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케르베로스는 낮잠을 잔다.

24시간 곱하기 3주일에 대한 기록

by 최첨지

H가 여름방학을 맞았다. 방학이 가까워지면 대부분의 양육자는 마음이 철렁한다. 아이가 하루 종일 집에 있다니... 그만한 형벌이 있을까. 그런데 최첨지의 마음은 묘하게 들뜬다. 방학이야말로 H의 온순한 모습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H는 학교나 학원 같은 사회적 활동을 하는 공간에서는 일종의 ‘일반인 코스프레’를 한다. 머리가 셋이라는 사실을 들키면 곤란하니까, 늘 나머지 두 머리를 잘 숨기느라 총력을 다한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꽁꽁 싸맨 머리들을 꺼내는 순간... 첨지는 숨을 멈춘다. 두 머리가 포효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를 숨겼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 불평은 때론 흐느낌으로, 때론 분노로 변한다. 그때마다 첨지는 ‘이 순간만 잘 넘기자’고 다짐하며 H를 달랜다. 꽤나 절박한 과정이다.


하지만 방학은 다르다. H는 ‘자연 상태의 케르베로스’ 그 상태 그대로 집에 있을 수 있다. 에어컨 바람이 솔솔 부는 집에서 마음껏 늦잠을 자고, 시간을 맞추지 못할까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 교과서를 맞춰 챙기지 않아도, 보드게임 모둠에 끼지 않아도 되는 시간. 세 머리는 평화롭다. 엄마가 공부를 하자고 해도 들어줄 여유가 있고, 청소를 하라고 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맛있는 간식과 반찬이라면 땡큐다. 포효? 그런 걸 왜 해. 흐느껴 운다고? 아기나 하는 짓이다.


협조가 잘되는 H의 모습은 귀하다. 동생 J와 사이도 좋다. 둘이 온종일 붙어 사부작사부작 노는 그림이 아름답다. 눈만 마주치면 싸우던 학기 중과는 완전히 다르다. 밤마다 불면을 호소하던 아이가 아침 열시까지 늘어지게 잔다. 급식을 늘 남겨 왔지만 집에서는 한 그릇 더!를 외친다. 방학 동안 첨지는 이 온순 모먼트를 만끽한다. 행복이 있다면 바로 이거구나... 놓치고 싶지 않다. 개학이 다가오는 게 슬플 지경이다.

이제 코스프레를 하는 건 첨지다. 마트 가는 길목에서 동네 엄마들을 마주치면 ‘방학이라 너무 힘들다’는 표정을 해보여야 한다. 그래야 집에 온순한 케르베로스가 산다는 사실을 숨길 수 있다. 어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H도 이렇게 힘들었겠지. 남들보다 예민한 것을 참아내느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뇌를 억지로 잠재우느라,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내미는 나머지 두 머리를 애써 숨겨내느라.


첨지는 하지 말아야 할 생각을 해본다. ‘혹시.. 홈스쿨링은 어떨까?’ 매일이 이렇게 평화롭다면 해 볼 만 하지 않을까. 사람 많은 학교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되고, 공부 효율도 집이훨씬 높아 보인다. 첨지도 어차피 회사를 그만뒀고. 인생 한 번 사는 건데, 자식한테 올인하는 것도 꽤나 좋은 아이디어다. 불현듯 떠오른 희망회로는 멈추지 않고 윙윙 돌아간다.


이런 ‘대가리 꽃밭’같은 생각으로 방학은 하루하루 지나간다. 여름날의 케르베로스는 낮잠을 잔다. 그 사이에도 H를 깨우는 개학 종소리는 이미 복도 끝에서 울릴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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