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에게 승리한 유일한 인류
‘오늘 패배는 이세돌 개인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전에서 패배 후 이세돌 9단이 남긴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알파고를 이겼던 유일한 인류로 기록되고 말았습니다.
저도 그의 5번의 대국을 모두 중계로 지켜봤었습니다.
물론 마음속 깊이 이세돌 9단을 응원했습니다.
이세돌 9단이 초반 3연패를 당하면서 심한 무력감이 들었고, 1승을 거뒀을 때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러나 대국에 진행될수록 왠지 달착륙을 지켜보는 느낌으로 인공지능이 바둑이라는 영역에서 정점을 찍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딥마인드가 미쳐 패배의 경우 내보낼 메시지 창의 UI를 예쁘게 준비하지 않아 알파고 패배의 순간에 어이없이 조악한 팝업창이 떴던 순간이 뚜렷하게 기억납니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의 버그로 1판 이길 수 있었다고 겸손하게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그 1승이 두고두고 유일한 승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세돌 9단에게 완승을 거둔 이후 몇 차례 더 업그레이드를 했던 알파고는 2017년 바둑을 은퇴(?)했고, 그 이후 더 뛰어난 인공지능 엔진의 등장은 이어졌습니다.
이제 인간 최고수도 흑돌을 쥐고 2점을 먼저 두고 시작해야 간신히 승부가 될까 말까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한 점을 둘 때마다 남은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한 확률을 계산해서 매 순간 승패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고, 기존 인간의 승부를 모두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체적으로 수초마다 한판씩의 대국을 통해 자체적인 기량을 스스로 향상해 나가는 학습으로 인공지능의 바둑실력은 점점 더 좋아져가고 있습니다.
이제 예술이라 일컬어지며 인간 사유의 영역이라 간주되었던 신비로운 바둑의 길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건조한 연산 기술 테스트의 결과물처럼 의미 축소된 낭패감이 듭니다.
이세돌도 얼마 전 출연한 방송에서 그런 느낌이 들어 은퇴를 결심했다는 맥락으로 이야기를 한 것을 들었습니다.
더 이상 도전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었다.
그런데 인공지능으로 인해 은퇴까지 이르게 된 이세돌의 파격행보가 눈길을 끕니다.
자신의 은퇴 대국을 다름 아닌 인공지능과 두기로 한 것입니다.
두 점을 두고 시작해 패패 할 경우 네 점, 여섯 점을 두는 방식으로, 그가 인공지능을 마지막 은퇴 대국의 상대로 하는 것은 참으로 의외란 평입니다.
하지만 "나는 패배할 자신이 없다.'는 등의 자유롭고 도발적인 말을 남겨 유명했던 이세돌의 캐릭터를 볼 때 가능한 파격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은퇴 대국의 상대는 NHN이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인 '한돌'!
한돌은 올초 국내 5명의 9단 최고수들을(신민준, 이동훈 , 김지석, 박정환, 신진서) 대상으로 연속 대국을 통해 전승을 기록하기도 했고, 전 세계 인공지능 바둑 대회인 중신증권 배 세계 인공지능 바둑대회에서 올 8월 3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12월 18일, 19일 오후 12시 서울 양재동 바디프랜드 본사, 그리고 마지막 날인 21일에는 이세돌 9단의 고향인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리조트에서 진행된다고 합니다.
그의 가느다란 목소리에 대해 설명했던 그의 인터뷰 내용이 생각납니다.
""입단 후 열네 살 때 스트레스가 심해 실어증이 왔는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기관지가 약해졌죠. 신경이 마비된 건데, 어린 나이에 뭘 알았겠습니까?. 부모님은 신안에 계시고, 서울에서 보호자 역할을 했던 형 이상훈 7단이 입대해 병원도 못 갔죠."
바둑에 대해 가장 치열한 삶을 살았고 인공지능을 이긴 유일한 인류로 기록된 이세돌 9단, 그의 은퇴 이후에도 멋진 삶이 이어지기를 응원합니다.
수고했습니다.
#인공지능 #이세돌 9단 #알파고