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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Feb 02. 2024

친구가 멀리 가버렸다

먼저 간 친구가 그립다

고등학교 친구들 단체방에 부고가 올라온다. 무거운 마음에 열어 본다.

세월의 흔적이 덧없이 쌓이다 보니 자녀들 결혼과 부모님들 별세를 알리는 소식이 빈번하다. 축복으로 떠나가고 슬픔으로 멀어지는 이어짐이 삶의 굴곡이다. 들려오는 소식들이 모두 기쁘고 반가운 일들이면 좋으련만. 삶은 희로애락의 굽이 굽이를 건너는 과정임을 알기에 한낱 간절한 소망일 뿐이다.

모든 애경사에 마음과 표현으로 공감하고 축하하며 위로하고 슬퍼한다.


오늘은 동창인 친구의 부음을 들었다. 고향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성실하게 열심히 살던 친구인데 폐암 투병 중 먼 길을 떠났다고 한다. 친구의 명복을 빌며 가족분들께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불현듯 오래전 떠난 친구 얼굴이 떠오른다.

죽마고우였다. 초, 중, 고를 같이 다녔다. 어머니들도 초등학교 동창이셨다.  둘 다 장남이었다. 공부도 잘했다. 무엇보다 선하고 맑은 친구였다. 어떤 경우에도 큰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그 친구는 광주로, 나는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자주 볼 수 없었다.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방학 때는 함께 만나 못다 한 이야기 꽃을 피웠다.

군대에 있을 때도 서로의 안부를 전하며 의지했다. 여린 친구가 특수부대에 근무했다. 제대 후 복학하기 전까지 고향에서 함께 도서관을 다녔다. 점심도 같이 먹고 당구도 치고 가끔 술 한잔도 나눴다. 그 친구는 싫은 소리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화내는 표정도 보지 못했다. 그 친구는 조용하면서 강하고 유연하면서 속이 깊었다.


복학을 했다. 청춘의 봄, 모처럼의 대학생활을 바쁘게 보내고 있을 즈음, 친구의 편지를 받았다. 여러 생각들과 일들로 많이 힘들고 지쳤다는 내용이었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힘내고 좋은 생각 많이 하면서 건강하게 잘 지내다 방학 때 만나자고 했다. 여름 방학이 되어 고향에 내려갔지만 그 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내진 못했다.

나는 헛바람이 들어 방학 동안 암자에 들어가 지냈다. 친구가 조그만 오토바이를 타고 먼 길을 찾아왔다. 그냥 보고 싶어 왔다고 했다. 반가움에 말을 잃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가는 친구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해 10월 초 어느 날 밤, 이상한 기운이 감돌며 자취방의 형광등 불이 갑자기 꺼져 버렸다. 불길한 마음에 공중전화로 달려가 고향집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받으셨다. 평소와 달리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놀라지 말라며 말씀하셨다.

"ㅇㅇ이가 멀리 가버렸다". 난 그대로 주저 않았다. 밤 기차를 탔다. 좌석이 없었다. 소주를 사들고 통로에 주저앉아 계속 들이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밤, 육중한 기차는 느리고 느렸다.


장례식장에 들어서기가 두려웠다.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친구의 죽음. 한참을 서성이다 들어갔다. 환하게 웃는 영정 속 친구의 얼굴이 해맑아 멈칫했다. 동생들을 위로하고 어머니를 붙들고 함께 엉엉 울었다.

다음날 입관 하기 전 마지막으로 친구를 만났다. 노란 삼베옷에 하얀 버선을 신고 반듯하게 누워있는 친구의 모습은 평온했다.

친구의 사촌형과 죽기 바로 전까지 머물렀던 친구의 방에 들렀다. 책상에는 미쳐 다쓰지 못한 취업지원서가 놓여 있었다.

친구는 연휴를 맞아 집에 내려왔다. 잠시 아버지 일을 도와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마을 앞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생각할수록 야속하고 허망했다.

화로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오열했다. 다른 친구들이 나를 부축했다. 한 줌 재가 된 친구를 호숫가 야트막한 곳에 뿌려 주었다. 친구는 가벼운 바람에도 덧없이 흩날렸다.


힘들어도 꿋꿋하게 이겨내며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던 친구. 어느 누구도 마음 상하지 않게 하고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았던 친구. 요란하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도 강인함을 보여준 친구.  늘 웃음 짓던 친구. 한결같은 우정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친구.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하리라 믿었던 친구. 그 친구에게 닥친 불행! 연이은 친구 가족의 비극!

난 하늘을 원망했다.


하늘은 내 곁의 선한 사람들을 먼저 데려갔다. 20대의 복판에서 맞이한 또 다른 친구들의 죽음과 가까운 이들의 어이없는 부음에 나는 심하게 흔들렸다.

그 시간들은 삶의 방향과 인생관을 크게 바꿔 놓았다. 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생각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찰나이면서도 아득했다. 그 경계가 오히려 악착같은 삶의 길을 열어 주었다.


후회 없이 살며 회한을 남기지 말자 다짐했다.

나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이 없기를, 나로 인해 손해 보는 사람이 없기를, 나로 인해 억울한 사람이 없기를,

나의 존재가 위로가 되고 힘이 되며 희망의 증거가 되기를  갈구한다.

아직 마음속 다짐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만 무시로 다짐한다.

오늘을 살아내는 이유이다.


소망한다. 홀가분의 시간이 왔을 때 미련 없이 훨훨 떠날 수 있기를.

언제일지 모르지만 가장 단순함으로 하루해가 저물 듯 삶의 마지막을 마주하고 싶다.  


하루가 저물었다. 친구가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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