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음은 때로 커다란 약점이 된다.
좋아하는 마음은 때로 커다란 약점이 된다. 누군가 가볍게 취향을 물어보면 바짝 경계하고 한참 고민했다. 별거 아닌 내 약점이 상대에게 들통날까 봐. 질문한 사람의 열의가 식어버릴때쯤 빛바랜 대답을 하고 돌아서서 후회하고는 했다. 그나마도 역시 말하지 말 것을 그랬나, 하면서.
비교적 누구에게나 쉽게 말할 수 있었던 취향은 '좋아하는 색깔'이었다. 어떤 특정 색깔을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진 않으니까.
가장 먼저, 가장 철저히 숨겨야만 했던 것.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 좋아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살면 뭐 어때. 좀 갑갑해도 입을 다물면 아무 일도 없다. 좋아한다는 그 섣부른 문장이 불러올 참담한 결과를, 우리는 너무 잘 알잖아.
습관처럼 마음을 숨기다 보니 선택 자체가 두려워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 마저 알 수 없게 됐다.
지친 엄마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누군가에게 좀 더 사랑받기 위해. 어떤 것도 고르지 않고 괜찮다며, 나는 진짜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지껄였던 기억. 분명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잃을까 봐 두려워서 벅차오르는 마음을 억누르던 순간들.
장래희망을 적어 내야 할 때면 아빠의 평생 꿈이던 '화가', 그리고 엄마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여자 직업으로 제일 좋다던 '선생님'을 적당히 섞어 '미술선생님'이라고 적어내고는 했다. 엄마, 아빠가 웃으면 그걸로 됐지. 내 마음 같은 것은 들여다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누군가와의 관계를 유지할 때,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은 나를 잃는 것이었다. 내가 버릴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니까.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렇게나 살아도 상관없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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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였나, 평범한 어느 날. 가출을 했다.
정확히는 가출했다가 저녁 8시에 집에 들어갔다. 어느 누구도 내가 가출했는지 모르게 조용히 돌아와 내 방에 가방을 탁 내려놓고서, 비누로 깨끗하게 손을 씻었다. 아무도 모르게 나갔다 돌아오는 건 가출이 아니라 외출이라고,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긴 저녁 8시는 시간 상으로도 ‘가출’보다 ‘늦은 귀가’에 좀 더 가깝지.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이 사건은 가출이 맞다.
내 마음은 허름한 주머니 같아서 좋아하는 것을 넣어 채워도 어느 순간 다 새어 나가 버리고는 했다. 빈 주머니를 보며 느낀 허탈감, 절망. 쓸데없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 삶이라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인생에서, 이 집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뭐가 있단 말인가. 허무했다. 그런데 가출하고 동네를 정처없이 떠돌다가 깨달았다. 모든 것이 새어나간 빈 주머니에 불과할지라도, 주머니를 쥐고 있는 나는 늘 여기 있었다는 걸 떠올린 것이다. 나 자신이 독립된 하나의 개체,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아차린 순간이었다. 나는 나만의 것이다.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조금 해소되는 듯했다.
그래, 나는 온전히 ‘나’로서 존재한다.
그때만해도 분명 나를 찾았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확실한 게 없을까? 언젠가부터 나는 또 나를 잃어버렸다. 이렇게 잘 잃어버릴 줄 알았다면, 갖지 말 걸.
뚝딱거리면서도 좋아하는 것을 말하려고 애쓰는 삶이 이어졌다. 간혹 마주하게 되는 진심 앞에 얼굴을 붉히며, 여전히 속마음과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한 채로 ‘저는 상관없어요.’하며 쓴웃음을 숨기는 어른이 됐다.
이렇게 많은 마음이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그냥 눈 감고 외면한채 내일을 맞이해도 괜찮은 것일까? 괜찮은게 맞아? 오래전부터 감춰왔던 마음들, 케케묵은 이야기들이 해소되지 못한 채로 질퍽하게 쌓여만 간다.
낙엽이 가득한 거리에는 짓이겨진 은행 이파리가 골목마다 축축하게 젖어 있다. 꼭 노란 나비 떼 같아서 이파리를 피해 물웅덩이를 밟는다. 첨벙. 발걸음마다 내 그림자가 일렁인다. 도시의 밤도 함께 요동친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목소리 틈에 숨어 걷다가 순식간에 미아가 된다. 욱신, 어제 낮에 베인 손가락의 작은 상처가 문득 따끔하다. 상처가 나면 어째서 심장이 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일까? 낯선 박동에 귀를 기울인다.
아, 제가 좋아하는 색깔은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