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엄마와 나 [초단편 04]

by 연서글서


카톡.

- 바쁘니? 전화 좀 해.


늦은 퇴근 가까스로 회사에서 빼낸 몸뚱이를 끌고 집으로 가는 길, 380km 떨어진 고향에서 카톡 하나가 도착했다. 스마트폰 액정 화면에 '엄마♥'가 나타났다. 답장을 할까 전화를 할까 고민하다 이내 화면을 끄고 가방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집에 가서 씻고 연락해도 늦지 않아.' 애써 엄마를 뒤로한 채 늘어진 발길을 재촉한다. 고온다습한 한국의 무더운 여름밤에는 습한 열기로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지치고 만다.


띠-띠디딕.


요즘 같은 날 오랜 시간 열리지 않은 현관문을 열 때면 마중 나오는 이 쿰쿰한 훈기는 어느 때나 마찬가지로 반갑지가 않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며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를 먼저 키고 샤워를 하러 욕실로 직행한다. 빠르게 벗어던진 옷가지를 발로 차고 칫솔질을 한다. 치약이 다 떨어졌네. 씻고 나가면 스마트폰을 켜 늘 쓰던 고체치약을 바로 주문하기로 다짐한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플라스틱을 제한하려 하는데 이렇게 아끼는 것 보다도 지구는 더 빠른 속도로 불타오르고 있다.


머리를 탈탈 털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 사이 시원해진 방안은 냉장고에서 나오는 냉기만큼 찼다. 캔맥주를 하나 꺼내 한 모금 마시는데 집에 오는 길 상상했던 그 시원함을 느낄 수 없었다.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었나? 에어컨 온도를 높이고 방안의 냉기가 어느 정도 가시면 마저 마셔야겠다. 드라이를 끝내고 먹다 남은 맥주를 들고 와 소파로 향했다. 방치한 만큼 탄산은 가셨지만 이번에야 말로 속이 시원해짐이 느껴진다. 소파에 드러누워 가져온 스마트폰을 찾았다. 알림 몇 개 확인하고 아까 계획했던 대로 쇼핑몰 사이트를 켰다.


통화 알림이 뜬다. 엄마다. 쇼핑몰 사이트는 한순간만에 '엄마♥'와 작년 여름 여행 갔다 함께 찍어 설정해 둔 배경화면으로 바뀌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피로를 느꼈다. 하루 종일 여름 더위 속에 사회성을 발휘하며 회사생활을 하다 드디어 혼자만의 공간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려나 했는데 또 신경 쓸 일이 생기다니. 아, 정말 입 열기 싫은데... 지금은 혼자 있고 싶은데...


"응. 왜?"

- 많이 바빴니?

"아니. 왜?"


수화기 너머에서는 한동안 침묵이 흐르다 "그래."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파에 푹 기대어 갈 곳 잃은 시선은 천장을 타고 내려간다. 나는 또 "왜 전화했어?" 하며 천장에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벽면을 타고 내려갔다. 벽면 끝에는 이번 달 일정이 표시된 달력이 있었다. 오늘이 며칠이더라.


아, 7월 5일

♡(하트)




이 글의 글감 주제는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이다. 면허도 없고 차도 없는 나는 이게 무슨 말이지 싶어서 검색해 봤더니 백미러에 적힌 글이라고 한다. 굴절되어 보이는 인간관계에 대해 써볼지 모순된 인간의 행태에 대해 쓸지 고민하다가 두 개가 짬뽕된 글이 탄생 됐다. 이 글의 주인공은 굉장히 모순된 행태를 일관성 있게 한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며 지속적인 지구를 위한 플라스틱 절감을 위한 고체치약을 구매해 쓴다 거나, 엄마와의 돈독한 관계를 뽐내는 듯한 사진을 배경으로 이용하며 '♥'를 사용하면서 엄마를 귀찮아한다는 점 같은 것 말이다. 이 글은 먼저 인스타 @soroci_sm 에도 게시한 글이지만 조금 더 다듬어 브런치에도 공개해 본다.


혼자서 글을 써보려고 할 땐 도통 어떤 주제로 어떠한 글을 써야 할지에 대하여 막막해지는데 이처럼 생각지도 못한 글감 주제를 선정해 주는 글쓰기 모임을 참여하다 보니 새로운 생각의 흐름이 이어진 글이 탄생하게 된다. 그런 고로 정말 글쓰기를 하고 싶은데 혼자서는 막막한 분들께는 모임 활동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우리는 온라인으로 진행이 되고 각 지역에 회원들이 흩어져 있어서 아주 건전한 모임이라 더욱 마음에 든다.(사교 모임으로 변질될 우려가 없음. 지역 독서모임을 해보니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


글쓰기엔 변주가 필수 덕목으로 생각한다. 같은 클리셰, 같은 소재라고 할지라도 작가마다 다 다른 글이 탄생하는 것인 이러한 변주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나는 3년 차 글쓰기 쓰다:Re 모임의 회원으로서 확신한다. 글쓰기에 두려움이 있지만 나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분이라면 적극적으로 모임을 활용해 보는 것이 아주 긍정적인 효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