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부르는 3학년 3반 공기 대회

곤잘레스보다 못한다는 게 말이 돼?

by 최첨지

10살 H의 학교생활에 작은 이벤트가 생겼다. 매주 수요일마다 공기놀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선생님이 각 학생에게 조막만 한 공기세트를 주시며 가정에서의 연습을 독려하셨다. H는 갑자기 모범생이 되어 선생님의 말씀을 따랐다. 한술 더 떠 저녁마다 공부 시간을 줄여가며 공기 스킬 연마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아니, 너 공부는 공부대로 해야지 그게 무슨 짓이야...” 첨지는 성난 황소처럼 잔소리를 시작하려다 흠칫 멈췄다. 케르베로스로 변한 H의 여섯 개 눈알이 희번덕거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첨지는 불길한 예감을 누르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래, 공기놀이일 뿐이야. 어린이란 이렇게 노는 게 정상이야. 소근육 발달에 도움이 되겠지. 남들은 손재주 키우겠답시고 여기저기 학원도 보내는데 돈 굳고 좋지, 뭐. 로블록스 게임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어느 정도 하다 보면 평소처럼 금방 질릴 거야. 그저 지나가는 바람일 거야. 첨지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고 또 믿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3학년 3반 수요 공기 대회] 개최 소식. 선생님은 공기놀이의 대중화에 박차를 가하셨고, H는 더 집착했다. 공깃돌을 몽땅 해체한 뒤 본인에게 알맞은 무게로 재조정했고, 단순히 공부 시간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아예 공부를 접고 공기놀이에 매진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애써 외면하는 첨지를 소환하여 공기놀이 과외선생이 되어달라 간청했다. 공깃돌을 하나씩 잡으면 끝인 1단은 자신이 있는데, 둘 둘씩 짝을 쥐어 잡아야 하는 2단부터는 도저히 요령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원인은 간단했다. 케르베로스로 변신한 H는 머리만 세 개일 뿐, 손은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두 개였기에 일어나는 오류였다. 뇌 셋은 서로 잔뜩 긴장했고, 눈알 여섯은 팽팽 돌아가는데 두 개의 손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공깃돌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고, 그럴수록 케르베로스는 더욱 흥분했다. 밤이 깊어 갈수록 공기에 대한 뒤틀린 욕망은 증폭되어 갔다. 공깃돌은 사방으로 튀었고, 다른 가족들은 숨죽여 지켜봤다. 종국에는 포효하는 머리들만 남아 자기들끼리 물어뜯기 시작했다. “아, 씨! 또 실패했잖아. 뭐가 문제야!”로 시작해서 “나는 망했어.. 멍청하고 최악이야.”에까지 이르렀을 때 첨지는 올 것이 왔음을 느꼈다.


케르베로스에 잡아먹힌 H, 첨지가 개입할 순간이었다. 정신이 나가버린 H를 큰 소리로 불러 중지시켰다. “H! 네가 지금 자꾸 실패하는 건 실력이 형편없어서가 아니라 밤이기 때문이야. 너무 피곤해서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어.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하루 종일 밥 먹고 공기놀이만 하자. 아무 데도 가지 말자. 엄마도 약속 다 취소할게. 알았지? 그러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이제 씻고 자. 제발!”


아, 케르베로스는 듣지 못했다. 미친 듯 울부짖는 삼두견의 어깨를 잡고, 여섯 개의 눈알 하나하나와 일일이 눈을 맞추며, 첨지는 같은 문장을 다시 한번 말했다. 아까보다 더 천천히, 그러나 힘을 주어 또박또박. 이번에는 다행히 알아들었는지 안광이 조금 돌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서 쐐기를 박아야 했다. “엄마가 진짜 약속할게. 내일은 엽떡도 시켜줄게.” 서서히 케르베로스는 다시 H로 돌아왔다. 휴, 예상보다 빨리 정상화가 되었다. 운이 좋았다.


토요일 아침, 평소라면 H에게 정신과 약을 절반 용량만 먹였을 테였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정량을 끝까지 다 먹인 후 확인까지 했다. 그리고 마지막 사투가 시작됐다. 약효가 바짝 오른 H는 전날 밤과는 사뭇 달랐다. 머리가 세 개로 자라나지도 않았고, 당연히 쉽사리 흥분하지도 않았다. 하나의 뇌와 두 개의 손은 제대로 된 파트너쉽을 발휘했다. 2단 클리어, 3단 클리어, 4단까지 무리 없이 진행됐다. 순발력이 필요한 5단에서는 살짝 애를 먹었다. 그렇다고 크게 좌절하지는 않았다. 끝까지 침착하게 연습할 수 있었다. 약효가 공기놀이에까지 영향을 미치다니. 첨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현대의학 만세. 이번에 병원가면 꼭 의사쌤께 말씀드리리라.


결전의 날, [3학년 3반 수요 공기대회]의 승자는 태권도 유단자인 남자 학생이었다. H는 순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놀라운 것은 해외에서 전학을 온 곤잘레스가 3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이었다. 남편 L은 H의 기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곤잘레스의 성취를 축하했다. “와~ 그 친구는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공기를 어떻게 그렇게 잘한 거야? 3등이라고? 진짜 멋진데!” 아, 왜 남편은 딸이 케르베로스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 걸까. 그렇게 마음에 상처를 입은 H는 다시 변신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첨지가 제어할 수 없었다. ‘이제 공기놀이는 다신 안 하겠구나.’ 첨지는 여느 때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첨지의 예상이 빗나갔다. H는 매일매일 공기놀이를 지속해 나갔다. 이번에는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재미를 느낀 것이었다. 연속으로 실패해도 개의치 않았다. 다만 말할 뿐이었다. “엄마, 공기가 너무 큰 것 같아. 내일 다이소 가서 작은 공깃돌로 새로 사줘.” 첨지는 H가 무엇인가를 꾸준히 하는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훌쩍 큰 모습이 대견했다. 하지만 그 모습에 깜빡 넘어갈 뻔했다. 새 공깃돌 쇼핑은 안 될 일이지. 장비를 탓하는 애송이 H 같으니. 그렇게 첨지네의 하루가 또 넘어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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