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달이 지는 자리, 다시 시작될 나의 '오늘'
산을 내려가는 시간 새벽 3시 30분 입니다. 달콤했던 이틀간의 휴식을 뒤로하고 다시 산길에 올랐습니다. 코끝을 스치는 공기는 며칠 사이 더 서슬 퍼런 칼날이 되어 몸을 감쌉니다. 한 주간의 빽빽한 일정과 지방 출장이라는 무게가 어깨를 누를 법도 하지만, 저는 오늘도 신발을 벗고 차가운 대지와 직접 마주하기로 합니다.
발바닥에 닿는 감각은 정직합니다. 어떤 구간은 바람이 몰고 온 낙엽이 두툼한 이불처럼 발바닥을 포근하게 감싸지만, 또 어떤 구간은 마치 누군가 빗자루로 정갈하게 쓸어낸 듯 맨살 같은 흙길이 드러나 있습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자연이 허락하는 대로 만들어진 그 길을 걷다 보면 제 마음의 결도 조금씩 정돈되는 기분입니다. 평소 같으면 오름질에 몸이 금세 달궈졌을 텐데, 오늘은 이 지독한 추위가 몸 안의 열기마저 겸손하게 만듭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그믐달이 지면을 향해 낮게 내려앉고 있습니다. 주역(周易)의 이치처럼, 극에 달한 것은 반드시 되돌아오는 법입니다. 작아질 대로 작아진 저 달은 곧 땅에 맞닿아 사라지겠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다시 초승달로 차오르기 위한 '비움'의 과정일 것입니다.
문득 지난 휴일을 되돌아봅니다. 계획했던 세 가지 일 중 두 가지만을 마쳤습니다. 남은 한 가지에 대한 아쉬움이 발끝에 머물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시간은 무언가를 완벽히 해치우기엔 늘 짧지만,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기엔 충분히 넉넉합니다. 비워진 1/3의 공간이 있기에 새로운 한 주의 에너지가 채워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너무나 차가운 날씨에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발걸음을 멈춥니다. 하지만 짧았던 이 교감이 이번 한 주를 버티게 할 단단한 뿌리가 되어줄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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