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머리 빠져버린 첨지의 귀환
첨지는 본디 묵묵한 사람이었다. 첨지를 아는 이들은 첨지를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그들은 알까. 지금의 첨지는 감정 기복이 기가 막힌다는 것을. 욱하는 건 기본이고,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신체에도 기복이 왔다. 밑도 끝도 없이 축 늘어지고, 주구장창 잠만 자기도 한다. 서른 넘어 조금씩 시작된 이 지랄병은 불혹이 된 지금까지 쭉 이어지는 중이다. 어느 정도 상황이 심화되어 감당할 수 없겠다고 여길 때는, 첨지의 그 꼴이 가히 볼만하다. 뇌를 1/2로 쪼갠 후 절반은 어딘가에 버려놓고 일주일, 그 이상도 얼레벌레 산다.
첨지의 지랄병은 전문용어로 ‘번아웃’이라 칭한다. 주기적으로 번아웃이 오락가락한다는 걸 H가 유치원에 다닐 때 즈음 알았다. 유치원 선생님께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가 오던 암흑기 시절, 담임 선생님의 성함이 키즈노트 링크에 뜨면 죄인 된 마음으로 읊조렸다. ‘H가 또 친구랑 싸웠다고요. 제가 집에서 잘 타일러야 하는데, 자꾸 까먹네요. 제가 요즘 이상하게 정신이 너무 없습니다. 화가 계속 나네요. 죄송합니다.’ 뇌 용량이 모자라서 말이 거침없이 줄줄 새어 나왔다. 하지만 선생님은 첨지의 될대로 되라 식 답변에 당황하지 않으셨다. ‘번아웃인가 보네요. 어머님들 자주 그러셔요. 저희도 H를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천사같은 말씀을 듣고 첨지는 깨달았다. 이 지독한 지랄병이 번아웃이구나.
그렇게 첨지는 세상에서 번아웃이 가장 빠르게 오고, 가장 쉽게 사라지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그 기간이 오면 첨지는 티를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남들이 내 뇌가 반쪽짜리라는 사실을 알아선 안 돼. 그래서 평소보다 더 발랄해 보이려 한다거나, 과하게 행복을 연기했다. 마치 반전처럼 사람들은 이런 첨지를 더욱 좋아했다. ‘역시 일희일비하지 않는군. 어느 때고 믿고 무엇이든 맡길 수 있겠군.’ 그렇게 H도, J도, L도 첨지를 믿었다. 하지만 첨지의 속에서 비명이 비집고 나왔다. 아니라고, 지금 충분히 버겁다고, 아무것도 맡기지 말고 아는 척도 하지 말라고.
뚜렷한 사건은 없었다. 그럼에도 첨지는 깨달았다. 번아웃이란 건 죽어야 사라지는 지방 같은 거라는 걸. 살아생전 아무리 없애보려 발광을 해도 굳건히 옆구리에 붙어서 살아 숨 쉬다가, 사후 첨지의 몸이 활활 불타오를 때 소멸하는 지방 속에서 그제야 함께 바스라질 존재란 것을. 깨달음을 얻자 번뇌도 사라졌다. 내 다시는 번아웃을 떨쳐내려 애쓰지 않으리. 그냥 뇌가 절반 빠진 사람이 되는 길을 선택하리. 그럼 사람들은 ‘뭐 저런 미친 첨지를 다 봤나?’하며 지나갈 것이다. 자유를 얻은 채 미친 글이라도 써 제껴나갈 것이다. 앞으로는 번아웃과 함께, 뇌가 절반쯤 빠진 채로 미쳐 날뛰는 첨지가 되겠다.
오! H는 뇌가 세 개나 되는데, 첨지는 뇌가 절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H가 아니어도 번아웃은 왔을 것이고, J가 아니었어도 삶은 오락가락 했을 것이다. 대신 첨지는 심리상담을 신청했다. 어쩌면 다른 곳에서 첨지의 반쯤 빠진 뇌를 다시 되찾을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앞으로는 H와 J를 돌보며 첨지도 돌봐줄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 여정의 기록이다. 제대로 모시겠다. 첨지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