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육으로 시작된 그날의 역사
그런 날이 있다. 아이 한 명만 돌봐도 되는 날. 그런데 이제 전염병을 곁들인.. 가정보육하는 날.
그날은 유독 아침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J가 화장실 세면대에 구토를 했다며 최첨지를 깨웠다. 올 것이 왔다. 드디어 장염이구나, 아니면 식중독인가? 어디서 뭘 먹고 온 것이야! 부아가 있는 대로 치밀었다. 하지만 티를 내선 안 된다. 그랬다간 아마추어 엄마가 된다. 첨지는 프로 엄마라서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가득 띄우고 말했다. “응~ 내새끼 토했구나~ 괜찮아. 옷에는 안 묻었니? 아빠가 치울 거야.”
반면 H에게는 이 상황이 쓰나미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동생이 토를 했다고? 어디에? 설마 내 이불에? 더럽고 냄새나는 토사물이 이불에 묻는다면?! 안 될 일이었다. J는 4년 전에도 H의 베개에 토를 한 적이 있었고, 결국 그 베개는 버릴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H는 참을 수 없었다. “너! 또! 엄마 내 이불은 어떡해? 아빠 말고 크린토피아에 맡겨서 전문적으로 빨아줘!”
아... H는 물건에 대한 집착 때문에 동생의 안위 따위는 아웃오브안중이었다. 첨지도 번개처럼 반응했다. “야! 이럴 땐 아픈 사람 먼저 신경쓰는 거야! 네 건 아빠가 알아서 빨아줄거야! 걱정하지 마!” H는 삐졌다. J는 괜히 머쓱했다. 첨지는 돌아버릴 것 같았다. 이 감정선을 모르는 L은 하루 종일 세탁을 해야 했다.
H를 학교로 보내고, J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첨지는 J의 원망을 받아내야만 했다. “언니가 아까 내가 아팠는데 신경도 안 쓰고 자기 이불만 신경 썼어.” “그리고 또 언니가 옛날에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나한테 화냈어.” “언니가 내 물건인데도 자기가 산 것처럼 마음대로 사용했어.”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 “엄마! 언니가 좋아, 내가 좋아?”
마지막 질문을 3시간 정도 들었을 때였을까, 첨지는 이대로는 우리 싹 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비장의 무기를 꺼낼 때가 되었다. 프린트기에 고이 모셔두었던 A4지 5장을 꺼내들었다. 양면이 고루 하얗고 매끄러운 A4지. 이면지가 아닌 새종이를 쓴다는 건 평소 첨지네 집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A4지를 손에 들고 J를 향해 외쳤다. “그림 그릴래!? -제발 입 좀 다물고-”
하지만 그 순간 첨지의 속에서는 허리케인급 갈등이 일어나고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H가 이 광경을 본다면.. J 혼자서 흰종이를 독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삼두견이 포효하게 될텐데..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진 첨지는 J를 닦달했다. 종이를 너 혼자서 몰래 써라, 언니가 보지 못하도록 숨겨서 써라, 너한테만 주는 거니까 아껴서 잘 써라.. 그리고 J는 그 종이를 보란 듯 거실 한 가운데 던져놨다.
드디어 때는 왔다. H가 하교를 해버렸다. 그리고 발견해버렸다. “어,,? 왜 너 혼자 새종이를 써..?” J와 첨지는 둘 다 얼음. 첨지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파국을 기다렸다. 그리고 침묵을 비집고 나온 H의 결정타. “아! J가 아파서 엄마가 준 거구나? 지금은 괜찮아 우리 애기~?” 신이시여.. H의 전두엽을 키워주심에 감사합니다.. 진짜 진심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