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눕는 게 눕는 게 아니야
놀고먹고 풍성했던 추석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빨간 날이 많다. 이번 연휴는 길기로 유명하다. 2025년 추석까지 존버하라고 첨지가 아가씨였을 때 짤이 돌았었다. 그 시절엔 이날이 오기를 얼마나 학수고대했는지! 그러나 그땐 애둘맘이 될 줄 몰랐던 것이다.
첨지네 집은 이 긴 연휴를 두 파트로 나눠서 보내기로 했다. 첫 3일은 시댁에서,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잠시 충전 후 남은 날들은 근교 여행으로 잡았다. 시댁방문은 원만히 보냈다. 중간중간 H와 J가 염병첨병했지만 부모님이 밥도 차려주시고 낮잠도 재워주시니 감당할 만 했다. 늙은 부모님이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에 다녀오셨을 때, 두 분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읽었지만 그냥 모른 척 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왔다. 트렁크에는 각종 김치들과 과일, 고기가 한가득이다. 여행가방을 정리하고 냉장고를 채운 뒤 하룻밤만 자고 다시 남은 여행길에 올라야 했다. 다들 의욕이 충만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주인공은 케르베로스 H도, 미친 7살 J도 아니었다. 바로 늘어지게 휴식을 취한 첨지였다.
돌아온 날 밤부터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낀 첨지는 처음엔 그저 당이 떨어진 줄 알았다. 그럴 땐 떡볶이지. 야식으로 엽떡을 야무지게 시켜 먹었다. 쿨피스도 마셨다. 그럼에도 심장박동은 더욱 거셌고, 양 팔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날 밤을 꼴딱 세고 다음 날 아침에 동네 병원을 갔다. 집 근처임에도 가는 길에 숨이 헐떡거렸다. 할아버지 의사선생님이 혈압을 재더니 깜짝 놀라 대학병원 진료의뢰서를 써주셨다.
아.. 이건 좀 오반데.. 하는 마음을 안고 첨지는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심근염이 의심되신다고요, 빈맥이 잡히긴 하네요. 대병 의사쌤이 말했다. 몇 가지 검사 좀 할게요. 말이 끝나자마자 굵은 바늘이 팔뚝에 들어오고, 피도 뽑혔다. 심전도도 해야 한다고 했다. 심근염이 뭐지? 첨지는 몰래 챗지피티에 검색해봤다. 음, 증상이 비슷하긴 하네. 설마 입원해야 하려나? 그럼 나가린데. 빨리 기운차리고 다시 여행가야 하는데.
응급실에서의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빨리 피검사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간호사쌤이 혈압을 대는데 183/112가 나왔다. 맥박은 120을 가리키고 있었다. 첨지는 식겁했다. 간호사쌤은 평온했다. 잠시 후 폐CT를 찍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살면서 조영제를 투입하는 건 처음이었다. 첨지는 기절할 것 같았는데 쌤들은 여전히 평온했다.
진짜로 모든 검사가 끝났다. 의사쌤이 입을 뗐다. “음.. 깨끗한데요? 아무 이상이 없어서 해드릴 게 없습니다. 집에 가셔도 되고요.”
첨지는 응급실에 들어왔던 모습 그대로 씩씩하게 걸어서 퇴원했다. 23만 9천 원. 온갖 쑈를 다하고 낸 금액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숨을 쉬기 어렵고, 왼쪽 어깨에 통증이 있었단 말이다. 아무 이상없다는 게 명백히 다행이지만, 그래서 더 이상했다. 첨지는 의사쌤이 마지막에 하셨던 한 마디를 곱씹었다. “그런데 혹시.. 어디 불안하세요?” 이 말의 뜻을 아는 건 아니다. 몇 번이나 질문을 들었는데 이해할 순 없었다. 응급실에 왔는데 불안한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그러나 분명한 건 이 긴 연휴 남아있는 2차전 근교여행은 취소라는 것이다. 이제 정말 전심을 다해 쉬어야 할 때가 왔다. 그런데 그럼 집에서 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