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또는 결혼 [초단편 10]
그날은 잘 들어갔는 교. 뭐 그리 바쁜지고 이제야 안부를 묻는구먼.
이제 자네와 나 말곤 모두 우리 곁을 떠났다는 게 나는 아직도 실감 나지 않구려. 자네는 어떤가? 나는 지금도 한낮 찌는 태양 내를 맡으면 선연히 복작복작 다 함께 모여 떠들고 마시던 그 시절이 생생하건만 어찌 무심하게도 세월은 이리도 빨리 지나가는지 한탄스럽다네.
아직 함께 가보지도 못한 곳도 많은 우린 모든 약속은 욱여넣은 채 각자 사는 게 바빠 띄엄띄엄 연락혔지. 학창 시절엔 빠짐없이 다 함께였는데 각자 사는 사정에 따라 자주 보는 이가 있으면 간간이 볼 수 있는 이도 있었제. 뭉치야 사는 것인데 떨어지더니 결국 한 명, 두 명, 떠날 길을 가버리는 구만.
처음엔 얼떨떨했다네. 어디 몹쓸 장난이라도 치는가 했지. 언제까지고 함께 할 줄 알았던 녀석들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해를 넘길수록 당연지사 그리될 것은 알고 있었다네만 봄에 핀 꽃이 지고, 작열한 태양이 사그라들며, 무수한 낙엽이 어느덧 떨어진 가지에 쌓인 눈송이마저 다 녹아들어도, 그렇게 계절이 몇 번 순환하든 말든지 늘 너희들과 연락할 때면 언제나 그 시절 향기가 났고 젊음이 찬란했었는데 강산이 변하길 수차례였단 것을 어디 머리로만 알 것이지, 내 가슴 깊숙이 와닿았겠는가 말일세.
아직도 철들지 못 한 나만이 이런가? 자네는 아니라 말할 수 있는가? 그래도 떠나가는 녀석들 쉬이 떠나가게 가는 길 평온하라고 애써 담담히 축복해 주었지만 남은 우리가 어찌 정말 맘껏 빌어줬겠냐 말이지. 내 흐르는 시간도 붙잡지 못하고 둑 터지듯 빨리 새어나가는데 아아, 갈수록 두렵다네, 자네마저 그렇게 날 두고 떠나버릴까 봐 난 정말 두렵다네.
해가 가장 긴 계절, 승혁이를 맨 처음 보냈었지. 언제는 뭣 때문에 안 된다며 빠지던 녀석도, 다음엔 꼭 참석하겠다던 녀석도 이번엔 빼지 않고 모여들었지. 승혁이 가는 길에 우린 오랜만에 예전처럼 함께 했었다네. 낮부터 둘러앉아 사는 얘기 떠들며 술도 한 잔, 두 잔, 석 잔을 부었지. 평소와 달리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생각이 들었고, 그때는 정말로 시간도 흐르지 않았어.
오래 앉아 몇 병의 소주가 까지고 비워져도 해는 지지 않았고 이렇게 모두와 영 겹의 시간을 함께 하는가 했지. 지지 않는다 생각했던 태양이 졌을 때야 비로소 나는 모두 게워낼 수 있었네. 너무 힘겨웠네. 태양이 머리 위에 있을 땐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던 정신도 뉘엿뉘엿 저물자 내 몸을 가눌지도 못하고 픽 쓰러져 널브러졌지. 우린 그렇게 부랑자 되어 승혁이 곁을 둘러 뻗어버렸지.
그 앤 가는 길도 심심치 않았을 것일세. 저를 보러 온 친구들 편히 쉬다 가도록 챙기느라 바빴으면 바빴지. 그리고 웃었겠지? 니들도 내 꼴 날 때마다 또 다 함께겠구나 하고 말이야. 그 먼 옛날 기억 떠올리며 한낮부터 오래 부어 마실 때마다 쭈그렁 주름진 얼굴은 필 테고 딸리던 기력마저 돌아와 우리는 아직도 함께 할 때면 청춘(靑春)이로세.
23년도 12월 글감 주제로 선정된 「낮술」은 당시 결혼한 친구 네 신혼 집들이를 갔을 때 나의 심정을 담은 진솔한 글로 탄생하였다. 하나, 둘 짝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 친구들을 떠나보내면서 비록 모태 비혼주의일지라도 나 혼자 남겠다는 공포는 마치 노인의 그것과 같지 않을까 싶어 글을 한 번 써보았는데 정말 소설 한 편 잘 빠졌다고 생각한다.(자화자찬일까요?)
소설을 쓰는 작가는 자신의 경험치와 주관을 소설 속 화자를 통해 세상 밖으로 뱉어낼 수 있다. 나는 그런 작업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와 화자는 같지 않다. 그러나 같은 단상을 공유한다. 같지 않은 사람끼리 같이 공유하는 가치관으로 재편집된 세상을 재창조하게 되는 소설 쓰기란 정말 인간이 창조주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는 유일무구한 능력이 아닐까 싶다. 나의 세상을 창조하는 일, 그 즐거움을 함께 경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