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 쓰레기 산에 대한 나의 단상 [에세이 03]
들어가기 앞서
일주일 남짓 남은 여름휴가. 올해도 나는 제주도에서 보낸다. 유럽권 서양의 휴가 문화는 제2의 고향에서 휴가를 보내 매년 같은 휴가지로 떠난다는데 어쩌다 보니 나 또한 그 문화권의 사람처럼 제주도로 언제나 향한다. 동행자는 늘 함께하는 우리 엄마. 엄마의 일정에 맞추다 보니 길어도 2박 3일의 일정이다. 그러나 이번 9번째 제주도는 3박 4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제주도를 9번이나 가면 할게 뭐 있냐고 하지만, 글쎄. 짧은 일정을 소화하느라 아직까지 제주도를 완벽하게 만끽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렇게 또 새로운 제주도를 찾아갈 준비를 한다.(23년 여름휴가 때의 이야기. 이 글을 다듬는 지금으로는 12번을 여행했다.)
일상의 준비
비행기를 예약하고 숙소를 찾고 이제는 일정을 정리할 차례다. 큰 틀은 미리 정해둬 세부 일정만 확정하면 되었다. 숙소 근처에서 즐길 수 있는 새로움을 찾아본다. 완성된 일정을 새기며 이젠 상황별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해 본다. 일상에서의 나는 작업복이라 지칭하는 평상복을 정해 날마다 돌려 입고 출근을 한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티지 않는 밋밋한 옷을 입는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도 눈에 크게 띄지 않는다면 그대로 입고 다닌다. 많이 해졌거나 더러운 얼룩이 졌을 경우에는 버리고 새로운 옷을 찾아본다. 단지 매일 변화를 줘야 하는 새로움을 고민하는 귀찮음에 이러할 뿐 환경을 신경 쓴 그런 일렬의 의식 활동이 아니었다.
비일상 속으로
비일상이 된다면 완전히 달라진다. 귀찮음을 감수하며 자칭 패션리스타가 되고자 하는지 시간을 쓰고 돈을 쓰고 신경을 쓴다. 첫날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승마 일정이 있으니까 긴 바지를 입어야겠다. 어떤 바지를 입지? 요즘 유행하는 바지는 뭐가 있을까, 바지는 인터넷으로 시키면 실패할 확률이 큰데 쇼핑하러 나가야 하나? 언제 쇼핑하지? 이처럼 많은 신경을 쓰며 준비한다.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려니 스트레스를 받는다. 패션리스타가 되는 비일상 속의 나는 1년 365일 중 1주일 밖에 되지 않는데 유행에 따라가기 빠른 이십 대와 달리 삼십 대의 나는 1주일을 위한 패션의 조화로움을 배우기엔 몹시도 품과 힘이 든다. 그러나 이때를 위해 1년을 열심히 일해왔는데 '완벽한 휴가'를 기록하려면 예쁘고 아름다워야 한다. 그렇게 쇼핑 계획을 짠다.
우연히 본 뉴스
https://youtu.be/f9tOfiWdj7s?si=Ck9AR6JzMyT0k5f
저녁 식사 전 준비 루틴은 아이패드를 켜 유튜브를 통해 오늘은 무슨 영상을 밥반찬 삼을 지 살펴보는 것이다. 스크롤을 내리다 발견한 영상. 알고는 있던 내용이다. 예전부터 들어온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옷 산(山).
문득 생각이 든다. 진정한 패션리스타라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 안에서도 조화롭게 연출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매번 새로운 코디로 출근하는 직장 동료를 생각해 본다. 어쩜 그렇게 예쁜 옷을 매번 사서 입고 오냐 하니 같은 옷을 매번 다르게 돌려 입어서 색달라 보일 뿐 매일 옷을 새로 사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능력자에게 바로 패션리스타라는 칭호를 얹어줘야겠지.
예전에는 리폼해서 입는 개성의 시대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패스트 패션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람들 모두 빠른 옷 소비를 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반듯하고 빳빳한 새 옷을 뽐내는 공작새 인간이 되어버렸다. 비일상의 나 역시 그러하다. 유럽권 서양인의 휴가 문화와 다른 한국의 휴가 문화는 비일상의 연속이다. 해외 여행지에서 아시아 관광객들 중 유독 반짝 거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한국인이라고 한다. 인물이 빼어나서 반짝이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거치고 있는 것들의 Brand NEW의 반짝거림. 이것이 바로 한국 여행 문화이다.
나는 생각해 본다. 진정 나는 옷이 없는가? 아니, 가지고 있다. 헌 옷을 입으면 여행을 망치는가? 아니, 일정은 변하지 않는다.(날씨의 영향만 탈뿐) 그렇다면 왜 휴가 준비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휴가지에 도착 이후의 꾸밈에 쓰려하는가? 일상으로 돌아온 후 볼 사진을 위해서, 혹은 SNS에 올릴 사진을 위해서.(사실 난 딱히 SNS에 내 사진을 잘 올리지 않는다. 프로필 사진 정도에만 쓰인다.) 작년에 입었던 옷을 입었다고 주변 사람들이 알아보고 흉을 볼까? 전혀. 그렇다면 왜? Why not? 옷 하나로 작년 여행의 추억과 이번 여행의 추억이 같아지는가? 그때의 '나'는 지금과 같은 '나'인가? 등등등...
다시 일상으로
의문을 던져본다. 옷을 새로 사야만 하는 이유를. 단지 휴가지에서만 입어지고 옷장에 박힐 나의 옷 산. 나는 이번 휴가지에서는 새 옷을 사 입지 않기로 했다. 몇 번 입지 않았던 나의 여름 휴가지 패션룩을 꺼내 살펴보기로 하자. 제주도는 9번 가도 늘 새롭다. 제주도는 달라지지 않는다.
옷 하나 덜 사고 덜 버리기 시작하며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나는 오늘도 의식 소비를 하기로 다짐한다.
23년 7월 떠난 여름휴가 제주도에서의 여행은 정말 즐거웠다. 새 옷이 아니기에 더욱 마음껏 마음 놓고 즐겼다. 그리고 그날 입었던 옷은 두 배의 추억이 담긴 옷이 되어 소중해졌다. 한 때 도서 리뷰를 쓰는 활동을 하다 보니 좋은 기회가 있어서 받아 본 책, 《이토록 우아한 제로 웨이스트 여행》은 12,500km 유라시아를 자전거 하나로 여행하며 쓰레기에 대한 고찰을 하는 멋진 여행 에세이 책이었다. 순환되는 지구와 함께하는 여정은 정말 멋진 인류의 덕목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https://blog.naver.com/choice_c/223213151297
23년도 제주도의 여행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환경 문제에 신경 쓰기 시작하면서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여행 내내 눈에 띄었다. 특히 돌고래를 보기 위한 체험에서는 저 먼바다까지 나갔는데 이럴 수가! 두둥실 떠다니는 쓰레기들이 엄청 많았다. 전부 인간이 버린 쓰레기들. 돌고래 가족은 그 쓰레기 더미와 함께 헤엄을 치고 있었다. 정말 큰 충격이었다. 돌고래를 본 것보다 바다에 떠다니던 쓰레기 섬의 존재가 더 크게 인상에 남은 여행이 되었다.
그 뒤 나는 제로 플라스틱을 조금 더 의식하여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필수템으로 가지고 다니며 사용하고 일회용품은 될 수 있는 한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으며, 편의점 음료수(페트병, 캔, 등 쓰레기가 남는다.)를 멀리 했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24년부터 만화책 수집이라는 취미가 생겨버린 것! 즉, 비닐 쓰레기를 엄청나게 만들어 내고 있다는 말이다.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쓰레기 줄이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