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의 꿈에서 취해봅시다

인생에 향기를 페어링 하다 [에세이 10]

by 연서글서


사람마다 취향에 맞는 술이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꽃 향기가 목을 치고 코 끝으로 마시는 향기 강한 독특한 풍미의 에일 맥주가 취향에 맞다.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는 '코나 빅웨이브 골든 에일'로 하와이에서 탄생한 에일 맥주 입문용으로 추천하기 딱 좋은 술이다. 열대과일과 시트러스 향을 가졌기에 여름날에는 어디서든 우선적으로 빅웨이브를 찾게 된다.


내가 빅웨이브를 처음 접했을 때는 회사 회식 자리에 갔었을 때였다. 1차로 이미 소맥을 말아 달렸기에 2차는 가볍게 한 잔 하러 갔었는데 그곳에서 생맥주로 파는 빅웨이브를 만나게 되었다. 예쁜 이름에 호기심에 시켜본 맥주는 처음 입술에 닿았을 때부터 코 끝을 치고 들어오는 향기와 목을 타고 들어오는 탄산이 터지며 내는 시트러스 향이 가히 예술적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에일과 라거, 맥주의 구분을 알게 되었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맥주를 고를 때에도 빅웨이브가 있다면 무조건 빅웨이브를 선택했다.(이마트와 이마트 24 편의점에 있다.) 이마트에서 코나 맥주를 종류별로 빅웨이브 전용잔과 한 세트로 팔았을 때, 나는 두 세트를 샀어야만 했다. 한 세트만 구매했더니 어느샌가 맥주 컵이 증발하였다.(원통하다.) 이렇게 맥주마다 고유의 컵이 따로 있는데 모양이 제각각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다.


사실 맥주의 맛은 향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각 맥주마다 맥주의 향을 극대화해주는 것이 바로 전용잔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으로 구매한 맥주를 전용잔에 따라 마셨을 때와 캔맥주 그대로 잔에 따라 마시지 않았을 때에는 맛이 현저히 차이가 난다. 나는 이것을 이번 에세이 글의 제목으로 차용한 동명의 일본 만화책 《호박의 꿈에서 취해봅시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코나 빅웨이브 전용잔은 '파인트 글라스'로 향이 공간에 잘 퍼지는 장점이 있다. 그렇기에 향이 강한 빅웨이브를 마실 때에는 파인트 글라스 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 본 맥주를 최대한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맥주마다 특색이 있는 잔이 따로 있는 이유를 알았을 때 뭐든지 제각각 쓰임이 있다는 것을 한 번 더 체감할 수 있었다.


만화책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순정만화, 소년만화, 등 오락거리의 만화책이 있는 반면 《호박의 꿈에서 취해봅시다》처럼 한 소재를 가지고 깊이 파고들며 다양한 인간 군상과 페어링 한 드라마적 요소가 뛰어난 만화책도 존재한다. 나는 이런 만화책을 참 좋아한다. 개성 강한 맥주와 같이,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 나는 나의 글도 여러 가지 냄새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글을 쓰고 싶다.


또 나는 맛이 달달한 술은 금방 취해 불호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단 맛이 나는 과일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중 와인은 특히 적은 양(1~2잔)으로도 취기가 올라와 가성비 측면에선 좋을지 몰라도 가심비(많이 마시고 싶은데) 측면에서는 최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인을 곁들여야 할 때에는 떫은맛이 아주 강한 드라이한 녀석으로 추천해 달라고 한다. 사람은 때때로 싫은 인간도 상대해야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내가 쓰고 싶은 글만,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적인 내용으로만 쓸 수 없다. 싫은 글도, 못된 사람의 이야기도 써야만 한다.


양조 전문가 브루마스터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자신의 맛을 이끌어 낸다. 그중에서는 싫은 녀석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렇지만 싫은 녀석이 존재했기에 최상의 맛이 탄생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오늘 글이 안 써진다고, 미운 글이 써진다고 해서 쓰지 않고 다음으로 미루기보다는 싫은 그 글을 일단 끝까지 쓰고 그 위를 딛고 올라서 다음은 좋은 글로 나의 마음에 드는 글로 쓰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글 또한 써지지 않는 글감 주제를 포기하지 않고 쓰다 보니 이렇게 나의 진솔한 글쓰기에 대한 단상을 이어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두 그렇게 글을 쓴다.




글감 주제 「포도빛 향기에 취해만 가는데」로 쓴 원 글이 따로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새로 썼다. 이유는 즉, 당시 글감 주제를 잘 못 알아서 썼던 글(참여하지 못했던 이전 달의 주제였던 것)이 참여 달의 다른 주제와 어쩌다 보니 우연히 들어맞게 되었기 때문에 주제에 맞는 글을 (거기다가 원 글은 소설인데 지금 현저히 에세이 원고가 부족하다.) 다시 새로 쓰게 된 것이다.


같은 글감으로 다른 형식의 글을 쓰는데 에세이로 쓸려고 하니 막막했다. 아무리 뜯어봐도 와인에 관한 이야기 밖에 나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와인을 싫어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글을 써야 하지 한참을 고민하다 맥북을 덮었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는데 "오늘은 뭔가 좀 잘 안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쓴다"는 말에 자극을 받아서 다시 맥북을 켜 이 글을 탄생시켰다.


글감 주제는 어디까지나 글감 주제일 뿐이다. 영감을 얻어 쓸 수 만 있다면 일단 써야 한다. 그렇게 글쓰기 근력을 길러야 한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이유는 이런 글 쓰기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니까 나는 써야 했다. 여러분도 글이 안 써진다고 다음 날 써야겠다고 덮지 말고 루틴에 맞춰 못난 글일지라도, 싫은 글일지라도 일단 써보기를 추천한다. 글은 고쳐 쓰면 된다. 고쳐 쓸수록 연마가 되어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글로 탄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일단 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