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부지런하지도 않지만...
요즘은 아침을 늦게 시작한다. 춥고 빨리 어두워지는 겨울은 조용하고 느긋한 시간을 선물해 준다. 해가 짧은 낮 시간을 애써 붙잡으려 발버둥 치지 않는다. 최소한의 의무만 이행하는 노동이 게으름의 시작이다. 추위가 절정을 이루지만 게으름 만으로도 해야 할 일들은 있다.
여유를 부리며 농장으로 향한다. 느긋함을 비웃듯 한 무리 새들이 휘리릭 지나간다. 빠르게 날아야 될 이유를 알기에 애써 웃으며 바라본다. 파란 겨울 하늘을 나는 새들의 마음은 가볍지 않다. 그들에게 한겨울 황량하고 메마른 대지는 사막과 다름없다. 새들의 분주함은 궁핍함을 모면하려는 고육지책이다. 바삐 날지 않으면 끼니를 때우지 못한다. 배불리 먹지 않으면 추운 겨울밤을 지새우기 험난하다. 그들이 가진 본능은 위기와 위험 앞에 주저함이 없다. 겨우내 부지런해야 새봄을 맞이할 수 있는 새들의 운명이 애처롭다. 그래서인지 겨울새들의 울음소리는 노동요다. 게으르면 안 된다고 서로를 독려하며 목청껏 노래한다. 새들의 시간은 그렇게 찬 공기 속에서 분주히 흘러간다.
새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게으름을 피우려 한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추가로 더해지는 일이 거의 없는 날들이다. 여백이 드러난 일정표가 낯설다. 여유가 있어도 게으름의 시간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애써 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 굳이 하려고 하지 말아야 마주할 수 있다. 내려놓고 비워야 하는 시간들을 거뜬히 견뎌낼 용기와 배짱이 있어야 내게로 찾아온다. 어색하고 느린 선택과 판단을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가질 수 있다. 그래야 게으름을 통해 마주할 쉼과 여유, 충전의 시간이 찾아온다.
게으른 시간을 이용해 농장 관리실을 정리했다. 15년간 묵어 있고 숨어 있던 물건들과 흔적들을 들어냈다.
먼지를 털고 껍데기만 남아 있어도 치우지 못했던 미련들을 쓸어 버렸다. 여유가 생긴 한쪽에 작은 목공실을 만들었다. 널브러진 공구들과 흩어지고 숨어 있던 나무들을 보기 좋게 정리했다. 새집도 만들고 작은 소품들과 그네의자까지 만들 생각에 설렌다. 공간을 비우고 나니 마음이 채워졌다. 마음이 채워지니 오래도록 머물고 싶고 더 자주 가게 된다. 시간이 꽤 걸렸지만 게으름이 준 올겨울 최고의 선물이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부지런히 일하고 쉼 없이 움직이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다. 상상을 뛰어 넘는 문명의 이기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에 더욱 그렇다. 적당히 일하고 쉬어가며 조금씩 노력하는 사람도 자신의 역할과 주어진 몫을 다 해내며 충분히 만족할 만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 지식이 발달할수록 지혜가 필요한 세상이다. 세상의 변화에 맹목적으로 따라가기보다는 내 삶의 중심과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한 노력하는 일이 우선이다. 뒤떨어진다는 평가는 눈만 뜨면 달라진 세상에서는 의미 없는 기준이다. 뒤로 갈수록 새로운 일과 그리운 시간, 머물고 싶은 공간이 가치 있게 다가오며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게으름이 오히려 생각과 방향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동기 부여의 원동력이 된다. 물론 경제적으로 더디고 팍팍한 날들이 오래 머무를 수도 있겠지만 감내하며 갈 수밖에. 게으르지만 계속 가다 보면 돈이란 자본주의의 절대 가치가 지쳐서 손 내밀고 다가올지도 모른다. 게을러도 멈추거나 주저 않지는 않기에.
부지런하지도 않으면서 더 게을러지고 싶다는 생각에 아직 눈치가 보인다. 세상에 쉬운 건 없다.
아내가 말했다. "당신은 성실한 게으름뱅이야." 나는 아내 말을 잘 듣는다.
p.s
게을러지니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괜찮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