섞은 후 참기름을 넉넉하게 뿌린다. 김까지 있으면 좋았겠지만, 집에 조미김밖에 없어서 그건 포기한다. 후후 불어서 한술 뜬다. 당연히 맛있다.
먹고산다는 건 무엇인가. 어쩌면 너무 잘하려고 해서 생긴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이었나?
짭조름한 장조림이, 맛깔나게 무친 오이소박이가 맛나다. 내가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았음을 잠깐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