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침묵

그림자 왕따 [초단편 01]

by 연서글서


삼삼오오 모여 북적대는 곳을 피해 빈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열어 오늘 첫 개시하는 노이즈 캔슬링 무선 이어폰을 꺼내었다. 수 십 번을 엄마에게 떼를 써 구매한 이어폰이 도착하길 학수고대한 나는 새벽 배송 택배를 받았을 때, 온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오늘부터 아무런 소음 없는 고요한 나만의 자리 한켠 마련되는 것이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트를 꺼내 들었다. 달칵 거리는 샤프 소리는 먹먹해진 귓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높은 주파수의 웃음소리들은 자꾸만 내 신경을 더욱 곤두세우도록 크게 들려온다. 기대했던 것만큼의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의 존재 가치가 크지 않음에 금방 실망하게 되고 말았다. 나는 얼른 유튜브 뮤직을 켜 자주 듣는 essential;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이어폰에서 흘려 들어오는 노랫소리에 소음이 차단되어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샤프를 한번 더 달칵거리고 필기를 옮겨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청각을 죽여갔다.


하지만 하필이면 내 자리는 한가운데에 있어서 자꾸만 시야가 어지러웠다. 간혹 의자 끌리는 소리, 하이톤의 높다란 소리가 날 땐 소음은 내 귓가에 꽂혀 나도 모르게 반응하게 되고 말았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척, 들리지 않는 척, 무심한 척하려 애를 써도 의식하는 순간 마음이 흐트러졌다. 괜스레 샤프만 달칵, 달칵 어수선한 정신에 나는 이제 어딜 필기하려 했는지도 헷갈렸다. 나만이 이 소음 속에 혼자 동떨어져 있다.


내 모든 집중은 귓가를 스쳐간다. 괜히 혼자 겉도는 나의 이야기를 다른 이들이 하는 것 같아 슬쩍 이어폰을 꾹 눌러보았다. 엄폐되었던 귓속은 남들 몰래 뻥 뚫렸다. 배경음으로 깔린 노래와 함께 주변의 떠들썩함이 나의 청각을 덮쳐온다. 나를 과녘한 이야기 한촉이라도 들려올까 싶어 가만히 집중해 본다. 왁작지껄 떠드는 소리가 울리는 교실 한가운데 아무도 나를 찾는 사람 없는 나는 외딴 무인도로써 존재한다.




'쓰다:Re' 모임 정식 참여를 시작하였을 때 쓴 첫 글이다. 글감 주제는 '좋아하는 노래 1절 가사에 나오는 단어 중 골라 쓰기'였다. 떠올려 보았다. 어떤 노래와 가사들이 있었지? 어떻게 엮어서 글을 쓰지? 고민을 하던 중 지난번에 본 뉴스 하나가 생각났다. 왕따 관련 뉴스로, 요즘 왕따는 깡그리 없는 사람,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는 내용이다. 아직 세계가 넓지 않은 10대 때는 함께 지내는 친구가 전부인데, 하루 절반 이상을 보내는 학교에서, 나의 반에서 함께할 친구 하나 없는 무관심은 정말이지 너무 잔인한 지옥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자 왕따」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하며, 나는 소찬휘-Tears를 선정했다.(사실상 본말전도된 상황이다.) 노래방 단골 선정곡, "잔인한~ 여자라~ 나를 욕하지는 마~" 1시간에 걸려 쓴 이 글을 호스트에게 전달하고 인스타 북계정(@soroci_sm)에도 게재했다.(이 글을 쓰면서 처음 썼던 글에서 더 다듬어 수정 조금 하였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그리고 나는 남다른 목소리를 가졌었고, 한창 이성에 눈을 뜬 10대 사춘기 아이들은 나에게 '여우짓'을 한다는 프레임을 씌워 무리에서 따돌림이라는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정말 상처를 많이 받아 나의 존재를 스스로 구겼었기에 왕따 피해자에 대한 심적 공감대가 나를 울리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감대는 아이러니하게 나의 글에 녹아들어 이야기로 탄생했다. 이 글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울림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