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 그쪽도 제가 박복한 첨지처럼 보이세요?

케르베로스 엄마임을 밝혔을 때의 반응 모음집

by 최첨지

지옥문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신화 속 개, 케르베로스. 늘 주변을 경계하느라 머리들이 번갈아 가며 잠을 자고, 밥을 먹는다. 잔뜩 흥분한 채로 100% 잠들지도 못하고, 100% 쉬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만약, 그 케르베로스가 사람이라면? 자주 케르베로스로 변신하는 H를 두고 하는 말이다. 첨지는 H가 케르베로스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 순간, 엄마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그중 가장 먼저 시행했던 일은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딱히 도움이 되는 건 아니고 그저 들키기 싫었다. 하지만 무인도로 이사 갈 수도 없고, 삶은 살아야 했고, 필연적으로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가끔은 정말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커밍아웃(?)도 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다정했지만, 굉장하기도 했다. 여러 의미로.


“아니, 머리가 세 개나 있다고? 어디에? 난 안 보이는데!” 대부분은 이런 반응이다. “첨지,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의사가 말한 거 맞아?”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럴 때 첨지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뒷걸음친다. 양가감정이 쓰나미처럼 몰려드는 것을 느끼면서. 우리 H가 정상인처럼 보인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동시에 너희는 알지도 못하면서 까불지 말라는 억하심정. H가 왜 케르베로스인지 이유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해 주어야 할까, 나도 모르겠노라 말하며 진단 내린 우리 의사쌤을 욕해야 할까. 고맙긴 한데 너희가 뭘 알아. 첨지는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 봐주시니 안심이 되네요.”


“어머, 머리가 세 개밖에 없어? 나는 다섯 개야!” 큰 소리로 외치는 이들도 있다. 그 후엔 곧바로 자신이 얼마나 굉장한 케르베로스인지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그 흐름은 나도 이러저러했지만, 지금은 잘 산다는 식의 해피엔딩으로 이어진다. 혹은 우리 집 H보다 머리가 더 많았던 메두사급의 아이들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 전부 다 의사가 됐다더라. 지금 유튜브에서 핫한 그 연예인도 케르베로스였다던데, 지금 돈을 쓸어모은다더라. H도 그럴 거다! 호언장담해주는 사람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애는 며칠 전에도 유리창을 깼거든요. 커서 깽값 물어줄 일만 없으면 좋으련만. 호호. 첨지는 속으로 생각만 한다.


캐묻는 이들도 당연히 있다. “진짜? 왜 그렇게 된 거야? 머리들이 그냥 갑자기 솟아났어? 몇 번째 머리부터 생긴 거야? 머리 묶을 때는 뭐부터 묶어? 머리카락도 많이 빠져?” 그들은 케르베로스가 무엇인 줄만 궁금한 게 아니다. 케르베로스의 기원, 케르베로스의 향후 계획 및 거취까지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한다. 단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첨지는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기자 회견에 빙의하여 최대한 두루뭉술, 이것이 과연 대답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최대한 길게 말을 끌어 그의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애를 쓴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관심이 다른 곳을 향했을 때, 홀로 조용히 한숨 쉬며 생각한다. ‘당분간 이 모임에는 나오지 말자.’


가장 난처한 반응은 마음이 여린 이들에게서 나온다. “너 힘들어서 어쩌니..”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 첨지는 자신이 울린 건 아닌데 괜히 미안해진다. 아.. 그런데요,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예술가 중에 케르베로스가 많대요. 우리 H도 그렇잖아요. 여섯 개의 눈알로 책을 읽고, 세 개의 입으로 노래를 부르잖아요. 보고 있으면 얼마나 재밌는데요.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케르베로스도 즐겁게 살 수 있대요. 큰 소리로 케르베로스를 칭찬하던 사람들 앞에선 깽값이 어쩌니 속으로 뇌까리던 첨지가, 여기서는 그들에게 들었던 사례를 고스란히 읊으며 이건 행운이라 말한다.


이 모든 리액션들, 다소 투박하거나 너무 과한 말들. 그 속에는 사랑과 염려가 있음을 첨지는 안다. 다만 그들의 반응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을 뿐. 결국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H가 케르베로스로 언제 변신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첨지 자신이 삐걱거릴까 걱정되서 사람을 피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H와 둘째 J, 남편 L과 단출히 지내는 생활이 안전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영원히 지내길 바랐다.


“엄마! 그런데 나, 왜 친구들한테 사실 케르베로스라고 말하면 안 되는 거야? 친구들이 엄청 놀랄 텐데! 알약 잘 먹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은데!” H가 묻던 날, 첨지는 스스로 친 결계에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절대 머리 세 개를 들켜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 지 1년쯤 지났을 때였다. 첨지는 숨고 싶었는데, H는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첨지는 숨을 들이마신다. 이제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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