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번아웃이 올까?

축하합니다. 당신의 집에도 케르베로스가 있군요!

by 최첨지

첨지네 H는 머리가 세 개 달린 케르베로스다. 당연한 말이지만 눈도 세 쌍, 코도 세 개, 입도 세 개다. 뇌도 세 개나 된다. 그렇다면 귀는? 놀랍게도 하나다. 한 쌍도 아니고, 하나. 이것은 그동안 첨지가 숨겨왔던 비밀이다. H가 케르베로스인 것은 대수가 아니지만, 귀가 하나밖에 없는 것은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다.


정신과에서는 그것을 ‘청각 주의력’이라고 불렀다. H의 검사 결과, 이 청각 주의력이 다른 능력에 비해 낮았다. 그것이 케르베로스로 정식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청각 주의력은 청력과 조금 다르다. 말 그대로 소리가 잘 안 들린다면 청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소리가 들리는데 개의치 않는다면 청각주의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H는 그래서 귀가 하나뿐인 케르베로스로 당당히 일어섰다.


“음식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 밥 얌전히 먹어야지!”라는 첨지의 외침에 동생 J는 손가락 대신 젓가락을 사용해서 콩나물을 집어 먹는다. 첨지가 얼마나 빡쳤는지 두 눈으로 스캔한 후 평소보다 밥을 더 속도 내어 먹기도 한다. 하지만 H는 다르다. 콩나물을 발견한 순간, 뇌 세 개 중 하나가 말한다. 오, 이거랑 김치랑 계란 프라이랑 밥에 비벼 먹으면 맛있겠는데? 다른 뇌 하나도 말한다. 그걸 손으로 비비자! 숟가락은 식상하잖아? 귀 하나가 첨지의 목소리를 듣기는 한다. 하지만 뇌들이 이미 너무 바쁘기에 뜻을 해석할 순 없다. 세 쌍의 눈도 너무 바쁘다. 콩나물을 손으로 비볐더니 촉감이 너무 부드러웠고, 그래서 신났지만, 은근히 잘 비벼지지 않아 동시에 짜증도 조금 났고, 그래서 가위를 들고 와서 콩나물을 자르기로 했다. 뇌 하나가 말한다. 가위를 들기엔 손이 더럽잖아! 다른 뇌가 답한다. 휴지가 안 보여! 그냥 옷에다 닦아! H는 너무 바빠서 첨지의 목소리에 날이 섰는지, 첨지의 얼굴이 붉어졌는지 알아챌 새가 없다.


다른 집과 다를 바가 없는 저녁 식사 시간이다. 하지만 조금 달랐다. 조금 더 더럽고, 조금 더 오래 걸리고, 조금 더... 아니, 훨씬 더 폭룡적이었다. H는 첨지가 냅다 소리를 질러야 그 행동을 멈출 수 있었다. 한창 재밌었는데 엄마는 왜 알지도 못하면서 화만 내는지 알 수 없었다. 변명을 해보지만, 첨지는 이미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리하여 H는 늘 억울했다. 첨지는 다른 집 엄마들과 매한가지로 아이들의 식사를 챙기고, 옷을 세탁하고, 집을 청소할 뿐인데 수시로 번아웃이 왔다.

H가 케르베로스라는 사실을 몰랐을 때 첨지는 그저 자신을 탓했다. 가정적이지 못한 엄마라서, 사회생활이 더 쉬운 엄마라서 이 모든 것들이 버겁구나. 인내심이 바닥이라, 아이를 낳아선 안 되는 사람이 아이를 낳아서, 이 고생을 하는구나. 아이는 매일 이해심 부족한 나 때문에 혼이 나는구나. 꽃 같은 아이의 머리 옆에 다른 두 개의 머리가 아른거리는 것을 애써 못 본 체하면서, 첨지는 본인만을 탓했다.


하지만 H는 뇌가 세 개였기에 첨지를 향한 생각도 역시 많이 했다. 방금 대차게 혼이 났지만, 뇌 세 개가 굉장한 속도로 돌아가기 때문에 금방 잊었다. ‘엄마는 이렇게 하면 좋아할 거야, 엄마는 저렇게 하면 좋아할 거야’ 늘 쉬지 않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더러운 손으로 가위를 집어 콩나물을 찹찹 잘라낸 뒤 밥을 야무지게 비벼 첨지의 입에 넣어주었다. “엄마! 맛있는 밥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엄마는 아직 밥을 못 먹었으니까 내가 이거 줄게요. 내가 주먹밥으로 진화시켰어요. 잘했죠? 먹고 있어요? 맛이 어때요? 대답해 줄 수 있어요? 엄마? 하나 더 만들어줄까요? 다 먹었어요?”


이렇게 넘치게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케르베로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케르베로스 때문에 번아웃에 시달리는 첨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케르베로스 덕분에 번아웃에서 탈출했다. 세계에서 가장 번아웃이 자주 오고, 또 가장 빨리 회복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첨지일 것이다. 그리하여 매번 다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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