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온 문장 뽑기, 적당함에 대해 [에세이 18]
강릉의 어느 독립 서점에는 책방지기가 책을 읽고 마음에 든 문장을 담아둔 '문장 뽑기'가 있다. 투명 일회용 아이스 컵에 든 작고 하얀 종이쪽지에 감싸진 어느 한 사내의 마음을 두드린 문장을 우리는 한 장씩 뽑아 보았다. 각자 뽑힌 문장을 돌아가며 소리 내 읽었다. 나의 손에 뽑힌, 나에게 온 문장은 적당했다.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를 줄였다.
좋아하는 무언가와 오래 함께하기 위해서는
적당함이 필요한 법이니까.
- 김유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어
적당함.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어째서?'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더 많이 즐기고 싶고 그것에만 몰두하고 싶은, 과하게 몰입하는 편이다. 당장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야 하는데 감질나게 끊기면 하루 온종일 그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된다. 식단 조절에 실패한 다이어터와 같다. 참다 참다 결국엔 폭식하듯 적당함이 없이 매우 폭력적이게 섭취한다. 그렇기에 차라리 질릴 때까지 즐기는 편인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떤 글감으로 글을 쓸까 하다 「적당함」에 대해 쓰기로 했다. 그래서 문장 뽑기 쪽지 속 내용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했다. 김유은 작가는 왜 좋아해서 오래 하기 위해 줄였을까 나름의 이유를 찾아보았다. 이번에 읽은 책에서 그 힌트를 얻어낸 것 같다. ‘절제’는 중요하다. 최태성 강사 또한 본인의 저서를 통해 삶에 깃든 절제의 중요성을 알렸다. "더욱더 '절제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삼국지가 이러한 절제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 쓰인 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적당함'과 '절제'는 함께 하는 단짝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함을 알아야 절제를 할 수 있다, 절제를 하기 위해서는 적당함을 알아야 한다.
적당함은 사람 간의 거리감에도 필요하다. 적당함이 엇나가면 애정이라도 폭력이 된다. 단편적으로 보자면 스토킹 범죄와 자녀를 속박한 부모의 애정을 예로 들 수 있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하지 말자. 스스로를 절제 못하고 적당함을 잃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과 더욱 오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적당한 선을 잘 지켜야 한다.
에스프레소 잔보다는 살짝 긴 잔에 핫초코가 나왔다. 핫초코와 비슷한 양의 따뜻한 물 한잔도 함께 받았다. 가격에 비해 적은 양에 살짝 당황했었지만 첫맛을 보았을 때 깊은 핫초코의 풍미를 입안 한가득 느꼈다. 녹진한 핫초코의 진함에 함께 받은 따뜻한 물 한 컵이 소중했다. 쇼콜라 퐁쎄 사장님께서는 우리가 핫초코를 아주 즐기기 좋은 적당량으로 끝까지 물리지 않고 다음을 찾게 하는 여운을 선사해 주셨다. 이 적당량의 핫초코에서 나는 김유은 작가의 말을 상기해 본다. "오래 함께하기 위해서는 적당함이 필요한 법이니까"
토요일에 글을 퇴고했어야 했다. 그러나 적당함을 몰랐던 나의 휴일 낮잠은 하루를 앗아갔다. 절제를 잃어버렸더니 글쓰기 텐션 근력이 끊어져버렸다. 다시 이어가기 위해 나는 지금부터라도 적당함을 알고 절제로 이루어진 글쓰기 태도를 내 인생에 적용해 계속 유지해나가야 한다.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서 갖춰야 할 방식이다.
절제하는 삶의 태도를 배운 최태성의 《최소한의 삼국지》는 지난 일요일이 다 끝나기 전 부랴부랴 글 발행에 성공했다. 나의 또 다른 브런치북 연재 글 『집책광공 사유독서』는 매주 일요일 자유 시간 발행을 약속했기 때문에 하루가 다 끝나가는 시점일지라도 세이브라 볼 수 있다. (고 변명 중입니다)
하지만 연속해 늦어버린 오늘 오전 8시 발행 됐어야 할 이번 『다시 문학, 다시 글쓰기』 에세이는 크게 반성하며 내일은 늦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글을 쓰는 하루 루틴을 적당함을 다시 세우도록 하겠다. 늦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