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 45 추억은 방울방울
오래전.
한때 어딜 가나 묵직한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들고 다녔을 정도로
폴라로이드 사진에 빠져있었다.
요즘은 핸드폰 카메라에 익숙해졌지만
폴라로이드를 애정 하던 짧지 않은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잠시 그 시절을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에 방 정리를 하는데.
오래된 짐을 담아놓은 박스 안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첩을 발견하였다.
무려 5권이나.
그중 나의 보리의 타이틀을 달고 있던 민트색 사진첩.
반가웠다.
어디~오랜만에 한번 봐볼까~
하고 펼친
제법 묵직한
사진첩에선
과거의 모습들이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손으로 만진 사진의 느낌은 다정했고.
그중에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밥을 잘 챙겨주자> 사진.
이 사진을 보니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때는
나의 보리가 우리 집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베이비 보리의 시절.
잠귀가 밝은 나는
한밤중에 들려온 얌얌얌 짭짭짭
소리에,
잠에서 깼다.
깜깜한 방 안에서 움직이던 더욱 검던 그림자.
이것은 꿈은 아닌 것 같은데.....
불을켜보니
가히 충격적인 모습이
눈앞에 뙇.
베이비 보리는
자기의 똥을 야심차게 먹고 있었는데
나는 이전에도 오랜 시간 함께한 반려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충격적인 모습에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잠에서 덜 깨었던 탔인지, 습관이었는지.
머리맡에 있던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나의 보리의 똥을 찍어두었고,
다음날 아침
온전히 찍혀있던 똥 사진을 보고 새벽의 사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잠귀가 밝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잠귀가 어두운 편이었고.
그 시절의 나의 보리는 새벽마다
맛있는 브라우니를 먹는 것 마냥, 맛있는 브라우니. 맛브 타임을 갖었던 것.
그렇게 무려 자기의 똥을 먹던 베이비였다.
잠에서 깨어 온전한 정신으로 마주한 어쩌다 마주하게 된 이 장면은
내게 다짐 같은걸 하게 했던 사진이었다.
<밥을 단디 챙겨주자> 하고..
그다음으로 눈에 띈
사진은
<새우 보리> 하고 쓰여 있던 이 사진.
나의 보리가 소년이었을 무렵.
하루 종일 장난하며 발랄하게 뛰어놀던
건강한 소년의 시절의 기억이다.
그 무렵의 나의 보리는
하루가 꽉 차도록 뛰고 또 뛰어도
다시 뛰고 싶은 소년이었다.
날이 아직 다 풀리지 않았던 초봄
우리 가족 모두와 함께 여행을 갔던 해.
공 바라기인 소년 보리는
내가 던지는 족족 빠르게 달려가 물고 다시 컴백했다.
시시하게 던지지 말고 제대로 한번 던져보라는 나의 보리의 표정을 읽은 나는
제법 세게 던졌는데
내 팔이 휜 것인지.
글쎄 그 공이
바다로 떨어졌는데,,
아직 날이 다 풀리지 전인 제법 쌀쌀한 바다를 향해
사실
그 당시 바다가 무엇인지 알턱이 없는 소년 보리는
그대로 청벙~첨벙 하고 바다로 돌진.
바다는 일렁이는 땅이 아닌데 말이야..
기세좋게 첨벙첨벙
그렇죠.. 춥죠..
물이 많이 찰 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찬 바다 안으로 기세 좋게 돌진하던 소년 보리는
추위에 새우등을 하곤 그대로 온몸이 굳어버린 것 같았다.
온몸으로 찬 바다에 빠져 매우 춥다! 는 제스처를 뽐내던 소년.
볼 때마다 웃길 거 같다
오케이. 찍어두자.
찰칵.
일렁이는 길 위에서
<새우 보리>
그리고 새우 보리 옆에 자리한.
기억할만한
<shiny>한 사진.
나의 보리 청년시절의 기억.
샤이니.
꽃 피어나던 봄 춘.
꽃피던 나의 보리의 청춘.
지금은 뚱뚱하지만.
나의 보리에게는 모델보다 아름답던 시절이 있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노랫소리가 어딜 가든 귓가를 맴돌던 그때.
당시
보리는 모질 이 아주 좋아 털을 길러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미용사 언니의 말을 계기로.
코카의 전형적인 스타일로 지속적으로 미용을 하던 나의 보리였다.
등은 밀고 어깨 밑으로 쭉 기르는 조금은 과한 스타일.
그 결과 청년 보리는 책에서 보던, 구글 창에 나올법한 외형의
바로 그 코카스파니엘이었다.
어딜 가나 시선을 한 몸에 받았고,
어딜 가든 예쁘고 멋있다는 말을 들어 그 말들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저기.... 본인한테 하는 말이 아닌데요..
불구하고! 와따시의 콧대가 높았던 시절.
아리따운 외모에
온 빌라를 울리게 하는 우렁찬 목소리.
거친 숨결과 사나운 눈빛.흔들리던 심장
도도함의 피크를 찍던 시절이었다.
"우리 그렇게나 재수 없었다 그치?~~"
z~z
여기 이곳
현실엔 마음 편한 후덕한 아재가 내 무릎을 베고 잠을 자고 있다.
z~z
지금
장년을 지나 아마도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는 나의 보리.
근데 어쩜. 날이 갈수록
솜 인형 같은 수 있지.
폭신폭신한 솜 인형 같은 아이.
안 좋아하던 때가 없었지만.
지금의 후덕한 나의 보리가 제일 좋다.
지금의 나의 보리의 아우라 안에는
이제껏 없었던 편안함과 폭신함 그리고 업그레이드 버전 따뜻함이 있다.
아무나 낼 수 없는 업그레이드 버젼 따뜻한 아우라란
가령 이런 것이다.
내 옆에서 자고 있던 나의 보리는
턱을 내 머리 위로 가져다 댄다.
단지 내 이마 위에 턱을 놓았을 뿐인데.
오 마이 갓.워메~
뭡니까 이 턱!?
당신의 턱밑은 왜 이렇게 따뜻합니까..
어디로 빨려 드는 줄 모르게 마음 탁~놓고 잠들게 하는 능력.
그런 것.
앨범 밖의 현실의 지금 나의 보리는 베이비도, 에너자이져도, 모델도 아니다.
내 머리맡에는,
등에는 평생 낫지 않을 피붓병이 있고 갑상선이 좋지 않아 신경질 자주 내고
코도 심하게 고는 퉁퉁한 노년의 개가 있을 뿐이다.
저 말들을 다시 말하면.
지금 내 머리맡에는
이제는 정말로 친구가 된 나의 친구가 있을 뿐이다.
_나의 베스트 프렌드.
추신_ 끝내기 아쉬운 앨범 안의 사이드 컷들.
<안 먹은 척! 매실 2개 어디 갔니>
스릴을 알게 된 날.
함박눈 오는 날의 나의 보리
엘샤가 부릅니다.
<레릿고~~~>
귀차니즘이 다시금 찾아와..
<목욕을 안 했더니 꼬수운 내가 난다.>
빅 발견.
앨범의 마지막 장의 마지막 사진은
나~즈벵~냐~~~
지~하바~~
<라이온 킹>
내가 왕이다.멍멍
예상치 못한 사진첩의 발견은 늘 즐겁다.
베이비 보리.
소년 보리.
청년 보리.
추억은 방울방울 합니다.
_내 친김에 아이클라우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