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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글루 May 22. 2023

율무밥을 입 안 가득 물고 있는 악당

'커밍아웃'을 하는 이유에 대한 고찰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던 거야?”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담임 선생님은 전교에 소문난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복도에서 좌측통행을 하지 않으면(지금은 우측통행이 맞습니다.) 그대로 목덜미를 잡혀 뺨을 맞았고, 갑자기 수업시간에 이름 불려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도 뺨을 맞았다. 선생님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행으로 이어졌다. 급식으로 나온 음식을 남기는 것도 처벌을 받는 일이었다. 먹지 못하는 음식이 있더라도 우리는 꾸역꾸역 시간 내에 그릇을 비워야 했다.


 어느 날 급식 메뉴로 율무밥이 나왔고, 먹다가 어느 순간부터 어쩐지 비위가 상해 밥을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입 안에 율무밥을 가득 물고 있으니, 밥알은 점점 뜨끈해지고, 한 번 씹힌 율무 향은 강해져 속이 메슥거렸다. 금방이라도 뱉고 싶지만, 뺨을 맞을 수는 없으니까. 다 삼켜낸 척, 평범한 척하느라 표정이 이상하게 씰룩거렸다. 창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저학년의 수업은 4교시가 끝이라는 것.

 우산을 가지고 온 엄마를 보니 울컥 눈물이 났지만 눈물을 참고,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산 속에서 엄마와 단둘이 되고, 조금 더 걸어 골목 모퉁이를 돌고 나서야. 학교가 보이지 않는 안전한 구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입 안 가득 물고 있던 율무밥을 뱉었다. 헛구역질하는 내 등을 두드리며, 엄마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던 거야?”

 내게 커밍아웃은 이런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뺨을 맞을 수도 있으니, 평범한 척하면서 한동안 입 안에 물고 있어야 하는 것. 그러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안전 지역으로 뛰어가 입 밖으로 뱉어야 하는 것.





 커밍아웃을 꼭 해야만 할까? 그냥 어느 정도는 가리고 살면 어떨까? 적당히 숨기면 모두가 편하게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다들 모든 것을 보여주며 살지는 않으니 나도 이 정도는 그냥 숨기고 살자. 남들에게 보여줄 부분은 정체성 말고도 여러 모습이 있으니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정체성은 넣어두자. 그냥 그렇게 숨길 것은 좀 숨기면서, 그렇게 살자.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근데 이 놈의 나라는 어떻게 된 모양인지 사회 생활에서 연애 얘기를 빼면 스몰톡이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회사에서 특히 심한데, 면접볼때부터 시작되기도 하는 질문의 모양새는 대충 이렇다. "남자 친구가 있는지?", "결혼 생각은 있는지?" 이력서, 자기소개서면 됐지, 내 자기와 결혼을 어떻게 할지의 계획까지 왜 초면인 당신에게 알려야 하냐고. 참나.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하면 "2년 전에 헤어졌다."라고 대충 얼버무리고 더 이상의 질문을 할 수 없도록 슬픈 표정을 하고는 했다.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 연애할 때 어떤 식이냐는 질문에는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요. 연애할 때? 저는. 글쎄요. 다정한 편?"하고 모호하게 대답하는, 비겁한 어른이 되었다. 그러다가 서른이 넘어가니 어떤 순간 불쑥불쑥 짜증이 나는 것이다.

 아니,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숨겨야 하는 것일까? 멋진 여자 친구를 만나고 있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일까? 관심 하나도 없는 남자 얘기 언제까지 들어야 되는 것일까? 짜증이 나서 커밍아웃을 하는 날이 오기도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의 커밍아웃은 용도에 따라 세 가지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겠다.


1.    사랑 고백의 빌드업 용

2.    더 많은 이야기를 편하게 하고 싶어서, 숨기기 싫어서 하는 관계지속용

3.    짜증이 나서, 불필요한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서 하는 관계차단용


 셋 중 어느 용도를 가진 커밍아웃이든지 간에. 누군가에게 입 밖으로 내 정체를 밝혀야 하는 과정은 늘 가슴 떨리는 일이다. 어떤 이는 왜 이제 말했냐며, 이미 알고 있었다며 따뜻하게 내 어깨를 두드리지만, 어떤 이에게 내 정체는 본인의 가치관을 거스르는 이야기가 된다. 후자의 경우에는 우리가 꽤 좋은 사이였어도,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연을 끊어야만 한다. 아쉽고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또 화가 난다. 같은 성별을 좋아한다는 것으로 뒤틀리는 관계라니. 내가 짬뽕을 좋아한다고 손절당하는 일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까짓 것 때문에 끊어야 할 연이라면, 얼마나 가볍고도 우스운 관계인가?


침착해보자.


 이렇게 열낼 바에 그냥 커밍아웃 같은 것 없이 살면 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계속하다 보면 누군가에게 입 밖으로 내 정체를 뱉어야만 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용도를 가진 어떤 종류의 것이든, 커밍아웃을 앞둘 때마다 세계의 평화, 아니. 관계의 평화를 깨부술 작정으로. 작당을 모의하는 빌런의 마음을 가지고 서투른 전략을 세운 뒤 짜잔, 하고 내 정체성을 밝히겠지. 어쩐지 쫄보인 이 악당은 정체를 밝히고 손톱을 물어 뜯으며 초조하게 당신의 반응을 기다릴 것이다. 혹시나 뺨을 맞을 수도 있으니, 뺨 한 구석을 잘 닦아 놓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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