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치지 않는 삶의 지혜

10장. 관계의 중용: 거리와 친밀함 사이

by 최동철

10장. 관계의 중용: 거리와 친밀함 사이


인간관계는 삶의 가장 큰 기쁨이자 동시에 가장 큰 고통을 안겨줍니다. 너무 가까워지게 되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너무 멀어지게 되면 외로움을 느끼죠. 주역은 이 복잡한 관계 속에서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며 ‘진정한 친밀함’을 쌓아가는 지혜를 제시합니다.


- 비괘(比卦)의 지혜: 비괘(比卦)는 8번째 괘로, 땅(地) 위로 물(水)이 있는 형상입니다(☵ ☷). 즉,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만물을 이롭게 하듯이, 서로 친밀하게 돕고(親比) 화합하는 것의 중요성을 상징합니다. 이는 단순한 사귐을 넘어, 서로에게 의지하고 보필하며(相輔相弼) 조화를 이루는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괘사(卦辭)는 "비 길 원서 원영정 무구(比 吉 原筮 元永貞 无咎):비(比)는 길하다. 원인을 살피고 오래도록 바르게하면 길하다"라고 말하며, 친밀함에도 원칙과 올바름이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맹목적인 친밀함이 아니라, ‘바름’을 바탕으로 한 친밀함이 길하다는 뜻이죠. 이는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고, 상대방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함을 암시합니다. 비괘의 핵심 키워드는 서로 가까이하고 친하게 지내는 친밀함(比), 여럿이 어우러져 한데 뭉치는 화합(和),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관계인 의지(相依) 그리고, 서로 돕고 부족함을 채워주는 보필(輔弼) 입니다. 비괘를 현대적 의미로 풀어보면 공동체와 관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지혜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1. 올바른 관계 맺음의 원칙

비괘는 "어디에 가서 누구와 친하게 지낼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제시합니다. 맹목적으로 무리 짓는 것을 경계하고, 진심으로 서로를 돕고 성장시킬 수 있는 관계를 추구하라고 말합니다. 즉, 맹목적인 무리짓기를 경계합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무분별하게 관계를 맺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중용'을 잃고 휩쓸리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또한, 성장하는 관계를 추구하라고 합니다. 서로에게 배울 점이 있고, 더 나은 방향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리더와 팔로워의 상생 관계

비괘는 특히 리더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다루며,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상생의 원리를 강조합니다. 리더의 역할은 진심으로 사람들을 아끼고 포용하여, 그들이 자발적으로 따르게 만들어야 합니다. 권위나 강압이 아닌 덕(德)과 신뢰(信)로 사람들을 이끌 때 진정한 화합이 이루어집니다. 또한, 팔로워의 역할은 리더의 지시를 단순히 따르는 것을 넘어, 올바른 비전을 가진 리더를 적극적으로 보필하고 지지함으로써 공동체의 성장에 기여해야 합니다.


3. '홀로 있지 않음'의 지혜

고립과 단절이 심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비괘는 혼자 고립되지 말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라고 조언합니다. 외로움과의 싸움입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온전할 수 없습니다. 외로움과 싸우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면서도 주변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가족, 직장, 사회 등 다양한 공동체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서로 돕는 관계를 만들어 나갈 때, 개인과 공동체 모두가 함께 발전할 수 있습니다.

비괘는 "친밀함과 화합"이라는 지혜를 통해, 우리가 사회 속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무분별하게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진정으로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서로를 보필하는 것이 곧 중용의 길임을 가르칩니다. 이는 리더십과 팔로워십, 개인의 삶의 지혜까지 포괄하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 수괘(隨卦)의 지혜: 수괘(隨卦)는 주역 64괘 중 17번째 괘로, 연못(☱) 아래 우레(☳)가 있는 형상입니다. 우레가 연못 속으로 들어가 만물을 진동시키고, 연못이 그 진동에 반응하여 물결을 일으키듯, 상대를 따르고(隨), 상황에 순응하는 것의 지혜를 상징합니다. 이는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라, 스스로의 주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시대의 흐름이나 주변의 뜻을 따르는 유연한 중용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수괘의 핵심은 상대를 추종하고 순응하는 따름(隨)과 고집을 버리고 변화에 맞춰가는 유연함(從), 함께 움직이고 마음을 같이하는 동기(同) 그리고, 상황과 때에 맞게 행동하는 시의(時宜)가 있습니다. 수괘는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되는지에 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지혜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1. 주체성을 잃지 않는 따름

수괘는 맹목적인 추종을 경계합니다. '따름'은 단순히 남을 모방하거나 강압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판단과 의지로 훌륭한 사람이나 올바른 가치를 선택하여 따르는 능동적인 행위입니다. 맹목적인 순종과 불필요한 반항 사이의 중용을 의미합니다. 즉, 무조건적인 복종은 자아를 잃게 하고, 불필요한 반항은 스스로를 고립시킵니다. 수괘는 이 두 극단에서 벗어나, 무엇을 따를지 신중하게 결정하고, 일단 결정했다면 진심으로 함께하는 지혜를 강조합니다. 옳은 것을 따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수많은 정보와 의견이 난무하는 시대에, 올바른 가치와 훌륭한 스승을 분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수괘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정의와 원칙을 따르는 용기가 진정한 의미의 '따름'이라고 말합니다.


2. 변화의 흐름에 유연하게 순응하는 지혜

수괘는 시대의 변화나 대세의 흐름을 읽고, 거기에 맞춰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유연함의 미학을 가르칩니다.

'때에 맞는 따름(時隨)'입니다. 이 효는 '따름'에도 때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며 고집을 부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변화를 감지하고, 유연하게 적응하며, 스스로를 쇄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소통과 공감: 따름은 일방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의 생각에 공감하며 함께 나아갈 때 진정한 의미의 '따름'이 가능합니다. 이는 리더와 팔로워 모두에게 필요한 소통의 지혜입니다.

수괘는 '따름'이라는 행위가 단순한 복종이 아니라, 신중한 선택과 유연한 태도를 요구하는 능동적인 삶의 기술임을 보여줍니다. 올바른 것을 분별하고, 때에 맞춰 자신을 바꾸며, 진심으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곧 맹목적인 독단과 무기력한 순종이라는 양극단을 벗어나는 중용의 길임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인간관계에 있어 중용의 지혜를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 집착과 무관심의 양극단 벗어나기: 집착은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고, 무관심은 관계를 차갑게 식힙니다. 적절한 관심과 배려를 통해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되, 서로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 '내가 원하는 만큼 상대도 원할 거야'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성향과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관계의 시작입니다.

- 소통의 기술: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는 자세 또한 필수적입니다.


주역은 인간관계의 본질이 물과 땅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되,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조화롭게 존재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며 친밀감을 쌓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관계에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는 중용의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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