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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Jan 10. 2024

고양이는 원래 이런 건가?

늘 함께 하는 존재의 가치

아침마다 마중을 나온다. 혼자 농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마냥 가벼운 이유다. 밤새 기다렸다는 듯, 잰걸음으로 다가온다. 요즘은 더 멀리까지 나와있다. 반갑다며 다가와 벌러덩 눕는다. 배를 가볍게 만져주면 다시 일어나 종종종 앞서간다. 몇 걸음 가서 다시 벌러덩, 서 너번을 반복해야 농장 관리실 앞에 다다른다.

가다 벌러덩... 또 가다 벌러덩


애지중지 키우던 '망치'라는 수컷 냥이가 있었다.

붙임성 있고 자는 모습이 일품이었다. 정을 듬뿍 줬지만 바람기를 주체할 수 없었다. 집을 나간 횟수가 빈번하더니 영영 돌아오질 않았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망치가 야속했다. 어디서든 비슷하게 생긴 녀석만 봐도 가슴이 콩닥, 혹시나 해서 '망치야!' 부르며 다가가길 여러 번.

'망치'의 빈자리를 채워 줄 냥이가 필요했다.

가출한 망치, 그리고 자는 모습

새로운 냥이를 만나기 위해 여기저기 부탁을 했다. 이민을 가면서 냥이를 맡아 줄 주인을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을'이는 그렇게 우리 곁으로 왔다. 벌써 4년 전이다.

가을이는 부르면 대답한다. '겨울'이라 부르면 입을 꾹 다물고 멀뚱멀뚱 쳐다본다. 물론 아무나 부른다고 대답하지 않는다. 그런 가을이를 다른 사람들은 얄미워한다. 자존심이 센 듯 하지만 모든 사람을 좋아한다. 개냥이라고 불린다.

  

농장에서 일할 때 가을이는 도우미가 된다. 꼬꼬들의 모이를 주러 가면 따라온다. 모이 주는 모습을 지켜보고 밖으로 나온 닭이 있으면 들어가라 소리 낸다. 움직일 때마다 함께 한다. 다음 이동 경로를 알아서 먼저 간다. 살짝 멈춰 서면 뒤돌아 보면서 기다린다. 숨어서 보이지 않으면 찾으러 온다.

멈추면 돌아 보고 기다린다. 보이지 않으면 찾으러 온다

밥을 달라고 할 때는 모이통 앞에서 가만히 앉아 기다린다. 가여운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는 모습에 미소가 머금어진다. "가을이 밥 달라고?" 하면 "야옹"이라고 답한다. 밥을 주면 먹다가 내가 보이지 않으면 바로 찾아온다. 일하는 주변을 맴돌며 끝나길 기다렸다 모이통 있는 곳으로 오면 다시 먹기 시작한다.

밥 주세요

가을이는 닭을 해코지하지 않는다. 작은 병아리도 해치지 않는다. 주인이 돌본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밖으로 나온 닭을 우리 안으로 몰아넣을 때도 한쪽 방향을 담당하며 도와준다.


앉아서 일을 할 때는 품속으로 파고든다. 그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좋다.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아늑한 곳에서 늘어지게 자는 모습은 세상 무엇보다 편안하다. 반복되는 작업을 할 땐 끝날 때까지 옆에서 자리를 지켜 준다. 힘든 일을 힘들어하지 않게 힘을 준다. 사랑받을 줄 아는 능력이 탁월하다.


가을이는 쥐를 잘 잡는다. 자신의 전리품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둔다. 칭찬을 받고 싶은 행위가 자연스럽다. 난처한 건 새도 잘 잡는다는 것이다. 가을이에게 잡힌 새들은 억울함을 알까? 가을이의 사냥 실력 보다 새들의 부주의와 방심이 안타깝다.


농부는 고독한 직업이다. 하루 종일 말 못 하는 대상과 마주한다. 반복되는 일과를 지루하지 않게 보내는 게 중요하다. 나름의 루틴과 요령이 필요하다.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동물과 식물, 도구와 피조물 모두가 나름의 의미가 된다. 바라보고 만져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안식이 된다. 모든 것, 모든 곳이 반려가 될 수 있다. 어느 곳, 어느 때라도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은 삶의 의지와 살아갈 배경이 된다.


가을이가 있어 농장 가는 길이 가볍다. 일하면서 말벗이 되는 가을이는 농장을 즐거운 일터로 만들어 준다. 도우미가 되는 가을이는 힘들고 싫증 나는 일도 가뿐하게 만든다.


'안녕, 가을아!' 내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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