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

by 최단감

먹다 남은 크래커 부스러기처럼 나는 자꾸 부서졌고

원인을 알면 대개의 현상이 설명되었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자기혐오 네 글자를 되뇌이면 자기혐오가 낯설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때로 어떤 단어는 피에 각인되는 것이어서

친구들은 자꾸 내 얼굴이 창백하다고 했다


걸출한 정신은 세계와 싸우며 성장한다는데

나는 피아 식별조차 하지 못해서

해안가에서 말라붙은 그물을 보고도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마치 내 전생이 거기에 걸려 생을 달리한 양


절벽은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해안가로 달려갔고

생의 한가운데로 나아가듯이 어선들은 앞다투어 빛 속으로 향했다

나는 홀로 남겨져 그 모양을 부러운듯이 바라보았다


어선의 하얀 깃발이 손짓하듯이 나부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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