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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씨네 Mar 12. 2021

<포제서>, 브랜든 크로넨버그 (2020)

때로는 사소한 생각에 모든 걸 빼앗긴다



브랜든 크로넨버그 감독은 장편 데뷔작 <항생제>(2012)를 통해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황금 카메라' 후보에 오르고 시체스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거머쥐며 단번에 그의 재능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아버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플라이>, <폭력의 역사>, <엑시스텐즈> 등 특유의 SF 공포 스릴러로 입지를 다지며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감독.


브랜든 크로넨버그는 <항생제> 이후 <플리즈 스피크 컨티뉴즐리 앤드 디스크라이브 유어 익스페리언시즈 애즈 데이 컴 투 유>(2019)라는 10분짜리 단편 영화를 만들고 이 단편의 이야기를 장편으로 확장시킨 <포제서>(2020)를 세상에 선보였다. 영화 <포제서> 역시 그의 아버지 영화의 장르를 따라 SF 공포 스릴러로 분류된다.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사건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사건, 홀리 버그만을 호스트로 삼아 변호사 엘리오 마사를 죽이는 사건. 두 번째 사건, 주스루의 부녀를 죽이고자 콜린 테이트의 몸속에 들어가는 사건. 세 번째 사건, 콜린 테이트가 타샤 보스의 집으로 찾아가는 사건.


영화는 왜 마지막 사건에서 파국을 맞이하는 가?


우선 포제서의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포제서가 호스트의 의식을 장악하고 나면 호스트의 의식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잠재의식으로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포제서가 임무를 마치고 자살해야 하는 상황에서 호스트의 잠재되어 있던 의식이 자신의 자살 행위에 저항하여 포제서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또한 의식을 장악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그 몸을 움직이는 것뿐 아니라 장악당한 의식의 기억을 모두 흡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포제서는 임무 수행 전에 호스트를 감시하고 도청하여 그의 말투와 행동 습관을 간단히 연습하지만 호스트의 모든 인간관계나 지난 일들을 그 자리에서 바로 습득할 수 없다. 그런데 이후 회사에서 에디와 대화하는 것이나 리타의 집에 찾아가는 것을 보면 포제서가 호스트의 기억을 더듬어 모든 감정과 일어났던 일들을 습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다시 정리하면, 포제서가 호스트의 몸을 도용한다는 의미는 호스트의 의식을 장악한다는 것이며, 호스트의 의식을 장악하면 호스트의 의식은 잠재되어 행동에 영향을 조금씩 미칠 수 있고, 포제서는 호스트의 모든 기억을 습득하게 된다.



첫 번째 사건에서 두 번째 사건으로 전환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 사이에는 기억력 테스트가 있고 타샤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남편과 아들을 만나는 일이 있다. 그런데 두 번째 사건에서 세 번째 사건으로의 전환은 불분명하다. 콜린이 존 파스와 약혼자 에이바를 죽이고 자살하지 못하여 리타의 집으로 갔을 때? 아니면 콜린이 타샤의 집으로 가 남편을 만났을 때? 두 번째 사건과 세 번째 사건의 차이점은 누가 의식을 장악하는 가에 있다. 당연히 두 번째 사건에서 의식을 장악한 것은 포제서인 타샤다. 타샤가 호스트인 콜린의 의식을 장악했다. 그런데 세 번째 사건에서 콜린은 의식을 되찾아 그가 직접 타샤의 남편을 만나러 간다. 그러니까 이때는 콜린이 타샤의 의식을 장악한 것이다. 


이 전환은 언제 이루어졌는가? 리타의 집에서 콜린이 타샤의 얼굴을 뒤집어썼을 때 이루어졌다. 이제껏 타샤가 콜린의 몸을 차지하고 그의 의식을 장악하여, 콜린의 얼굴을 뒤집어쓴 타샤였다면, 이 장면에서는 정확히 반대로 콜린이 타샤의 얼굴을 뒤집어쓴 것이다. 타샤의 의식은 잠재의식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장면 바로 전에는 타샤의 상상 장면에서 타샤가 누워있는 방에 콜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면, 이후 타샤의 집에서는 콜린의 상상 속에 타샤가 등장하게 된다. 



이때 타샤의 얼굴을 뒤집어쓴 콜린은 변호사 엘리오를 죽이는 장면 속에, 타샤의 집 앞에 서있는 장면 속에, 타샤가 남편과 관계를 가지는 장면 속에 등장한다. 이 장면들의 의미는 콜린이 타샤의 의식을 장악하면서 타샤의 기억까지 흡수한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콜린은 타샤의 집과 남편과 아들을 알게 되고 그의 집에 찾아가는 것이다.


콜린은 타샤의 집에 찾아가 남편을 협박하며 타샤를 찾는다.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야겠다며 당장 나타나지 않으면 남편 마이클을 쏴버리겠다고. 그때 콜린의 상상 속에서 타샤가 등장한다. 타샤는 콜린에게 마이클을 죽이라며 "당신이 늘 원했던 거잖아"라고 말한다.


당신이 늘 원했던 거잖아

콜린이 왜 마이클을 늘 죽이고 싶어 했다는 걸까? 콜린은 타샤에게 악감정이 있을지언정 마이클에게는 그렇지 않다. 지금 마이클을 죽이려 하는 이유도 마이클에게 이유가 있지 않고 타샤에게 이유가 있다. 타샤의 삶도 망가트리겠다는 일종의 복수이자 협박의 의미로. 타샤의 이 대사는 콜린에게 하는 말이자 타샤 본인에게 하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1. 콜린은 늘, 사랑하는 연인을 죽이고 싶었다.

콜린은 존 파스보다 에이바를 더 죽이고 싶었다.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고 거들먹거리며 벌레 보듯 무시하는 존 파스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물론 존 파스도 죽이고 싶었겠지. 그런데 콜린은 에이바를 향한 살해 욕구가 더 컸다. 에이바와 콜린은 서로를 사랑해서 약혼을 하고 결혼을 앞두고 있는 관계이지만 에이바는 콜린을 무시하고 있었다. 아버지 존 파스처럼 무시하는 게 아닌, 더 교묘한 방식으로. 에이바는 아버지의 회사에서 노예처럼 부려지는 콜린의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고치거나 개선할 의지가 없다. 그저 "아버지는 내 애인 뺑이돌리기가 취미야"라고 말할 뿐. 에이바 일을 도와주겠다는 콜린의 말에도 '당신 능력 밖의 일이야'라면서 콜린의 능력을 낮잡아 본다. 너무나 사랑하고 나에게는 과분한 상대이지만 내밀하게 자신을 늘 무시하는 연인. 이런 그녀를 죽이고 싶다는 그의 무의식 발휘되었기 때문에 포제서의 살해 임무에서도 존 파스는 죽지 않고 에이바만 죽었다. 타샤는 그의 의식을 장악한 적이 있기에 이러한 그의 본심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대사는 '사랑하는 연인을 죽이고 싶어 하는 건 당신의 오랜 소망이잖아?'의 의미가 된다.


2. 타샤는 늘 마이클을 죽이고 싶었다.

타샤는 살해 욕구가 굉장히 강한 인물로, 포제서라는 직업에 딱 맞는 본능을 지녔다. 그렇기에 거더도 타샤에게서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후계자로 삼고 싶어 한다.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고 그만한 능력도 지닌 타샤에게 직업적 열망에 대한 방해꾼은 가족이 된다. 우선, 포제서에게는 가족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타샤는 첫 번째 임무를 수행하기 전 거더에게 마이클과 별거 중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첫 기억력 테스트 이후 마이클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타샤의 말에 거더는 이 직업은 가족에게 위험하다는 말을 한다. 두 번째는 타샤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말하는 마이클 때문이다. 마이클은 타샤가 일 때문에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게 마음에 들지 않고, 계속해서 일을 그만두라고 말한다.

이렇듯 타샤에게 일과 남편은 공존할 수 없게 된다.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할 때 타샤는 일을 택할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본심은 남편 목에 칼을 꽂는 상상에서 드러난다. 첫 번째 사건에서 엘리오의 목에 칼을 꽂고 무자비하게 살해한 것처럼 그녀는 남편 마이클을 죽이고 싶어 한다. 남편과 관계를 가질 때에도 그녀를 흥분시키는 것은 성적 욕구가 아닌 살해 욕구다.


때로는 사소한 생각에 모든 걸 빼앗긴다


거더는 포제서 타샤에게 두 번째 임무를 맡기기 전에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이 버리고 온 지난 삶에 대한 애착이 아직 뇌에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 때문에 통제력을 잃을 수 있어요.

'지난 삶에 대한 애착'이란 무엇일까?

타샤는 죄책감을 지닌 인물이다. 첫 기억력 테스트에서 붉은 나비에 대해 어린 시절 나비를 죽인 것에 대해 여전히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러한 죄책감은 당연히 포제서란 직업에 어울리지 않으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남편과 아들이라는 가족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곧 일을 망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타샤에게서 분명한 재능을 확인한 거더는 그녀를 후계자로 삼고 싶어 하지만 이러한 '사소한 생각', 즉 죄책감이 그녀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에 거더는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녀의 죄책감을 없애기 위한 계획. 그 계획의 중심에는 타샤의 가족을 파괴하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거더는 아들의 몸으로 들어가 그녀의 가족 비극을 만들어낸다. 가족 비극을 맞이한 타샤는 이후 기억력 테스트에서 붉은 나비를 보고도 죄책감이란 단어를 뱉지 않는다. 거더의 계획이 성공한 것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작품이지만, 나는 이렇게 이해해보기로 했다. 혹자는 브랜든 크로넨버그가 그의 아버지를 뒤이어 SF 스릴러 장르에 한 획을 그을 거장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다음 작품을 눈여겨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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