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선생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묻다.
여름방학의 끝자락, 숙제 전쟁이 시작됐다. H는 공책을 앞에 두고도 단 1분으 못 버틴다. 안 그래도 하기 싫었는데, 최첨지가 하라고 하니까 더 격렬하게 하기 싫다. 숙제가 뭔데? 왜 방학의 흐름을 끊는데? 하나도 중요치 않다. 학생의 의무고 나발이고 지금 내 자유가 침해되었으니 첨지를 방해하는 것으로 복수하리라 다짐한다.
“엄마 지금 요리 중이니까 자꾸 말 걸지 말고 일기 써.” “싫은데? 계속 엄마 부를 건데?” “그럼 하지 마. 네 숙제지 내 숙제 아니야.” “그것도 싫어! 나중에 할 거야!” H는 첨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날선 눈빛으로 대답한다. 7옥타브 정도 되는 하이톤으로 짜증부리는 것도 첨가한다. 첨지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케르베로스는 본디 첨지의 뱃속에서 잉태된 것, 삼두견을 제압하는 첨지의 광년 모먼트에 H를 포함한 가족 모두가 숨을 죽였다.
상황 종료, H는 한줄기 눈물을 흘리며 잠에 들었다. 첨지는 고요한 거실에서 홀로 맥주 한 캔을 땄다. 거품 대신 체념이 튀어 올랐다. 지금까지 이런 종류의 괴성을 무수히 오고 갔지만, 단 한번도 H가 이겼던 적이 없다. 하지만 H는 늘 이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스탠스로 첨지에게 도전했다. 아직은 첨지가 너끈히 이겨내지만, 10년 후에도 그럴까? 그 전에 기숙사 학교로 보내야 하나? 울릉도라면 좋을텐데.. 첨지는 맥주가 목을 타고 흐르는 느낌에 집중하려 노력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건 다 개학 때문이다. 방학 중에는 H와 얼마나 화기애애했던가. 고성이 오가는 일 없이 느긋하게 아침을 보내고, 늘 웃으며 서로를 대하지 않았던가. 첨지는 개학이라는 놈이 괘씸했다. 왜 이렇게 우리 H를 괴롭히는 건지, 다신 만나고 싶지 않은 녀석이었다. 아무래도 홈스쿨링에 박차를 가해야겠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한 사람의 고견이 필요했다.
H와 첨지는 정신건강의학과에 손을 꼭 잡고 방문했다. 한 달에 한 번, H는 케르베로스의 진면모를 들키지 않기 위해 병원에 간다. 정신과 선생님은 언제나 확신에 찬 미소로 첨지와 H를 맞이하신다. 아마도 선생님은 파워 외향인이시리라, 첨지는 생각하며 진료를 받곤 한다. 그리고 작은 알약들을 한 달치 정도 처방받는다.
H가 먼저 선생님을 만나고, 첨지가 뒤를 잇는다. “어머 어머님~! 방학동안 고생 많으셨죠!” 바로 지금이다. 첨지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선생님, 저 방학이 너무 좋았어요. 아무래도 저희 H는 학교에서 받는 자극이 너무 많은 게 문제인 것 같아요. 혹시, 홈스쿨링은 어떨까요?”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해바라기같던 미소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선생님의 눈빛은 엘사보다 더 차가웠다. 첨지는 본능적으로 침을 꼴깍 삼킨다.
“어머니, 아이 제도권 안에서 키우시지요.” 선생님은 단 한 마디로 첨지를 제압하셨다. 첨지는 더 이상 입을 뗄 수 없었다. 그래.. 제도권 안에서 키우자.. 홈스쿨링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