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이번에는 만들기였던 것에 대하여
조용한 새벽, 눈을 뜬 첨지는 휴대폰을 본다. 6시 48분.. 나이스. 조금 더 자볼까? 눈을 감자마자 쾅! 교통사고를 당한 것같은 날카로운 통증이 첨지를 덮친다. 이게 뭐지? 침대에서 떨어졌나? 골절? 전혀 아니다. 먼저 일어난 H가 침대 위에 누워있는 첨지를 향해 다이빙을 한 것이다. 분명 전치 8주 정도는 되는 강도였는데, 아쉽게도 멀쩡하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첨지에게 잔뜩 신난 목소리로 H가 말한다. “엄마!!! 나 아까 일어나서 엄마가 어제 프린트해준 따니네 만들기 하고 있었는데!!! 빨리 일어나서 나와봐!!!!!”
잠은 깨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일어날 순 없다. 첨지는 그렇다 쳐도 H는 앞으로 한 시간은 더 자야한다. 어젯밤도 따니네 만들기를 한다고 밤 11시를 거뜬히 넘겼다. 방금 첨지를 가격해서 깨운 장본인이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H를 온몸으로 껴안으며 중얼거린다. “공주야, 이리와봐. 엄마가 팔베개해줄게..” H는 처음에는 고분고분히 첨지의 곁에 누웠다. 걸려들었군. 첨지는 자장가를 부르며 궁디 토닥권법을 시전했다. 엄마가 섬그늘에.. 토닥.. 토닥..
“아니야!!!! 이리 나와보라니까???” 온몸으로 첨지의 손길을 거부하는 H. 실패다. 첨지는 아쉬움 반, 짜증 반 섞인 한숨을 내쉬며 H 뒤로 따라나선다. 머리 세 개 모두 다 몹시 광분한 케르베로스가 조막만한 종이 꾸러미를 첨지의 눈앞에 들이민다. 도대체 이게 무엇인지 첨지가 알 길은 없다. H는 이걸 만드느라 자신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몇 시간이나 공을 들였는지, 이건 어떻게 만들었고 저건 어떻게 만들었는지 한참을 떠들지만 그래서 이게 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저.. H야. 이게 어떨 때 쓰는 거야?” 조심스럽게 묻는 첨지. H가 케르베로스 상태일 때 섣불리 흐름을 깨면 어떤 사태가 발생하는지 알기에 그 어느 때보다 섬세하게 들어간 질문이다. 일단 내뱉은 후 H의 눈치를 본다. 흘깃. H의 눈빛이 매서워진다. 케르베로스의 여섯 개의 눈알이 빠르게 굴러간다. “엄마... 설마, 모르겠어? 이걸 몰라?! 아~ 엄마~!!” 역시, 화가 단단히 났다. 그런데 첨지도 화가 난다. 잠자는 첨지에게 헥토파스칼 킥을 먼저 먹인 게 누구였던가. 바로 H다. 그래 놓고서 이깟 종이 쪼가리가 뭔지 못 알아본다고 화를 내? 첨지는 내면에서 분노의 스파크가 튀는 걸 느낀다.
“아니, 야. 네가 설명을 잘해줬어야지. 이게 뭔지부터 알려주고 나서, 그다음에 세세한 부분을 알려줘야 하는 거거든, 원래? 말을 할 때는 핵심을 먼저 정확히 짚어야 듣는 사람도 헷갈리지 않을 거 아니야....!!!” 첨지의 목소리도 그라데이션으로 커진다. 아뿔싸. 이 정도로 크게 소리지르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이미 늦었다. 다시 한 번 H를 슬쩍 본다. H 역시 눈빛이 흔들린다. 아침부터 파국인가?
바로 그때, J가 어디선가 튀어나온다. “언니! 어제 따니네 만들기 어디까지 했어? 사자보이즈 굿즈 다 만들었어? 나도 보여줘!!!!” H의 여섯 개의 눈길이 일제히 J를 향한다. “어..? 야! 내가 만든 거 말없이 만지지 마!! 언니가 다 설명해줄 테니까, 그 손 놓고! 어?!” 그렇게 H의 세 개의 뇌에서 첨지의 샤우팅이 잊혀졌다. 마하의 속도로. 첨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J야, 고맙다. 네 그 깨발랄함 덕에 엄마가 살았다.
이미 H는 엄마가 중요하지 않다. J에게서 본인이 만든 종이 꾸러미를 지키는 것에 총력을 다한다. 그 사이 첨지는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H와 J가 옥신각신 다투어주는 게 고맙긴 처음이다. 첨지는 시계를 본다. 7시 55분.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그런데... “H!! J!!!너네 아직 씻지도 않았지!!!! 지각한다! 빨리 그거 내려놓고 화장실로 가지 못해??!!!!”
이러쿵저러쿵 옷을 입으며 아침 식사를 하며 머리를 묶고 가방을 멘다. 이 모든 행동을 동시에 이루어낸 세 사람은 어느덧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서 있다. 첨지가 무겁게 입을 뗀다. “저.. H야. 아까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너무 정신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그랬어.” H도 말한다. “아니야, 엄마. 다음엔 내가 조금 더 조리있게 말해볼게.” 그래, 이거면 되었다. 오늘 아침은 이걸로 만족한다. 하지만 따니네 만들기는 주말에만 하도록 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