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놀이를 시작하지.
케르베로스인건 항상 나쁘기만 할까. 반드시 숨겨야만 하는 걸까. 당신이 만약 케르베로스라면, 그리고 첨지처럼 케르베로스의 주변 인물이라면 언젠가 한 번쯤 묻게 될 질문이다. 어떤 케르베로스들은 매일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 첨지는 이 사건을 떠올린다. H 탄생 이후 첨지의 기억 속에서 가장 강렬했던 그 날을.
H는 뇌가 세 개라 생각이 많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온다. 그리고 그것이 24시간 이어진다. 양치를 하다가 이 세상이 비눗방울 속에 갇힌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고, 단어시험 시간에도 짝궁에게 점심시간에 반찬 나눠 먹자고 지금 당장 말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풀가동중인 뇌 세 개는 H를 쉽사리 잠들지 못하게, 상쾌하게 깨지 못하게 만든다. 이것은 케르베로스의 숙명이다. 뇌가 세 개인 것은 일견 축복이고, 때론 저주다. 슬프게도 수면에 있어서 이 문제는 저주에 가깝다. 그리하여 어린 날의 H는 주로 아이들이 잠드는 시간에 멀쩡히 깨어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어린 H는 그날도 밤 9시에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지금부터 뭐하고 놀까?” 3시간 내내 실컷 놀고 들어와서 샤워하며 물놀이도 30분 넘게 했던 날이었다. 심지어 저녁밥도 놀이터에서 먹었다. 함께 놀았던 친구들은 이미 꿈나라에 갔다는 카톡들이 첨지의 휴대폰에 쌓였다. 여기서 놀긴 뭘 더 놀아.. 이제 잘 시간인데.. 어린이보다 더 수면시간이 긴 첨지였다. 애미의 통잠을 방해하는 H가 미웠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 년째 밤만 되면 “이제 뭐하고 노냐”며 채근하는 H를 더 이상 참아줄 수 없었다. 머리에 총을 맞았는지 첨지가 불현듯 말했다. “그래, 놀이터 가자. 신발 신어!”
미쳤다. 드디어 미친게다. 첨지는 자기 입을 치고 싶었다. 말을 내뱉은 동시에 후회가 몰려왔다. 하지만 반대로 H는 오전 8시의 텐션으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정작 오전에는 짜증난 상태면서) 가방을 메고, 손전등을 들고, 운동화를 척척 신고 나가는 H의 뒷모습을 보고 첨지는 생각했다. ‘나는 미쳤지만, H는 어느 때보다 제정신이구나.’ 그래, 기왕 미친 것, 이 동네 최고의 미친 엄마가 되자. 첨지도 손전등을 들었다. 혹시 모르니 가방도 멨다. 그리고 씩씩하게 놀이터로 나섰다.
밤의 놀이터는 낮의 놀이터와 달랐다. 낮에는 온동네 아이들로 왁자지껄했다면, 밤에는 온동네 노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분위기가 흡사 재활센터와도 같았다. H는 막상 도착하자 자신의 생각과 달랐는지 이상하게 쭈뼛거렸다. 어쩔 수 없이 첨지가 총대를 맸다. “우리는 지금부터 놀이터 수사대다! 모두 손전등을 켜고 개미를 찾아라!” H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21시의 놀이터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낮엔 보이지 않던 벌레들이 있었고, 낮엔 볼 수 없었던 식물들이 있었다. 낮엔 입지 않았던 바람막이 잠바를 입었다. H에게는 그 모든 것이 새로웠고, 흥미로웠다. 아무도 H의 머리 세 개를 신경쓰는 이가 없어 자유마저 느꼈다. H는 그날 밤, 푹 잘 수 있었다. 매우 몹시 늦기는 했지만. 그렇게 한밤의 놀이터 루틴이 생겼다.
놀이터 루틴에 익숙해지자 이젠 나가면 안 되는 날씨에 나가고 싶었다. 첨지도 주저하지 않았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에는 우비와 가슴장화를 신고 나갔다. 한 손엔 양동이, 한 손엔 삽을 들고서. 그네타는 곳에 있는 작은 웅덩이는 바다가 되었고, 바다를 더 크게 만들기 위해 물길을 만들었다. 이제는 첨지가 더 신이 났다. 언제 이렇게 신나게 놀아본 적이 있었던가. 첨지는 자신의 생애 통틀어 처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H 덕분이었다.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첨지는 케로베로스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믿는다. 때론 나쁠 때도 있고, 숨겨야 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H에게서 케르베로스가 떠나간다면 첨지는 마음 속 깊이 슬플 것이다. 케르베로스가 아니라면 누군가는 평생 이런 기쁨을 모르고 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