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면 과연 감천일까, 김밥천국일까
최첨지에겐 오랜 고민이 하나 있다. 바로 요리 실력이 일천하다는 것. 스무 살부터 자취를 했지만 요리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밥이란 자고로 연료 아닌가. 그냥 뱃속에 채우면 장땡인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야 좋겠지만, 그러자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기엔 다른 중요한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남편 L을 만나고서야 첨지는 이런 각박한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 L의 모토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L은 집에서도 코스요리를 하는 것은 물론, 비행기 기내식도 커스텀해서 먹는 사내였다. 첨지는 L의 덕을 톡톡히 봤다. 사는 게 재밌어지고 다채로워졌다.
하지만 첨지는 몰랐다. L이 그렇게 야무지게 만들어 먹는 데에는 그만큼 예민한 혀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H는 L의 혀를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무려 세 개나.
H의 예민한 혀는 냉장고에서 꺼내 데운 모유를, 갓 만든 분유를, 소고기와 세 가지 채소가 들어간 이유식을 거부했다. 어렸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싫은 건지 표현할 수 없었다. 스스로 요리할 수도 없었다. 그저 식음을 전폐했다. 아기의 처절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첨지는 자신이 요리왕 비룡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첨지는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주방에 서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주방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첨지의 칼질이 조금씩 빨라졌다. 간을 보는 능력도 정교해졌다. H의 세 혀는 만만치 않았지만, 그만큼 첨지의 집념도 만만치 않았다.
그날 저녁도 첨지는 주방에 서 있었다. 오늘의 무기는 무, 소고기 국거리, 콩나물, 알배추다. 인덕션 위 냄비에서는 채소 육수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디포리, 무 뿌리, 통양파, 다시마 3조각, 마늘 다섯 쪽, 황태채가 들어갔다. 코인 육수는 국물을 탁하게 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첨지는 무를 크게 썰었다. 여름 무는 맛이 쓰기 때문에, 잘게 썰어 반찬으로 내면 실패하기 쉽다. 통으로 채소 육수에 넣어 시원한 맛만 우려내면 된다. 육수가 풍부하면 간은 조금만 맞춰도 된다. 이제 흐물흐물해진 채소와 나머지를 건져낸다. 핏물을 뺀 소고기를 볶지 않고 바로 육수에 넣는다. 한입 크기로 썰어낸 알배추도 반통을 넣어 함께 끓인다. 중강불로 한소끔 끓인 후 불순물을 걷어내고, 마지막으로 콩나물을 한줌 넣는다. 약불로 바꾸고 콩나물이 반투명하게 흐물해지면 국간장 한 스푼, 어간장 반 스푼을 첨가하고 5분만 더 끓인다. 간을 본다. 깊다. 첨지는 스스로에게 100점을 준다.
올리브 오일과 다시마 한 조각을 넣은 솥밥에 고깃국, 아삭한 김치, 나물 반찬 하나와 생선 한 조각을 올린 밥상이 준비됐다. “나와서 밥 먹어라!”고 소리까지 지르면 진정한 식사 시간이 시작된다. 세 번 정도 샤우팅했을 때 H가 어기적거리며 나온다. “수저 챙겨라!” 한 마디 더 한다. 의자에 앉으려던 찰나에 엄마가 지시를 내리자 H의 입이 뾰루퉁해진다. 하지만 첨지는 캐치하지 못했다. ‘어서 내 밥상을 봐, 어서 엄마의 솜씨를 찬양하란 말이야.’ 첨지의 신경은 오로지 고깃국에 가 있다. H의 입에서 엄마 요리 솜씨는 최고라는 찬사가 나와야만 한다.
식탁 자리에 앉은 H가 드디어 고깃국을 발견했다. “어? 국이네?” 갑자기 H의 뇌는 H를 과거로 데려간다. “엄마, 그때 기억나? 나 그거 진짜 맛있게 먹었었잖아. 부산에서, 돼지국밥! 그치? 아~ 돼지국밥 먹고 싶다!” 아직 수저는 뜨지도 않았다. 고깃국에는 관심도 없다. H는 지금 당장 돼지국밥이 먹고 싶은 것이다.
“돼지국밥은 무슨! 지금 있는 밥이나 먹어!” H는 엄마의 매몰찬 샤우팅이 야속하다. 그냥 맛있었던 기억을 공유했을 뿐인데.. 첨지도 H가 야속하다. 왜 국을 끓였는데 먹지를 못하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는데, 내일 저녁은 그냥 김밥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