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생각을 더하면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멋진 여행
그림이 없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주인공과 배경 그리고 다른 등장인물을 나름 상상하기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책은 독자에게 원초적인 가상현실(V.R)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줄거리를 따라가며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가상현실에서는 내가 감독이고 배우이고 배경을 만드는 스탭이며 의상을 만드는 디자이너입니다.
미리 준비된 시각적인 정보에 길들여져서 고정화된 이미지로 상상이 제한된다면 불가능할 일들입니다.
여러 해 전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의 배경이 되는 스위스의 산골 마을인 마이엔펠트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 곳곳에 묘사된 하이디의 모습들이 어릴 적 보았던 TV속 주인공과 달라 이질적인 느낌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본 일본산 애니메이션으로 하이디에 대한 상상력이 제한되었던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책을 읽으며 주인공을 떠올리고 각자 이해한 대로 배경을 그려 나가며 만든 상상 속 하이디를 떠올렸었다면 느끼지 않아도 될 이질감이었습니다.
또 첫 장을 열고는 줄거리에 몰입하면 마지막 장까지 내리 읽은 뒤에서야 책을 덮게 되곤 합니다.
책 속 줄거리에 몰입하면 뇌에서 도파민 성분이 분출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도파민은 일종의 흥분전달 물질로 스스로 그려나가는 가상현실의 세계에 빠질 수 있도록 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릴 적 읽었던 여행기나, 스칸디나비아에서의 생활을 담은 수필, 그리고 건축가의 건축기 등 다양한 장르의 책들은 저마다 상상을 더해서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 가능합니다. 조끔씩 느낌은 다르지만 가상현실을 만드는 것은 독자의 몫이 됩니다. 무흔 생각을 더하는가에 따라 여행의 색채도 달라지겠죠.
가을, 날은 쌀쌀해져가지만 15소년 표류기나 소설 파리대왕의 주인공 소년들처럼 손에 땀을 쥐는 책 속 가상현실의 모험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장비가 필요 없는 책 속 가상현실에 빠져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